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심 여사 마지막 길 배웅하는 만장행렬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고(故)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서 만장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이 35년 전 한 평범한 어머니를 거리에 나서게 했을까. 무엇이 35년 동안 힘 약한 이들과 민주주의 길을 함께 가게 했을까. 11일 오전, 눈발 휘날리는 광주 5.18민주광장에 많은 시민이 모였다.
약 두 달 전, 전두환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는 달랐다. 이날 따라 바람이 유독 세차게 불었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옷깃을 더 단단히 여미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고 배은심 여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춥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수놓은 풍경이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의 노제 겸 영결식은 이한열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추모연대 등을 주축으로 한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가 고인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배 여사가 향년 82세로 영면에 든 이날은 고인의 음력 생일이었다.
배 여사는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역에 안장된 남편 고 이병섭씨의 곁에, 그리고 아들 묘소로부터 1km 떨어진 자리에 안치됐다.
전날 저녁, 아빠가 배은심 여사 사회장 현장에 같이 가보자고 권했다. 정작 당일날, 피곤하고 눈이 많이 온다는 이유를 둘러대며 나는 대답을 번복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한열 열사도 아닌데, 어머니의 장례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내심 들던 터였다. 그러나 한 운동가의 노제 소식을 알고도 외면하기에는, 괜히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시민이 되는 것만 같았다. 마지못해 이불 밖으로 나와 자다 일어난 눈을 비비며 유튜브 생중계 영상에 접속했다.
그저 편하게 시청하고 있던 내 마음은 얼마 안 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추모사를 듣고 보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만 명명되기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를 향한 그의 헌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35년간 민주화 위해 투쟁해 온 '민주주의 어머니'
"사람들이 이한열을 기억하는 순간을 위해 부지런히 다녔던 거예요."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한 아들 이한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뒤, 배 여사는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배 여사는 민주열사들의 유가족들이 모여 만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과 함께 유가협을 이끌었다. 1998년부터는 유가협 회장을 맡으며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의 결실을 이뤄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촛불 집회 등을 거치면서 유가족들과 사회의 아픔을 함께했다. 특히 용산 참사 때는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보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배 여사는 지난 2020년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의 35년 대장정 기록 속에서, 자식 잃은 어머니의 원통하고도 애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배 여사가 아들을 따라 똑같이 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만든 시대 현실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처음엔 어머니로서 아들을 위해 택한 길이었지만 평화와 민주화를 염원한 아들의 진정한 뜻을 이어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과 국가가 외면한 곳에 찾아가 큰 위로와 힘이 돼주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더 값지게 다가왔다.
"민주주의 그냥 온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