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기는 쉬워도 칭찬하기는 어렵더라

[주장] <나가수>의 진일보한 논쟁과 분석을 기다리며

등록 2011.04.04 21:04수정 2011.04.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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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시 '우리들의 일밤 -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4주 동안 주던 감동의 여운을 지난 일요일(3일)에는 느낄 수 없었다. 누구 탓이 가장 클까, 라는 노여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어쩜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다. 그래서 이 참에 짧았던 '열혈 시청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동시에 방송을 기획했던 제작진을 독려하는 뜻도 있다.

사실 아직도 분분한 여론의 아우성이 끊이질 않는 마당에 괜스레 나서기가 부담스럽긴 하다. 냄비처럼 끓다가 바로 식는 풍토가 어디 한두 번이겠냐마는, 본질까지 파고드는 문제 의식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자들이 많은 난장판에서 또다른 소음을 보탤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동안 수많은 적극 비판자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지켜봤던 애청자의 답답한 심정을 한번쯤 토해내고 싶었다. 따라서 이 글은 한쪽에 편중해 있다.


<나가수> 논란의 유의미한 쟁점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원칙의 공정성' '예술의 서열화' '대중음악의 기형화' 등이다. 여기서 여러 갑론을박을 다시 옮기지는 않겠다. 다만 다시 환기하는 이유는 개인의 마음을 밑도끝도 없이 드러낼 게 아니라, 주요 쟁점에서 파생한 여러 현상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얘기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송 중단의 책임은 누가 더 큰가?

먼저 명확하게 해둘 게 있다. <나가수>의 중단은 불공정한 방송에 따른 내부 제재의 성격이 짙다. 또한 책임 연출자 김영희는 자진 사퇴한 게 아니라 방송국 경영진이 책임을 물어 그를 경질한 것이다. 아직도 자진 사퇴라 운운하는 이들은 중단 사태의 책임을 연출자 개인의 탓으로만 한정하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

재도전 허용 문제가 원칙을 위배하는 불공정한 사건이라고 보지 않는 입장이지만, 일단 제작진과 시청자의 소통이 원만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첫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시작한 여러 논란을 방송 후에도 여전히 잠재우지 못한 나태 혹은 자만의 탓이 분명 있다. 그런데도 '달'(진짜 가수의 경연)을 보지 못하고 가리키는 '손가락'(경쟁 구도)만 보냐고 안일하게 따지려면, 손가락에 어떠한 조명도 비추지 말아어야 했다. 애초에 탈락을 부각시킨 예고의 남발이 그 일례이다.

그렇더라도 피디 경질과 방송 중단을 선택한 경영진의 판단은 명백한 무리수였다. 운영의 묘를 잘 살릴 수 있게 주의를 주고, 시청자에겐 진심이 담긴 사과의 뜻을 전하면 어느 정도 마무리될 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게시글과 댓글로 성급하게 항의하는 누리꾼 말고도, 차분히 다음 방송을 더욱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대폭 늘어나고 있음을 간과했다. 다음 방송까지만 기다린 다음에 내린 결정이라면 제작진과 애청자들의 아쉬움과 상실감이 지금보다 크지 않았다.


우리 대중음악계의 현실이란?

한편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나가수>가 대중음악계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이상한 궤변도 나온다. 방송 후 음원 순위에서 상위권을 싹쓸이하니 새롭게 가요를 제작하기도 힘이 든단다. 언론을 통해 흘리는 일부 가요제작자들의 이런 엄살은 예술 작품의 창작자가 아닌 계산기 두드리는 장사꾼들의 속내일 뿐이다. 고작 한달 정도의 방송을 두고 이렇게 과민 반응하는 걸 보면, 지금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이들의 위기감을 고스란히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들에게 현재 주류이자 대세인 아이돌 음악의 과잉이 정상인가부터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들 중에는 어린 나이에도 역경을 딛고 나름의 실력을 인정 받는 가수들도 꽤 있다. 그럼에도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의 밀월 관계를 아무 비판없이 놔둔 채 <나가수>의 악영향을 벌써부터 부각시키는 건 어디의 균형 감각인가! 자신들이야 말로 3사 공중파 방송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놓고는 이제 와서 방송 하나 때문에 죽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그리고 음원을 선택한 대중들을 아주 얕잡아 보는 행태이다.

그나마 들어줄 만한 비판이라면, 대중 가요를 너무 가수의 소리 지르는 열창 능력으로만 평가하게 되고, 특정 음악 장르만이 주목 받아 한쪽으로 획일화할 위험성도 있으며, 대중 음악이 보컬리스트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대중 음악 전반을 생각한다면 수긍할만한 문제제기이나, <나가수>와 연관짓는다면 섣부르고 과도한 판단에 불과하다.

음정·박자·발성·기교 등이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능력, 즉 가창력은 가수의 필수 조건이다. 기본 자질도 부족한 이들이 외모와 춤만 내세우며 가수입네 하고 나서는 풍토에 반기를 든 게 <나가수>인데, 당연히 출연 가수들의 가창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눈은 즐거웠을지 모르나 귀는 전혀 그러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이 7명씩이나 한데 모이는 무대가 근래에 있어본 적이 있던가! <나가수>의 존재는 음악을 다시 듣는 시대로 귀환하려는 복고가 아니다. 노래를 창작하는 이야기를 지켜보며 진심이 담긴 음악을 듣고 느끼는 공감각 시대로 진화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나가수'를 정말 부탁해

그렇기에 '진짜' 언론의 역할은 과도한 우려의 시선들만 중언부언 나열할 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감동하며 방송을 보는가를 세밀하게 분석해 내야 한다. 음악 전문가들의 전문 예술 비평이 거의 가뭄에 콩 나는 현실이 우리 대중음악계의 한 단면은 아닐까! 노래가 어떻게 편곡을 했는지 쉽게 설명하고(관련기사), 무엇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동 받는지를 전문 분석하는 기사들이 더 많이 나와야 했다.

도전하는 모습 자체로도 아름답기 때문에 굳이 경쟁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참 아름다운 말씀이자 의견이다. 그런데 경쟁 없는 도전이란 게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경쟁엔 피튀기는 구도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선의의 경쟁도 있는 법이다. 여기엔 만들어가는 이들의 진정성이 중요한 법이다.

앞으로 <나가수>의 미래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당시 호평 일색이었던 '세시봉 콘서트'를 기획한 새로운 연출자가 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편이다. 지난 기사에서 출연진과 제작진이 운명을 같이 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어로 된 옛 노래들 일색에 콘서트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인생 역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면 끝까지 보지도 못 했을 거다. 물론 이는 순전히 개인 의견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나가수>가 심기일전하여 '재도전'한다면, 선의 속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원칙과 규칙을 분명히 세워 놓고 시작하길 바란다. 그래야 피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불필요한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새로운 진입 가수의 선정 근거, 무대 구성 및 특별 손님 초대의 원칙 등등. 한마디로 공연 무대를 운영하는 묘책을 절묘하게 살리길 부탁한다. 여태까지 열혈 애청자가 장황하게 떠든 오직 한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드는 마지막 생각, 욕하기는 쉬운데 칭찬하기는 정말 어렵다!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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