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 다가오는데.... 올해 배추는 포기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⑫] 좌충우돌 올해의 텃밭 농사 이야기

등록 2018.11.07 09:32수정 2018.11.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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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자급해보겠다며 시골에 왔는데,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농사 이야기를 잘 못한다. 누가 농사짓는다고 소개라도 할라치면 화들짝 놀라 그냥 조그마한 텃밭 가꾸는 것뿐이라고 해명(?)을 한다(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올해 농사를 돌아보면 7월까지는 열심히 김도 매주고 장마 대비도 했는데, 폭염이 시작되고부터는 밭에 갈 엄두도 못 냈다. 농사일지를 뒤져보니 6월엔 이틀에 한번, 7월엔 사흘에 한번은 밭에 갔다. 그러다 8월엔 딱 한번 갔다. 이러니 그동안 애써 심은 작물들이 멀쩡할 리 없다. 풀이 얼마나 자랐는지 여기가 밭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 크고 무성한 풀들을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또 의욕이 꺾였다. 아이고, 참!

뭐라도 거두어들인 작물들

이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거두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서리는 또 뭐가 그리 급했는지 10월 초에 벌써 와버렸다. 올해 이 마을 서리는 베테랑 농사꾼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빨랐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무서리(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 '된서리'와 구분해 쓰인다)만 와도 바로 망가지는 고구마 수확이 제일 급하다.

한 달 전, 비가 내리며 추워질 예정이란 일기예보를 듣고 부랴부랴 고구마를 캤다. 잔뜩 올라온 풀들 사이로 고구마의 세력이 그래도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작년엔 어떻게 캤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호미와 삽으로 파냈다. 캐다보면 시장에 나오는 고구마들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한지 신기하다.

난 맨날 뚝뚝 끊어버리고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기대가 적어서인지 조금만 큰 고구마가 나와도 어찌나 기쁘던지! 비료 주고 키운 것만큼은 아니어도 꽤 큼직한 고구마도 스무 개 남짓 됐다. 자잘한 것들과 합쳐서 한 상자를 캤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수확이 나쁘지 않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말려서, 상처가 심한 것부터 밥 지을 때 넣어 먹는다.
      
땅콩 수확 땅콩을 캐서 흙을 씻어내고 있다. 작년엔 아무 생각없이 흙을 씻지 않은 채로 말리는 바람에 두고두고 땅콩 까먹을 때마다 손에 흙이 묻었다.
땅콩 수확땅콩을 캐서 흙을 씻어내고 있다. 작년엔 아무 생각없이 흙을 씻지 않은 채로 말리는 바람에 두고두고 땅콩 까먹을 때마다 손에 흙이 묻었다.김진회
 
다음으로 땅콩을 캤다. 작년에 농사가 잘 되기도 했고, 여기서 만난 토종 붉은땅콩이 맛있어서 가장 애지중지 키운 작물인데, 이 역시 폭염 때부터 풀에 치였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이유에선지 잎이 누렇게 말라 죽는 녀석들이 있다. 지난해의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맛난 땅콩을 잔뜩 주었는데 올해는 그보다 좀 적었다.


분명 초여름까지는 밭에서 가장 잘 자란 작물이었는데 꾸준하고 성실하게 돌봐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더위에 지지 않을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올 여름보다 더한 더위가 온다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아직 운동은 시작도 안했다.
 
토란 잘 자라고 있던 토란
토란잘 자라고 있던 토란김진회
   
토란 무서리 맞은 토란
토란무서리 맞은 토란김진회

반면 토란은 믿기지 않는 성장을 보여줘 수확량이 기대되는 작물이었다. 지난해에도 토란은 가뭄도 이기고 잘 자라서 그 큰 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거둔 것도 꽤 있었다. 그 덕에 생소했던 토란국에 맛을 들일 수 있었는데 올해도 밭둑 한구석에서 놀라울 정도로 큰 잎을 키워냈다. 거의 사람 키만 한 녀석도 있다.

역시 서리를 맞기 전에 캐는 게 좋고, 특히나 그 크고 멋진 잎은 서리가 내리자마자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토란대'를 먹고 싶다면 일찌감치 수확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 내린 서리와 이런저런 바쁜 일 핑계로 올해도 늦었다. 11월이 된 지금도 밭에는 아직 못 캔 토란이 남아 있다.
   
벼베기 10월 13일, 벼를 베어 볏덕에 걸어둔 모습. 말리기 위해 걸어둔다.
벼베기10월 13일, 벼를 베어 볏덕에 걸어둔 모습. 말리기 위해 걸어둔다.김진회
 
벼베기도 가을철 바쁜 일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올해 논농사를 짓지 않았다. 대신 밭에다 밭벼를 심어보았다. 밭벼는 수확량과 맛 모두 논벼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논농사를 짓자면 밭과는 별도로 논으로 쓸 땅을 마련해야 하는 데다 많은 양의 물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 같이 조그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부담이다. 특히 요즈음같이 해마다 가뭄이 들 때에는 양수기로 퍼 올리는 지하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지하수를 뽑아내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며칠씩 양수기를 끄지 않고 돌려야만 논물의 수위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가뭄이 퍽 잦기 때문이다.

