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도 청년노동자다, 최저임금 보장하라!

등록 2011.10.26 17:45수정 2011.10.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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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유니온이 '주요 커피전문점 중 82.1%가 아르바이트생의 주휴 수당을 체불하고 있다'고 폭로한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최소 200억 원에 달하는 임금이 체불되고 있는 현실에 경악했다. 이 사건은 우리 시대 청년들이 직면한 노동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희망하는 그런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청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나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에 뛰어들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많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서 약자인 청년들은 고용주에게 착취당하기 일쑤다.

우리가 대부분 망각하고 있지만 커피전문점이나 주유소,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다.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들의 체불된 임금은 200억 원이라지만, 이들이 체불당한 임금은 아마 수십 조에 다다를 것이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시간당 400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받고 노동을 한다. 최저임금이 4320 원인 시대, 최저임금을 물가를 고려해 생활이 가능한 '생활임금'으로 대체하고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에 1시간에 400원을 받고 노동을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최저생계비가 143만 원인 시대에, 한 달에 10만 원도 채 안되는 돈을 받고 노동을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군인이다(2011년 1월 4일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확정된 군인월급 기준에 따르면, 이등병은 한 달에 7만8300 원, 일병은 8만4700 원, 상병은 9만3700 원, 병장 10만3800 원을 받는다).

20대 담론, 세대론이 유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청년문제에 대한 수없이 많은 논의가 이어져왔다. 청년들은 사회적인 권리들(노동권·교육권·주거권 등)을 박탈 당했으며, 또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문제의 주체인 '청년'으로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예컨대 많은 이들은 대학의 시장화와 청년의 교육권을 상기시킨 대학생 김예슬을 '청년'으로 호명하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아 바다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천안함 장병들을 '청년'이라고 호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년이라기보다 군인이며, 그들이 겪은 사건은 청년문제가 아닌 안보문제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청년 남성들은 군대에 '끌려'간다. 대한민국의 어떤 청년들보다 가장 많은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이 청년 병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들이 생명을 잃어도 속 시원한 해명 한 마디 없는 곳이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있는 20~30대들은 청년이 아니라 군인일 뿐이다. (참조 : 김예슬 vs 故 장지연 vs 천안함 희생자...공통점은?)


20~30대 병사들이 청년으로 호명되지 못하고, 그들의 문제가 청년문제의 하나로 포함돼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병사들이 한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주로 예비역들이 즐겨 쓰는) "저기 사람 한 명과 군인이 지나간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군대는 일반적인 사회 운영 원리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특수한 공간이며, 그곳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2년 간 일반적인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민간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다. 고작 10만 원도 안되는 돈을 주며 온갖 노동을 시키며 착취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는 '군대'잖아!"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문제에 대한 결론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청년의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아야한다는 식으로 흐른다면, 그 대상에는 마땅히 청년 병사(을 비롯한 각종 병역의무자)들도 포함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청년 병사들이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청년 중의 청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치는 2년 동안 일반적 행동자유권,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제한 당한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의사표현의 자유 역시 제한 당한다. 대한민국의 어떤 청년도 이 정도로 권리를 박탈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 병사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이들에게 민간인들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부여해야 할까? 군대의 특수성은 이를 매우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보 때문에, 군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군대라는 계급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청년 병사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그들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라도 지불해야 한다.

이미 군 복무자에 대한 최저임금 청구 소송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이 청구 소송을 기각했지만, 조만간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비슷한 내용의 청구 소송이 제기될 예정이다. 당시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에 관한 논쟁이 진행되면서 가장 크게 제기된 논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군인이 노동자인가'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군인과 같은 의무복무를 노동자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군 복무를 하는 청년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을 근거는 없어 보인다. 군 복무를 해본 청년 남성들은 모두 경험했겠지만, 군대에서는 모두 엄청난 양의 노동을 한다. 민간인이 만일 이런 양의 노동을 하고 한 달에 10만 원만 받는다면, 아마 TV 고발프로그램에서 취재하러 올 것이다. 내 경험담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간 구청에서 복무를 했다. 나는 한 달에 100만 원 씩 받는 계약직들과 한 달에 (밥값과 교통비를 합쳐서) 20만 원도 못 받는 내가 하는 일이 거의 똑같고, 심지어 내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법원 판례에도 이미 군인을 노동자로 볼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있다. 대법원은 이전에 공무원을 노동자(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판결(대법원 1996. 4. 23. 선고 94다446 판결) 내렸는데, 그보다 더 이전에는 군인도 공무원이라는 판결(대법원 1969.9.23. 선고 69도1214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삼단논법에 의거한다면 군인도 노동자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군 복무가 의무복무라는 사실이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부여하지 못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이미 다양한 종류의 의무 복무자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다. 현역병과 의무경찰, 공익근무요원 등만 의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상기해야 할 점은,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청년대책'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가장 기본적인 '군인복지정책'이자 '복지정책'이기도 하다. 청년실업을 해결한다는 목적으로 등장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청년고용할당제'이다. 기업이 채용 시 일정 부분을 청년으로 할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고용 중 일정 비율을 청년들에게 보장해주는 것에 앞서, 이미 고용되어 행한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청년유니온이 임금 체불 사례를 폭로하고 고용주들을 고발하듯이 말이다.

국방부가 군인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내놓은 정책이 군필자 가산점 제도이다. 나는 군대를 가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역차별 논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군 가산점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에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고 외치고 싶다. 군 가산점 제도의 혜택을 보는 이는 군 복무자 중에서도 공무원 시험을 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면, 군 복무자 모두가 그 권리와 복지를 누릴 수 있다. 또한 고용되는데 가산점을 주기 이전에, 이미 고용돼 노동한 바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있는 대로 착취해 놓고 어디서 가산점 몇 점으로 대충 때우려는 건가? 또한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라는 측면에서, 여성과 군대에 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역차별 논쟁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들은 군대에서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또한 군인최저임금은 가장 기본적인 복지정책의 하나다. 최근 수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의 룰을 신자유주의에서 복지국가로 바꾸자는 제언들을 쏟아놓고 있다. 개인의 삶을 시장에 맡기는 대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이 국가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수행되어야 할 국가의 '의무'는 국가를 위해 일한 이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이들의 복지와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 아닐까? 우파들은 복지국가의 '복'자만 나와도 '무상으로 돈을 뿌리는 사회주의'라고 눈을 부라리고 '아무도 노동하지 않으려 들어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고, 땀 흘린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는 국가는 얼마나 '자본주의'적인가. 노동의 소중함을, 그 대가를 국가가 나서서 보장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좋은 일인가.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우파들도 이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혹자들은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면 국가 예산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아니냐고 비판 할지도 모른다. 나로선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해놓고 "임금 줄 거 다주면 남는 게 없어"라고 말하는 악덕 고용주들 간의 차이를 알 수가 없다.

그런 고용주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주기 싫으면 그냥 장사를 하지마"라는 말 뿐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내걸고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면 유지되지 못하는 국가라면 그냥 국가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제로 끌고 가지 말든지, 아니면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공동체 최우선의 목표는 공동체의 유지와 재생산이다. 청년들은 그 재생산을 담당한다. 청년들이 사회적 권리들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문제를 조금 도식화하면 국가가 청년들이 국가의 재생산을 담당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다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착취는 군대에서 발생한다. 안보문제를 고려하되 실현 가능한 조건에서 이 착취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청년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단체들의 그리고 청년 본인들의 더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군인도 '청년'노동자다.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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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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