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을 버려야 현대차가 살아납니다"

전직 현대 직원이 현대차 경영진들에게 드리는 편지

등록 2006.05.01 17:07수정 2006.05.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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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얼마나 침통하고 참담하십니까? 당신들의 최고 임명권자인 총수를 감옥에 보내고 당신들이 느꼈을 실망과 낙심의 정도를 어찌 국외자인 제가 감히 필설로 담을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선대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총수 일인 지배체제에 길들여져 왔으며, 따라서 총수의 의중과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그에게 여하히 충성하느냐가 일상이었을 당신들에게 이번 사건은 흡사 대해(大海)에서의 나침반 없는 항해, 교주를 잃은 신도들이 느끼는 정신적 공황과 같은 상황으로 닥쳐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 저는 전적으로 제3자만은 아니기에 당신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난 99년 저는 현대증권의 간부로 재직 중 당사의 회장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로 구속되게 되는 사태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바이코리아 펀드'를 통한 증권시장 발전과 더 나아가 IMF체제로부터의 한국경제 조기회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 받던 이익치 회장의 구속은, 회사 대내외적인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회사의 경영진들과 간부들은 깊은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습니다. 당시 우리들의 의중에는 오직 회장의 조기석방, 복귀만이 절절한 목표이자 염원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회사 경영과 영업 정상화라는 과제는 뒷전이었습니다. 그보다는 탄원서를 만들어 이를 들고 일일이 고객들을 찾아 다니며 서명을 받아, 이를 통해 언론의 지원사격을 끌어내고 해당 법원 판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런 판에 우리 고객들의 귀중한 돈과 애국심을 마케팅하여 조성된 '바이코리아 펀드'의 소중한 자금이 지배주주들의 주머니를 부풀리는데 이용되었다는 자책감과 죄의식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또한, 기업윤리와 사회정의라는 명제는 한가한 자들의 한가한 담론으로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과거를 회상해 보거나, 현재의 위치를 떠나 좀 더 멀리서 떠나온 곳을 조망해 보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정하게 생각하게 되는 법인가 봅니다. 과거 절체절명으로 인식되던 문제도 오늘의 입장에서 뒤돌아 보면 그렇지 않음을 느낍니다. 내부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풍전등화의 상황도 한 발짝만 나와서 바라보면 그렇지 않음을 느끼게도 됩니다.


저는 저의 옛모습과 경험을 통해 당신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생각의 일단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더, 당신들보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현재 아마도 총수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 휩싸여 사태의 본질과 사실관계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는 오로지 총수에게 누를 끼쳤다는 부담과 죄송스러움, 총수를 여하히 조기 출소시킬 수 있는 방법과 언론플레이에만 온통 관심을 집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기업·사회정의는 한가한 담론이었다


a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지난 4월 24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될 예정인 가운데 몇시간전부터 수십명의 현대차그룹 직원들이 대검찰청 주변에 대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지난 4월 24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될 예정인 가운데 몇시간전부터 수십명의 현대차그룹 직원들이 대검찰청 주변에 대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지금 이순간 저는 이분법적이나, 매우 중요한 질문을 여러분들께 던지고 싶습니다. 정몽구 회장(이하 MK)을 살리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들의 회사인 현대자동차를 살리려고 할 것인가? 물론 여러분들은 MK가 조기 복귀하는 것이 곧 현대차를 살리는 길이라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MK 조기 복귀의 당위성 내지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업무를 해태하고 회사의 어려움을 확대 생산해서 결과적으로 MK 구원을 위해 회사의 여타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회사 전체의 이익은 총수 1인의 이해로 인해 다시 한번 뒷전으로 팽개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일련의 뉴스들, IR 취소, 투자지연, 해외 공장착공 연기 등의 보도들은 저로 하여금 이러한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마당에, 먼저 회사의 경영을 조기 정상화시키는 데 온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국민기업 현대차는 총수에 의해서만 이룩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국민기업 현대차를 발전시키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했던 여러 주체들과 이해관계자들, 좀 더 폭넓게 말하자면 모든 국민들의 지원과 사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MK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오늘날 현대차가 있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대한민국 국민들도 아울러 중요합니까?

이러한 물음에 여러분들께서 전자에 치우친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저는 세계 7위의 현대차 그룹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지배권 상속, 총수 '포켓머니' 증식에 혈안이 되어 불법과 탈법, 변칙을 일삼았던 과거에 대한,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조차 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기업 현대차라는 홍보 및 광고전략은 하루속히 쓰레기통으로 내던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현대차의 오너십 구조를 살펴보면 MK가 총수의 지위에 앉아 있는 것은 참 우습기조차 합니다. MK의 현대차 지분율은 지난 2005년 연말 기준으로 5.2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는 현대차의 지분을 각각 5.30%, 14.59% 갖고 있는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11.69%, 7.92% 보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총자산 26조원의 현대자동차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역시 2005년 말 기준으로 현대제철의 총자산은 6.3조원, 현대모비스의 그것은 5.4조원이므로 이를 그의 소유지분으로 환산해 보면 그는 현대차 출자액을 포함해서 총 2.45조원을 투자해 놓고 전체자산 26조원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5%에 불과한 지분... 그가 왜 현대차 총수인가

a 현대차와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 5만4000여명의 직원들과 1만8000여개의 군소 하청업체들과 그들 가족들의 생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현대차와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 5만4000여명의 직원들과 1만8000여개의 군소 하청업체들과 그들 가족들의 생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또한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의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현대차가 38%의 지분을 출자한 기아차로 하여금 각각 19.87%, 18.19%를 출자케 함으로써 이른바 현란하고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출자과정에서 그는 결과적으로 4.07조원의 가공자본을 창출해 내게 됩니다. (MK의 현대차 지배지분율 25.1%에 해당하는 현대차 자산 6.52조원 – MK의 실제 출자자산 2.45조원=4.07조원)

이렇듯, 현금흐름 소유권 이상의 의결권 지분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늘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에 대한 유혹과 유인이 상존하게 됩니다. 아마도 MK와 그 아들이 각각, 40%, 60%의 지분을 출자해서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된 글로비스는 태생적으로 현대차 주주들의 이익을 편취해서 총수와 그 아들의 주머니를 부풀리기 위해 세워진 회사입니다.

그 회사는 현대차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불과 5년여만에 순자산 3700여억원의 회사로, 시장가치 1조2000억원의 회사로 급성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두 부자가 챙긴 자본이득은 약 1조원을 상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졌을 이 섬뜩하면서도 놀라운 사업결과에 찬탄과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현대차 경영진 여러분, 저는 또 다시 MK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공은 법정으로 넘어가 있는 마당에, 법의 심판을 신뢰하며 기다리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분들께 감히 부탁 드립니다. MK가 갇혀 있는 감옥에서 눈을 돌려 치열한 경영의 현장과 경쟁환경으로 눈을 돌려 주십시오. MK의 고통보다는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현대자동차의 비중을 생각하십시오. 불과 5%의 지분을 보유한 총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에서 나머지 7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의 소리 없는 불안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현대차와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 5만4000여명의 직원들과 1만8000여개의 군소 하청업체들과 그들 가족들의 생계에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임명권자에 대한 충성심 경쟁이라는 이기적 사욕이 아니라 보다 대승적인 차원의 공익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윤리와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자문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류영재 기자의 꿈은 우리 나라 기업들이 좋은 이익으로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류영재 기자의 꿈은 우리 나라 기업들이 좋은 이익으로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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