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11시 모란공원에서는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3주기를 맞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와 함께 하는 '2021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있었다.
박석운
문송면·원진직업병 참사 33주기를 맞이하면서 또다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만 해도 광주에서 다단계 불법하도급 업체에 의한 철거작업 도중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가 하면, 글로벌 수준의 혁신기업이라는 쿠팡 물류창고에서는 소방 장치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은 채 가동되다가 화재가 발생하여 몇 날 며칠 동안 물류센터가 통째로 불에 타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화 작업하러 들어간 소방관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밤샘 작업을 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난 뒤의 시간이었기 망정이지 자칫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산재 직업병 참사가 끊이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시기와 장소, 그리고 그 양태만 달리해 가며 비슷한 유형의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33년 전 1988년 7월 2일, 15세 소년 고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였고, 이어서 확인된 직업병 피해자 숫자가 930여 명, 사망자 숫자만도 230여 명에 달하는 원진직업병 참사가 알려졌습니다. 문송면-원진직업병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산재직업병 참사, 이제는 근절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정부도 산재예방종합대책을 수립하면서 산재예방에 나섰지만, 산재직업병 참사는 변함없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13년 전 2008년 1월에 발생한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신축 현장 참사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지만, 사업주는 불과 2000만 원의 벌금을 받고 빠져나갔습니다. 당시 정부 당국과 모든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였지만, 12년 만인 작년 이맘때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38명의 노동자가 또 사망하는 비슷한 산재 참사가 반복되었습니다.
불과 2년 6개월 전인 2018년 12월 태안화력 작업 현장에서 비정규직 청년 고 김용균 노동자가 처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죽음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법은 개정되었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산재 직업병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만한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고,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로 인한 처참한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참담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김미숙 어머님, 이용관 아버님 등이 몸을 깎는 헌신으로 앞장서 투쟁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산재 직업병 참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또 다른 김용균들이 전국 각지에서 계속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촛불 정부를 표방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산재 사망률을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약하였지만, 실제 한국의 산재 사망자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산재왕국"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영국의 12배, 유럽연합(EU) 국가 평균의 5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피맺힌 외침에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
너무나도 참담하고 한스럽고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 이제는 끊어야 합니다. 그 출발점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그 입법취지에 맞게 똑바로 적용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확실한 법집행을 추진하여 기업이 적극적 산재예방책을 실행하는 것이 도리어 기업경영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립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벌금이나 보상금 물어주는 것이 안전조치 제대로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싸게 먹힌다"는 자본주의 법칙 때문에 산재직업병 참사가 계속된다는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참에 내년 대선에 출마하려는 분들에게 산재직업병 추방을 확실하게 약속할 것을 제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책 실시로, 임기중에 산재사고 사망률을 OECD 평균 수준인 현재의 1/3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하고 안전감독관을 대폭 확충해야 합니다. 산업안전보건청의 법적, 행정적 권한을 강화하고, 아울러 '노동안전 지킴이' 또는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의 책임과 권한을 제대로 부여하는 제도개선을 시행하여, 특히 지역·업종별 중소·영세사업장의 실질적 산재예방에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또한 '적용범위 확대', '인과관계 추정' 등 관련 법(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실효성 있게 보완하되, 산재예방의 원청 책임 원칙을 확실하게 관철시키고, 원청․대기업에는 감독․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중소·영세기업에는 지도·지원 업무를 위주로 하고, 처벌을 보조적으로 하는 차별화된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50인 미만 중소영세·외주하청 사업장이나 프리랜서·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맞춤형 산재예방 지원책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특히 건설현장과 같은 산재다발․산재취약 업종에 행정력을 집중시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실행할 필요가 있고, 또 다른 산재다발 업종인 조선업종을 재하도급 금지 업종에 포함시켜, 위험을 외주화시키는 악순환의 구조적 고리를 차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농업노동자나 어업노동자와 같은 안전보건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산재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이들에 대한 맞춤형 산재예방 지원책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현재 구조적 모순이 태산처럼 축적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여러 생명들의 피맺힌 외침에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산재직업병 참사를 근절하기 위한 획기적 변화를 만들어 나갑시다. 이번에는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종식시키고,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범국민적 힘을 결집시켜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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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 어치 벌금"... 자본주의 법칙 탓에 참사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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