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멈춘 시간, 여기서 다시 흐릅니다

[탐방] 용산참사 6주기... 이충연·정영신 부부의 새 보금자리 '레아'

등록 2015.01.15 10:52수정 2015.01.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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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에 장식된 '레아'
벽면에 장식된 '레아'박가영

2013년 1월 30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 라디오로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씨의 부인 정영신씨가 진행자와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이충연씨 역시 출소하게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진행자가 물었습니다.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으십니까? 내일 남편이 나오시면."
"고생 너무 많았다고 한번 꼭 안아주고 싶고요. 그동안 소소한 일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둘이 시장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냥 그러고 싶어요."

다른 사람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말에 몹시 먹먹해진 기억이 납니다.

이충연씨는 2009년 1월 20일 일어난 용산참사로 구속돼 2013년 1월 31일까지 만 4년 동안 수감됐습니다. 용산참사는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위에 망루를 짓고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입니다. 이충연씨의 아버지 고 이상림씨도 그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출소 후 2년, 용산참사 6주기가 가까워진 지난 13일 오후 이충연씨 부부의 수제맥줏집 '레아'를 찾았습니다. 부부는 지난해 12월, 아버지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호프집과 같은 이름의 수제맥줏집을 열었습니다.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레아가 있었습니다. 영업 시작 전 가게에 나와 있던 이충연씨를 만나 먼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전의 호프집 레아는 부모님이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식당을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합니다. 온 가족이 주방, 홀, 가게 안팎을 살뜰히 보살피던 그곳엔 지금 빈 공터만 남았습니다. 소주도 함께 팔던 호프집은 새 보금자리에서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참사 전 가족이 보살피던 호프집,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재탄생


 이충연(오른쪽)·정영신(왼쪽)씨 부부
이충연(오른쪽)·정영신(왼쪽)씨 부부박가영

본격적으로 맥주 이야기가 나오자 이충연씨의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주로 파는 건 벨기에 맥주나 미국 크래프트 맥주, 소규모 생산 시설 맥주들인데요, 국내생산 되는 생맥주들도 판매되고 있죠"라며 입을 뗀 이충연씨는 각각의 특징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이만큼 꿰고 있는 걸까 물어보니 "맥주도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공부를 해야 했어요. 또 공부만 한다고 맛을 알 수는 없잖아요. 천장에 장식해놓은 맥주들은 거의 다 직접 구해서 마셔본 것들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요리와 거리가 멀었다던 이충연씨는 이제 매일 주방에 섭니다. 하지만 부인 정영신씨는 "(이충연씨가) 아직도 라면 두 개를 한꺼번에 못 끓인다"며 웃는답니다. 레아를 다시 시작하며 생긴 걱정 하나가 바로 요리였다고 합니다.

"아직 (요리가) 서툴러서 안주를 뭘 해야 할지가 큰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용산철거민대책위) 활동을 하며 만난 분들이 도움을 주셨죠. 저희 가게 대표 메뉴인 노가리는 제주 강정마을의 부회장님께 소개받았고요. 메뉴도 활동가분들이 예전에 후원주점을 하면서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힘을 모아주시고 걱정해주셨죠."

그 덕분인지 "노가리나 소시지, 샐러드 이런 것들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라며 덧붙입니다. 가게를 시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창업교육과 자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게의 페인트칠과 청소 등 공사를 돕는 것 역시 활동가들과 천주교 신부와 신자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등이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달려와 주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부인 정영신씨가 가게에 도착했습니다. 라디오에서 목소리로만 만난 사람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그 바람이 이뤄졌느냐고요.

"생각지 못하게 사면이 이뤄졌고, 충연씨가 나온 다음 1년 정도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긴 시간 싸울 수 있게 도와준 분들 찾아뵙고요. 아직까지 용산과 같은 일을 겪는 곳이 많잖아요. 이런 곳에 다니며 1년이 후딱 지나갔어요.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함께 생계에 대한 걱정도 생겼죠."

천주교 신부들과 강정마을 주민·쌍용차 해고자들까지 도움 손길

 줄지어 선 맥주병들. 이충연·정영신씨 부부가 개업 전 직접 맛을 보고 고른 맥주들이라고 한다.
줄지어 선 맥주병들. 이충연·정영신씨 부부가 개업 전 직접 맛을 보고 고른 맥주들이라고 한다.박가영

그때 생각난 것이 홍대 '두리반'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용산'이라 불린 칼국숫집 두리반은 강제철거 위기에서 500일이 넘는 농성을 한 끝에 2011년 6월 보상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고, 그해 12월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 두리반에 가서 칼국수를 배우자'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그런 비법은 알려주기 쉽지 않은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놀랐어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두리반에 출근을 했죠. 그때 약간은 2009년 (용산참사)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 배운다고 기술이 확 늘지는 않죠.(웃음) 그렇게 고민을 하던 찰나에 신부님들이 교정사목(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며 권하셔서 교육을 받은 뒤에, 그래도 제일 잘하는 맥주장사를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고된 순간이 없을 리는 만무하겠지요. 새 레아를 준비하며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힘들기는 예전 레아를 리모델링하던 때가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땐 가족이 있으니 괜찮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둘이 홀로서기 하는 거거든요"라며 "저희가 지난 시간 보내는 동안 얻은 건 사람밖에 없어요. 한편으로는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걸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부부에게 레아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충연씨가 답합니다.

"궁극적으로 바라는 레아의 모습은 저희처럼 쫓겨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알리고 위로받고 힘을 모아가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공간을 꿈꿨거든요. 그렇게 만들어가야죠."

"쫓겨나는 사람들 얘기를 알리고 위로받고 힘 모으는 공간"

 영업 준비에 분주한 이충연·정영신씨 부부
영업 준비에 분주한 이충연·정영신씨 부부박가영

이 공간에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단단한 의지 역시 담겨 있었습니다. 정영신씨는 남편이 수감된 이후 매일이 2009년 1월 20일에 멈춰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용산을 잊어가고 나 같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기는데, 왜 본인들이 직접 겪어봐야만 아는지…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돌아온 지금, 레아를 시작하는 다짐에 대해 정영신씨가 말했습니다.

"누구는 생계를 잇고 누구는 활동을 한다는 걸 정하기보다 여기 레아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밖에선 또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있고요. 각자 있는 곳에서 얼마든지 용산에 대한 책임과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이번 주를 추모주간으로 정한 용산참사 대책위는 오는 16일 서울 조계사에서 추모문화제를, 서울시시민청갤러리에서는 추모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부부는 입을 모아 "용산참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충연씨가 뒤이어 말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픔이 치유가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해요. 그렇게 하기 전에는 돌아가기가 사실 힘들죠."

추모주간 행사를 여는 것도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6년이 지나다 보니 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릿해져 용산을 알리는 일을 하려고 해요. 이번 행사도 시민들이 함께하셨으면 해요. 부담없이 그냥 시간 맞춰 오셔서 공연이나 전시를 보시고. 용산이 무엇인지, 왜 진행형인지 들어보시고요. 이런 것들이 저희가 바라는 거죠."

레아에서 나올 때는 이미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간 뒤였습니다.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듭니다. 문득 용산참사와 함께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기억해줬으면' 하는 그들의 바람에 무감하던 것은 아닌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어 '잊지 않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한 해에는 거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 잃어버린 일상이 한 뼘 더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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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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