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은 내 인생에 가장 가슴 뛰는 일

그 자리에 풍금이 없었더라면... 피아노 사랑 30년

등록 2008.05.28 14:38수정 2008.06.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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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습은 내 인생에 가장 가슴 뛰는 일이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광주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작은 교회를 다녔다. 그곳엔 아주 오래된 풍금이 한 대 있었다. 치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피아노를 배워서 쳐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79년 1월 20일, 드디어 3년동안 배울 작정을 하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했다. 당시 광주 YWCA 청년부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던 때라 퇴근 후엔 연습이 불가능했기에, 출근 전 아침 시간에 학원에 가기로 했다.

YWCA활동 얘기를 간단히 하자면, 내가 20대였던 70~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시기였다. YWCA 다니면서 한국 현대사, 문학, 철학, 니체 연구반, 공동번역성서연구모임, 봉사활동 등에 참여했다. 모임 때마다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민주화를 위하여, 양심수를 위하여 손을 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피아노 연습은 내 삶의 중요한 가치였기에 아무리 바빠도 학원은 빼먹지 않았다. 바이엘, 소나티네, 체르니 30번, 40번, 50번, 바흐의 인벤션, 모차르트, 베토벤 소나타 등을 배우면서 8년이 지났을 때, 다른 선생님을 찾아보라고 해 근처 학원으로 옮겼는데 그 때 만난 김춘희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가능성을 심어 주셨다.

쇼팽 에튀드와 또 다른 쇼팽의 많은 작품, 바흐의 평균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연습 시키면서 "늦게 배웠어도 열심히 연습하면 곡도 외울 수 있고 전공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교회에 처음 나오셨는데 "넌 피아노를 자신있게 쳐야지 왜 떨면서 치느냐 아무리 봐도 피아노에 소질이 없으니 더 고생하지 말고 그만 두라"고 말씀하셨다. 소질이 없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가르치는 선생님께로부터 몇 차례 들었으니 음악에 대한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음은 사실이었다.

피아노 배운지 만 14년이 되었을 때 음대에 진학해 볼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곡이 외워지지 않아 유아교육학과를 선택했다. 그 때부터 11년 동안 학원에 적을 두고 레슨을 받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달간 피아노 뚜껑을 열 수 없었던 때도 있었고, 사회활동 참여로 예전처럼 연습을 많이 못하니 실력이 향상 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왜 피아노를 시작했을까? 그 많은 연습시간과 레슨비가 들어갔는데 한 작품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도 안 되고, 손가락도 겨우 한 옥타브고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내가 좀더 지혜가 있었다면 빨리 재능 없음을 깨닫고 5년만 배우고 그만둘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찾아왔다. 여가를 즐긴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외로운 고생길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고, 4반세기 동안 다녔던 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초창기 배웠던 곡을 중심으로 집에서 3년간 연습을 하던 중 동네 피아노학원 원장님 권유로 광주의 한 대학교 음악대학원 기악(피아노)전공에 입학을 하게 됐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3학기를 마치는 시점에 와 있다.

1학기 때 하이든의 안단테와 변주곡을 배웠는데 무조건 외워야 한다고 해서 아침 저녁으로 무리하게 연습했다. 갑자기 욕심을 내다보니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와 여름방학 때는 지친 몸을 추스려야만 할 상황이 되었다. 2학기는 라흐마니노프 작품 3의 제2번과 4번을 배우고 이번 3학기는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제8번을 배웠다. 입학하고 곡을 못 외우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른 생각 안하고 열심히 연습하니 쉽게 외워졌다.

얼마 전 지도교수이신 유신웅 교수님께서 마지막 학기에 독주회를 하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배웠던 곡을 포함해 7개의 작품을 연주순서까지 말씀 하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레슨도 해주고 계신다. 교수님은 레슨 받을 때마다 실력이 많이 향상되고 있다고 늘 칭찬해 주신다. 격려차원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내가 잘 친 줄 알고 연습을 더 열심히 하고 레슨에 임했다.

나 또한 피아노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 시점이라 교수님께 몇 년 더 지도를 받고 싶고 그리고 작은 음악회라도 한 작품씩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반년이 지나면 피아노 배운지 30년이 된다. 취미로 시작한 피아노로 이렇게 전공을 하게 되고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연주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연주회를 대비하여 열심히 해야겠지만 직장생활, 집안일, 산책하는 일 등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생각하며 지내려 한다. 그런 여유가 있어야만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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