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통합

등록 2017.04.05 10:40수정 2017.04.05 10:40
0
원고료로 응원
사회적 쟁점에 이론(異論)이 생겨나고 그 논리를 따라 진영이 형성되어, 진영 간 상론이 시작되면, 어느 순간 어김없이 양비론으로 무장한 소위 통합론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제는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 될 때'라고 외치며, 통합이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 되자'는 방식의 통합.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통합integr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integratio'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 '복구', '회복'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원상태로의 복구라기보다는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복구', '회복'을 뜻한다. 그래서 그 말의 근저에 '생성', '발전'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은 단순히 배제·분리된 대상을 포함inclusion시키는 방식의 배제·분리된 상태exclusion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생성·발전시켜나감으로써 얻어지는 결합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통합의 방점은 결합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제·분리되어 있는 대상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생성·발전시켜나가는 것에 있는 것이고, 배제·분리된 상태의 해소, 즉 결합은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인 것이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통합은 기본적으로 배제·분리된 상태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배제·분리된 대상이 통합에 선행되어있으며, 그 대상을 포함할, 혹은 그 대상이 포함되려는 주체가 또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합은 배제·분리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주체가 통합의 대상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거나, 통합의 대상이 그 주체의 가치를 자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양자 간 배제·분리된 상태를 해소, 또는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 되자'는 방식의 통합에 있어 주체는 누구이며 대상은 누구인가? 이러한 방식이 진정 한국사회에 적합한 통합인가?

지난 세월 '우리'를 강조해 온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토론을 소란이나 혼란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일사불란'이 아름다운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이와 같은 의식 때문에 만약 누군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나서면, 이에 대해 선뜻 토를 달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 되자'는 방식의 통합은 현 시대에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Émile Durkheim의 말을 빌자면, 이는 매우 기계적인 사회통합 방식이기 때문이다. 뒤르껨은 사회의 변화를 사회적 통합 방식의 변화로 규정하면서, 사회통합의 방식을 크게 두 가지,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와, 유기적 연대organic solidarity로 나누고 있는데, 바로 '하나 되자'식의 통합이 이 기계적 연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기계적 연대라는 방식의 사회적 통합은 혈통과 동일성을 통해 형성된 부족사회와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방식으로, 이와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는 혈통과 동일성만으로도 그 사회 내부에서 발생된 이견과 차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는 더 이상 이러한 소규모 공동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회의 외연만이 거대해 진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정체성 또한 매우 다양해졌고, 그들의 사회적 기능은 매우 세분화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분화와 다양성은 더욱더 가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동일성만이 강조되는 기계적 연대와 같은 방식의 통합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진부하고 낡은 통합 방식인 것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다양성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동일성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혹은 공동의 적을 상정하여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만약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를 강압적으로 통합하려고 한다면, 결국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국정교과서 사태를 보라.) 그렇다면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혹은 적합한 통합 방식은 무엇일까? 어떠한 방식으로 이 사회를 통합해 나가야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통합의 의미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국가 정체(政體)로서 민주주의를 선택했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원해서 전제군주제에 종언을 고했던 것도 아니고, 독립을 성취해 냈던 것도 아니며, 군부 독재를 허락했던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가 결정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염원한 독립된 세상에서 이 사회는 반민족행위자들의 치하에서 새로운 국가정체를 맞아야 했고, 어느덧 남북으로 갈라진 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증오해야 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강요된 공동의 적을 증오하며, 동일성만을 강요받고 살아야 했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사회가 공유하고 지향해야할 사회적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못했고, 당연히 어떠한 결정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국민적 열망이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도, 이 사회가 공유하고 지켜나가야 할 공통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서 사람 살만한 세상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자, 동일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간주하여 오히려 제거하려 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기계적 통합이 강요되고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전쟁범죄에 대해 독일에서는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전범에 대한 추모가 일본에서는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그 사회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가치를 부여했는지에 따라 발생한다. 독일사회는 그것을 잘못으로 적시하고, 그 과오에 대한 어떠한 옹호도 용납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그 사회가 함께 공유할 가치, 즉 공통의 기준이자 신념으로 삼았다. 바로 이러한 가치가 오늘날 독일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나가고 있는 집단의식인 것이다. 독일사회에 거주하며 그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가치를 공유해야만 한다.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독일사회에 포함되어 있다할지라도 통합되었다고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사회가 통합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가치, 즉 각각의 다양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의식, 이 사회의 정체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자 신념이다. 특정한 세력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합의된 그런 가치. 그러므로 한국사회는 그동안 충분히 고민할 수 없었던 질문들, 즉 '어떤 민주주의를 국가정체로서 지향해 나갈 것인가',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군부독재의 시대에 대해 한국사회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더욱 더 치열한 토론을 이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문들은 수학문제와 같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이 아니라,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가 그 답을 정해야할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어떤 답을 정할 것인가? 이제는 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더 이상 누구에 의해선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모호한 '하나 되자'식의 통합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하고, 긴 혼란의 시간을 기꺼이 인내해야만 한다. 이는 '우리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오지 못했던, 강대국과 반민족행위자들과 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주어진 대로 살아야했던 과거로 인한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을 주장하려는 자들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공유해야 할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야만 한다. 그것을 통해 통합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반민족행위자들을 청산하려는 세력도, 군부독재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도, 아니 권력을 잡으려는 모든 세력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통합을 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통합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주체가 통합을 위해 제시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 되자'식의 통합만을 외치는 자들은 사회의 통합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자들일 수 있으며, 이러한 자들은 결코 통합의 주체도, 대상도 될 수 없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통합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 하지만 사회통합에는 분명한 주체가 있어야 하며, 바로 그 주체의 가치 아래서 통합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합은 단순한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 #사회통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3. 3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4. 4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5. 5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