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돼지'라는 별명을 달고 사는 저에게도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생긴 웃픈(울기고도 슬픈)일화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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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군대에 갔을 때 훈련소를 퇴소하여 자대배치를 받고 내무반에서 신고를 하는데 '짬밥'이 되는 고참들 대부분이 큰 덩치에 깍두기 헤어스타일을 한 '조폭'스러운 저의 외모를 두고 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저의 말에 "너처럼 무식하고 겁나게 생긴 대학생은 본 적이 없다"며 "첫 휴가 복귀할 때 학생증을 갖고 오라"는 고참도 있었고, 100m를 13초대에 주파하는 저를 몰라보고 "몸이 저러니 뛰지는 못할 테고 골대에 데코레이션으로 세워두면 꽉 차보이기는 하겠다"고 빈정대는 고참도 있었습니다. 이미 훈련소에서 15kg이나 빠진 저에게 "살이 안 빠진 걸 보니 훈련소에서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특별히 아침 저녁으로 체력 훈련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고참도 있었습니다.
저는 군생활 동안에도 85kg 정도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고참들의 우려와는 달리 군생활을 게을리한다거나 일처리를 무식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사단 웅변대회에서 사단장 표창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글솜씨와 말솜씨가 있었으며, 각종 훈련에서도 공로사병으로 선정되어 포상휴가도 수차례 다녀왔습니다. 또한 타 부대와 축구시합을 할 때면 상대편이 저를 쉽사리 마크하지 못하는 폭발력 있는 공격수이기도 했습니다(85kg의 덩치가 13초대로 돌진해 오면 웬만해서는 막아내기 힘듭니다).
물론 뚱뚱하다는 이유로 손해만 보고 산 것은 아닙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입시에 체력장 성적이 포함되던 시절이라 학년 중반쯤에 하루 날을 잡아 체력장을 실시했습니다. 100m 달리기 기록을 측정 할 때 감독관 선생님이 저를 비롯해 뚱뚱한 학생 몇 명을 호명하더니 10m 앞에 나와서 달리라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100m를 12초대에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일생을 뚱뚱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성격이 긍정적이고 밝으며, 매사를 유쾌하게 대하다보니 주변의 놀림이나 편견에 상처받는 일은 거의 없었고, 제 몸이 부끄러운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딱 한 번 뚱뚱하다는 것에 절망하고 자괴감이 든 일이 있습니다.
때는 2002년 3월, 모대학교 교직원으로 취업하기 위해 최종면접을 볼 때였습니다. 제가 지원한 대학교는 학생수가 1만5000명에 달하고, 규모가 큰 종합병원도 몇 개나 갖고 있는 지방에서는 꽤 큰 사학이었습니다.
대학 실무자 면접이 끝나고 재단이사장 면접을 보는데 의사 출신인 재단이사장은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특기나 각오, 이력에 대해 질문하면서 저에게는 대뜸 "자네는 몸무게가 몇 킬로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하며 실제 몸무게에서 대충 10kg를 뺀 "87kg 정도 나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재단이사장은 제 면전에 대고 "20대에 벌써 몸이 저런데 40대가 되면 고혈압에 당뇨에 성인병을 달고 살 건데 일 제대로 못시키지..."라고 말했습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저는 다급해진 마음에 "몸은 뚱뚱해도 일은 열심히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했지만 재단이사장은 "취직하고 싶으면 일단 살부터 빼게"라는 말로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순간 저는 화가 나 '사람의 진심과 내면보다는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이런 편협한 조직에서는 저도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하고 싶었지만, 비굴하게도 "네, 살 빼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면접을 마쳤습니다.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이유,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