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전형 합격... 왜 붙었는지 나도 모른다

[지원후기] 입학사정관제, 이렇게 준비하지 마세요

등록 2010.06.03 20:21수정 2010.06.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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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제 선발 기준이 지난달 27일 공개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울대 입학사정관 가이드 라인은 작년 여러 대학들이 내놓은 입학사정관 지침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연도의 입학사정관제 역시 작년과 비슷하게 시행될 것이라는 조짐이 벌써부터 보인다. 그럼 작년 입학사정관제는 어떠했을까. 비록 입시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했던 내 경험담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가진 잠재력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니

교과부의 2009개정교육과정 홍보 자료중 일부입니다. 교육과정자율화가 입시교육에 치중한다는 비판에 대해 창의적 체험활동등을 통해 창의인성교육을 하고 입학사정관제로 입시에 반영한다는 내용입니다. ⓒ 신은희

작년 이맘쯤 고3이었던 나는 한창 입시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교실 앞에 별도의 책꽂이가 마련될 정도로 여러 대학에서 보내온 입시 관련 책자들은 많았다. 그 중 나의 이목을 끈 것은 입학사정관 제도를 설명하는 책자였다.

단순히 성적을 벗어나 학생들의 잠재력으로 선발하겠다는 취지의 입학사정관제도는 매혹적인 입시 제도임은 틀림없다. 특히나 평소 여러 대회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참여를 많이 했던 나에게는 그 제도가 더욱 끌렸다.

당시 준비하던 토론대회를 마친 후 입학사정관 지원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았다. 고심끝에 책자에 나온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입학사정관에 도전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학교 선생님들께서도 그런 나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주셨다.

직접적으로 내가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입학사정관제 관련한 책자에서 합격 사례를 보고나서이다. 합격한 학생의 사례가 나와 비슷했기에 나는 한껏 자신감을 갖고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명 포트폴리오라 하는 자신의 전공과 연관된 활동들을 정리한 서류를 준비했다. 막상 서류를 준비하려니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선배도 없었고 입학사정관제에 관한 많은 경험을 갖고 계신 선생님도 없었다. 일단 지원하려는 대학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매뉴얼을 읽었다. 그리고 대학들이 원하는 인재상과 어떤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그런 후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내가 했던 활동 중 가장 내세울 수 있는 활동을 순위로 매겼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3년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했던 활동들을 다시 되뇌며 생각하고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추천서를 써주시던 선생님들께서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게 "왜 돈을 받고 서류를 만들어 주는 사교육기관이 생기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서류전형 합격... 왜 붙었는지 나는 모른다

공들인 서류가 내게 기쁜 첫 소식을 안겨주었다. 5개 지원한 학교 중 첫 번째로 발표가 난 학교에서 1차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비록 그것이 5개의 학교 중 처음이자 마지막 합격통지였지만 말이다.

입학사정관제의 경우 지원인원에 비해 모집인원이 굉장히 적다. 당시 내가 지원한 학과의 경우 3명을 뽑는데 약 110명 정도가 지원했다. 비록 1차에서 3배수를 선발하지만 그래도 낮은 경쟁률은 아니다. 그래서 1차 합격이지만 무척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가 서류심사에 통과한 이유를 모른다.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이 여기서 하나 드러난다. 투명한 심사과정을 거친다고 광고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떨어진 이유도 합격한 이유도 알지 못한다.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으며 결과에 대한 어떠한 피드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심정을 스스로 삼키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부푼 마음을 추스르고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방문했다. 당시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수만휘)'라는 입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한 많은 수험생들과 여러 가지 입시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스펙 공유에 관한 정보는 입학사정관제를 지원한 학생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말 나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화려한 스펙을 지닌 학생들이 많았다.

