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물기가 촉촉하고 젖은 흙을 보니 새벽에 뜯어오신 듯합니다.
정상혁
줄기 끝에 밭 흙이 촉촉이 묻어있는 부추는 오늘 이른 새벽에 거둬들인 게 분명했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엄마. 목에 수건 하나 두르고, 해도 뜨기 훨씬 전에 집을 나서서 한참이나 허리 숙여 갈무리해 오셨을 터이다.
1남 3녀를 두셨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 갓 어린 티를 벗을 무렵에 다 키워놓은 큰딸을 교통사고로 황망히 잃으셨던 엄마. 다 큰 자식 하나를 가슴에 묻은 엄마는 누나를 잃은 뒤부터 유난히 더 우리들에게 정성을 다하셨던 것 같다.
재래식 부엌이 일하기 불편하다고 누나들 시집갈 때까지 부엌에서 설거지며 속옷빨래 한 번 시킨 적 없는 엄마셨다.
봄 양파작업철, 늦은 오후 돌아온 엄마의 작업 가방 속 땀에 전 수건 옆에는 항상 보름달 빵이 있었다. 새참에 먹으라고 나눠준 빵을 자식들 갖다 주려고 남겨 왔다는 사실을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우리에게 김치 담가볼 기회조차 주지 않으신다.
"엄마, 힘드니까 김치 그만 담그세요."
"나 죽으면 그때부터 느그가 담가 먹어라."
또 다른 신문지에 쌓인 것을 열어보니 노지 깻잎이 한 무더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노지 깻잎치고는 뻣뻣하지도 않아 깻잎 김치 담그기에 제격일 것 같았다. 한 장씩 깨끗이 씻어 차곡차곡 쌓고 급하게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 김치를 담갔다. 넉넉히 만든다고 추가로 양념장을 한 번 더 만들었는데도 깻잎은 그리 많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내리사랑, 난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