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훈 일본 민진당 참의원이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인삿말을 하고 있다.
박철현
"이것도 다 정권이 바뀐 덕분인가 보오. 그동안 너무나들 수고했소."도쿄 재일한국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에서 만난 재일동포 한 분이 내 어깨를 툭 치며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을 보였다. 이 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 2주기 때부터 꼬박꼬박 추도식에 참가하셨던 분이다.
그리고 그때 열대여섯에 불과했던 추도객이 8주기에 이르러 100명이 넘었다. 자리가 부족해 3분의 1은 선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약 두 시간에 달하는 추도식을 자리 한번 뜨지 않고 지켜봤을 정도다.
지난해 7주기 때는 유족 측을 대표해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 참석해 의미가 깊었는데, 올해는 현역 국회의원인 송영길씨가 추모강연을 했다. 또 별다른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일본 민진당 소속의 하쿠 신쿤 (한국명 백진훈) 참의원도 일반 추도객 사이에 끼어 추모식을 지켜봤다. 양동준 도쿄민주연합 상임대표가 그를 발견해 인사말이라도 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있다가 갈 뻔했다.
해외 및 도쿄 이외의 지역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가했다. 독일 민주연합 손종원 대표, 중국 상하이민주연합의 전대웅 대표를 비롯해 하태윤 오사카 총영사, 최보인 오사카 한인회 이사장, 히로시마에서 온 일본 사민당 인사 등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한국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재휘 국제국장, 세계한인민주회의 정광일 사무총장이 직접 도쿄로 날아왔다.
또한 일본인들의 참가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평소라면 한 시간 정도로 끝났을 추도식이 두 시간이나 걸린 이유도 이들을 위한 통역서비스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늘어나는 행사시간 때문에 실무진행을 맡았던 김달범 도쿄민주연합 대표가 "제 인사말을 빼겠고요, 다른 분들도 짤막짤막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내빈들에게 부탁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에 이어 인사말에 나선 하태윤 오사카 총영사는 대등한 한일관계를 정립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간단하게 나열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회담을 통해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 내의 반발은 극심했다. '식민지 지배의 기억이 남아있어 왜색문화가 범람할 것'이라고 언론이 걱정했고, 여론도 매우 안 좋았다. 여론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라면 아마 국내 여론을 핑계 대고 한발 물러났을 것인데 대통령님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밀어붙였고,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한류가 오히려 일본에 정착하고 대등한 한일관계 성립의 단초가 되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정치인으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타 정치인들과는 다른 부분이다.""동북아 정세 보면 '김대중 정신의 복원' 필요하지 않나"
지인으로부터 추도식 소식을 듣고 참가했다는 하쿠 신쿤(한국명 백진훈) 참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요즘 같은 시대야말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 대등한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를 위해 평생을 다하신 그 노력을 남아 있는 우리들이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기 위해서 저부터 당장 일요일 한국에 가 한일의원연맹 모임에 참석해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김 전 대통령의 변함없는 철학이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보자' 아니겠는가"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내빈들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추모강연에 나선 송영길 의원은 "지금 동북아 정세를 보면 '김대중 정신의 복원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송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이 러시아 특사로 파견되었던 일화 등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하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또한 송 의원은 서두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도 곁들였다.
"이 추도식의 역사를 듣고 놀란 게 뭐냐면 원래 이런 행사는 대사관이나 민단에서 공식행사로 해야 하는데, 지난 정권 하에서는 그게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좁은 장소에서 마치 독립운동하듯 추도식을, 그것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매년 했다는 것이 매우 놀랐다. 한편으론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이 독립운동도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아 너무나 기쁘고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