어느 언론 보도에서는 서울대 입학사정관제에 관련하여 "화려한 스펙은 '독'"이라 했지만, 이 구절은 작년에도 여러 대학들의 입학사정관들이 누누이 강조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내가 보았던 입학사정관제 지원 학생들은 책을 출판하는 일부터, 해외 봉사활동 심지어 기업을 운영하는 등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의 특별한 활동들을 했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은 성적 또한 우수하다는 것. 내신성적이 높게는 평균 1등급대에서 낮게는 3~4등급 정도이다. 또 각종 교육청이 주관하는 교내, 시, 도 대회 등 자신의 분야와 관련 있는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 정도의 성적이라면 일반전형으로 지원해도 성적에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 사이에서 합격을 하려면 남과 다른 특별한 '스펙'이 필요하다. 기본 위에 더해진 화려한 스펙들은 '독'이 아닌 '약'인 셈이다.

14일에 걸쳐 꼼꼼히 면접 준비했다는데, 찜찜하네

운좋게 하나의 학교라도 합격한 나는 면접에 응시하러 지원한 학교를 찾았다. 하지만 면접을 본 나는 입학사정관제 면접에 많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실에는 1명의 입학사정관과 2명의 전공교수, 총 3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면접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나는 20분 안에 면접관의 질문을 효과적으로 대답하며 나의 역량을 최대한 보여주어야 했다.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내가 3년 동안 쌓아온 나의 경험과 나의 가치관을 20분 안에 세 명의 면접관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면접관들 역시 그런 나를 20분 안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황당한 사실은 내가 낸 서류에 관한 질문은 몇 차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론대회 관련한 서류를 1번으로 제출했었는데 그것에 관해서만 한 두 차례 질문을 받았고 나머지는 다른 사회 관련 이야기와 왜 내가 이 학교에 입학하여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심지어 맨 왼쪽에 앉은 전공교수는 제출한 서류도 제대로 읽지 않고 면접을 하는 듯했다. 분명 나는 나의 포트폴리오를 자연계열에서 교차지원한 내용을 강조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그 왼쪽에 앉은 교수는 내가 자연계열에서 교차지원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포트폴리오가 아닌 생활기록부만을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말이다. 마치 무언가에 속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가는 내내 많이 찜찜하고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와 Q&A 게시판에 면접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관들은 약 14일에 걸쳐 학생들의 서류를 꼼꼼히 검토했으며, 면접 전날에는 서로 모여 리뷰까지 했을 정도로 학생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라고 답변이 올라왔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얼추 비슷했다. 심지어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내신 성적만을 나무랐다"라며 면접에 대한 서운함을 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대는 현재 24명의 전임입학사정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입학사정관 모집 정원은 서울대의 35%인 약 1100명이고,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입학사정관제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수 천명이 지원을 할 것이다. 전임입학사정관이 신이 되지 않고서야 이 많은 학생들의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서류 전형에서 통과한 학생들을 면접 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많을수록 면접시간은 상대적으로 줄고, 인력은 많이 필요로 한다. 결국 비전문인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작년과 같은 입학사정관제 심사과정과 면접에 대한 불만이 반복될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시 사이트에서 주관하는 입시 설명회를 갔던 적이 있다. 당시 입시 설명회를 진행하던 강사 분께서 모든 학교별 입시제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 관련한 페이지는 "그냥 읽어보세요" 하며 넘기셨다. 그리고 후에 그 강사는 입학사정관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입학사정관제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이는 산이 떠나갈 듯이 요동을 쳤지만 나온 것은 쥐 한 마리였다는 뜻이다. 언론을 통해 입시제도의 개혁이라 떠들어대던 그해의 입학사정관제는 이렇듯 수험생에게 의아함만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입학사정관제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지원한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다른 학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한편으로는 허전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들을 하며 입시를 준비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남다른 활동을 하는 동시에 성적관리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입학사정관제도로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이 일반 입시제도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 자신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후회와 좌절이 남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과감히 입학사정관제도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도는 홍보 책자처럼 '누구나 꿈만 꾸면 합격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니 말이다.

수험생에게 원서 한 장은 그야말로 지푸라기와 같다. 일년 동안 어떤 일보다도 공부를 우선으로 하는 고된 수험생들을 대학이 더 이상 '꿈'과 '열정'이라는 단어로 수험생들을 현혹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학사정관제 #대학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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