우리 밭벼 씨앗은 토종씨앗을 많이 갖고 있는 '수성'이라는 친구에게 얻어왔다. 홍천에 있는 밝은누리 공동체 분들과 우연히 만나 오랜 시간 밭벼를 키워온 그분들의 경험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게으른 탓에 그리 성장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익어서 고개를 숙인 벼들이 밭 한가운데에 함께 서있는 풍경이 새롭다.

10월 중순쯤 개구리님 논의 벼를 지구학교 사람들과 함께 베면서 우리 밭벼도 베어서 섞이지 않도록 볏덕 한쪽에 걸어 말려두었다. 올해는 시범적으로 심어본 것이라 양이 정말 적다. 지난 주말엔 그렇게 볏덕에 걸어 말려두었던 벼를 탈곡했는데, 우리 밭벼는 발탈곡기를 쓰기에도 너무 적은 양이라 섞이지 않게 집에서 '홀태'(촘촘한 날 사이에 벼·보리·밀 따위의 이삭을 넣고 훑어내어 낟알을 터는 농기구)를 이용하거나 손으로 털기로 했다.

요즘이야 '콤바인'으로 벼를 베면서 동시에 털어서 바로 자루에 담겨 나오니 탈곡 과정이 따로 없지만, 여기서는 아직 낫으로 베어 말리고 발탈곡기와 도리깨, 풍구를 이용해 털고 골라낸다.
 
벼타작 11월 3일, 벼타작을 하기 위해 모인 모습. 오래된 발탈곡기가 보인다.
벼타작11월 3일, 벼타작을 하기 위해 모인 모습. 오래된 발탈곡기가 보인다.김진회
  
올해 농사에서 잘됐던 걸 꼽자면 딸기와 오크라가 있다. 딸기는 5, 6월에 잘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것은 잼으로 만들었다. 오크라는 여름부터 최근까지 계속해서 따먹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많이들 먹는 채소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하다. 나도 여기 와서 작년에 처음 봤다. 모양은 고추와 비슷한데, 고추가 매끄럽고 동그랗다면 오크라는 겉이 살짝 거칠고 모양도 각이 져있다. 우리가 키우는 오크라는 별 모양인데 둥근 모양에 가까운 오크라도 있다고 들었다.

고추와는 반대로 뾰족한 쪽이 하늘을 보며 열린다. 식감은 독특한데 속에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한 것이 들어있다. 주로 샐러드, 비빔밥으로 먹고 된장국에도 넣는다. 농사가 쉽고 먹기도 편해서 우리에게 잘 맞는다. 얼마 전에는 동결건조된 채소 스낵을 먹다 오크라가 섞여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삭하게 동결건조된 오크라조차 안쪽은 특유의 끈적임이 남아있어 놀랐다.

흔적도 남지 않은 작물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은 그나마 뭐라도 건진 작물들이다. 이래저래 심기만 하고 거두지 못한 작물은 수도 없이 많다. 일단 수박은 핸드볼 공만한 것 하나 겨우 건졌고, 호박은 아예 풀에 뒤덮여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맛있게 먹었던 사과참외와 먹참외도 거의 못 먹었다. 먹참외는 그나마 한두 개라도 먹었지만, 사과참외는 그나마 열린 많지도 않은 열매를 제때 수확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한개도 못 먹었다.

지난해에도 어려웠던 옥수수는 양분이 많지 않고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땅에서 올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감자도 그 많은 쑥을 뽑아내고 열심히 심었건만 끝까지 잘 돌보지를 못했다. 그밖에도 선비잡이콩, 여러 종류의 토마토 등도 열심히 심어는 놨는데 시원치 않았다.

가을 농사는 더했다. 조그맣게 배추 몇 포기만 하자고 했는데, 그게 압권이었다. 처음에 배추 씨앗을 심었는데 싹이 나자마자 벌레가 다 먹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개구리님이 심고 남은 모종을 주셨다. 그래서 또 열심히 가져다 심었는데, 꽤나 큰 그 모종도 며칠 만에 벌레가 다 먹어버려 여기 뭐가 있었나 싶게 다 없어졌다.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원래 좀 늦은 시기에 심는다는 토종 조선배추 씨앗을 심었다. 이번에야말로 벌레 활동 시기도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 희망에 찼지만, 아니었다. 누가 그랬던가?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고. 올해 배추는 포기다.
#귀촌 #텃밭 #자연농 #홍천 #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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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지금은 홍천에서 자연농을 배우고 있는 한량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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