"너 '엘리제를 위하여' 칠 줄 알아?"

[음악이 있는 음악 이야기] 피아니스트 임미정 울산대 교수

등록 2005.07.16 16:25수정 2005.07.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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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7일 밤 11시15분]

1970년대와 80년대, 피아노를 배우던 모든 꼬마들의 실력 대결은 "너 바이엘 몇 번 치니? 혹은 체르니 몇 번 치니?"로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체르니 치는 아이는 바이엘 치는 아이를 보면, 고수가 초보를 바라보듯 하는 그런 승리감을 느꼈고, 체르니 치는 아이들끼리도 20번이냐 25번이냐를 놓고 묘한 승리 혹은 패배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 두 교재 이외에 진짜 피아노 친다 하는 대열에 들어서려면 통과해야 하는 곡이 있었으니...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의 꿈의 곡은 예나 지금이나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니었나 싶다. 나 또한 그 곡을 치는 순간 나도 이제 피아니스트라는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레미레 미시레도라..."

피아노를 몇 달이라도 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 계명 정도는 흥얼거리면서 노래 불렀던 기억이 있지 않았을까.

지난 5월 창경궁에서 있었던 고궁음악회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였는데, 삼사십 대 어른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누구나 피아노를 배우면서 쳐보길 원했던 명곡, 동네 담장 너머 누군가 피아노를 연습할 때 흘러나오던 익숙한 그 멜로디.

지금은 휴대폰, 인터폰 심지어 청소차에서까지 너무나 많이 듣는 전자 멜로디이지만, 이삼십 년 전 누군가 뚜벅거리며 치던, 담장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무척 향수 어린 멜로디였다. 또 피아노에 입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행복하지만 묘한 슬픔을 경험시키기도 하는 진정한 입문의 곡인지도 모르겠다.






감상 포인트

클래식 음악 안에는 글로 친다면 논문에 해당하는 교향곡과 소나타들이 있고 수필이나 연애소설에 해당하는 발라드, 녹턴 등도 있다.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이 작지만 아름다운 소품은 어른도 사랑하는 동시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교향곡 같은 경우엔 곡의 이론적 구조나, 사용한 악기의 음색, 작곡가의 이상과 음악사적 배경 등을 꼼꼼히 아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된다.하지만, 이러한 소품은 그냥 들리는 대로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즐기는 것이 제일 좋은 감상법이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이 곡의 첫 이미지는 사랑스럽지만 약간의 슬픔이 배어있는 것이었다. 가 단조(a minor)라는 조성 때문이었겠지만, 만일 특별히 더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시작해서 20초 후쯤 나오는 약간의 상승과 반전의 느낌을 주는 '시도레미~' 부분이 아닐는지...

화성학적으로는 무척 단순한 부분인데, 마치 대가가 간단한 언어들을 사용해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래서 삶의 진실을 진솔하게 전하는 그런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이 제일 좋으냐고 많이 물어 보았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이 부분이요"하면서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곳이었다.

중간 부분 잠깐 지나는 어두운 느낌을 주는 곳은, 굳이 베토벤의 사랑의 아픔이라든가 불안이라고 꿰어 맞추고 싶지 않다. 많은 음악들은 필연적으로 대비라는 기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소품에서 일일이 문학적으로 의미를 대입한다는 것은, 언어가 아닌 음악이라는 도구로 소통하기를 원했던 작곡가의 뜻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1810년 40살이 되었고, 주치의 조반니 마르파티의 조카인 17살의 소녀 테레제 폰 마르파티를 사랑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그의 인생을 통해 이미 몇 번의 연애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엔 소녀 테레제와의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한 듯하다.

당시 귓병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고, 그의 가장 유명한 걸작들인 5번 운명 교향곡, 6번 전원 교향곡 등도 발표된 이후였는데, 이 중후한 대가가 옷과 외모에 갑자기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본(출생지)에 있는 옛 친구에게 세례증서의 복사본을 부쳐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소녀 가족들의 반대로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임미정 교수
임미정 교수
사실 베토벤은 이 곡을 17살의 연인 테레제에게 헌정한 곡이라고 정확히 명시하지는 않았다.

곡의 정식 이름은 'Bagatelle 'Fur Elise'이고, 'fur Therese'(테레제에게 헌정한)라는 기록만 있는데, 이 당시의 베토벤에게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테레제 마르파티 아닌 다른 테레제를 연상할 수 없기에, 후세의 사람들이 당연히 이 테레제를 이곡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피아니스트인 임미정 기자는 지난 주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녹음하였고, 클래식 음악을 통한 청중과의 특별하고 새로운 만남을 모색 중입니다.

녹음장소: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 (www.cyworld.com/hconcert)
피아노 연주 : 임미정 (www.mijungim.com)
녹음시 사용된 피아노 : Steinway & sons
일시 : 2005년 7월 14일

덧붙이는 글 피아니스트인 임미정 기자는 지난 주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녹음하였고, 클래식 음악을 통한 청중과의 특별하고 새로운 만남을 모색 중입니다.

녹음장소: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 (www.cyworld.com/hconcert)
피아노 연주 : 임미정 (www.mijungim.com)
녹음시 사용된 피아노 : Steinway & sons
일시 : 2005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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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정 기자는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울산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이다. 귀국전 14년간 뉴욕에 거주, 평양에서의 연주 및 뉴욕에서의 북한 음악 연주등을 통해 민간 문화교류를 해왔다. 2002년 그의 피아노 독주회시 아리랑과 내고향의 정든 집 등 북한의 피아노곡을 국내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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