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레미콘 차량화물연대 파업 엿새째인 2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한 레미콘 업체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있다.
연합뉴스
나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운전을 하고 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영월과 단양의 양회공장에서 각지의 레미콘 공장으로 시멘트를 운송하는 게 생업이다. 지난 목요일인 11월 24일부터 나와 동료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컨테이너와 시멘트 부문에서 시행하고 있는 안전운임제를 입법화하고 적용품목을 철강, 유류, 택배, 사료곡물, 자동차 운송 등 계량화하기 쉬운 부문으로 확대하자는 것인데 정부와 화주 쪽에선 우리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화물 운송을 볼모로 불법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화물을 운송하는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안전운임제가 2020년 2월부터 현장에 적용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해 1월, 안전운임제에 대해 설명하러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 봉변당할 뻔 했다. 과장이 아니다. 다 좋았다. 짐을 싣기 위해 한나절씩 기다려야 했던 부분에 대한 대기료, 회차료, 험지 수당, 야간 수당, 휴일 수당, 과적금지 조항 등등.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아니, 없느니만 못했다.
화물차주들에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여 과적과 과로, 난폭운전과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게 안전운임제의 취지였다. 일종의 최저운반비 개념으로 이를 위반하는 화주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법으로 정해진 안전운임은 '위험할' 정도로 낮았고 그 이상을 지급할 '착한' 화주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최저운반비만 지급했다.
15년 넘게 적던 운행일보 작성을 그만둔 이유
2020년 봄, 내가 다니고 있던 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출발지는 강원도 영월의 쌍용양회, 도착지는 경기도 안성의 OOOO레미콘. 네이버 지도상 편도 주행거리는 127km. 나는 한 탕에 25만 8천원을 받고 그 길을 5년째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리를 2020년 2월 시행된 안전운임표에 적용하면 톤당 8750원, 26톤을 실으면 한 회당 운반비는 22만 8천원이 된다. 내가 다니던 공장만 운반비가 떨어진 게 아니었다. 같은 일을 똑같이 하는데 월수입이 100만 원 넘게 줄어든다면 누가 이걸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화물노동자들은 모두 '운행일보'를 작성한다. 한 회전 당 기름 값이 얼마, 통행료가 얼마, 그 달에 지출한 타이어 오일 라이닝 비용이 얼마, 그래서 한 해 매출이 얼마에 소모가 얼마... 시시콜콜하게도 적는다. 이걸 15년 넘게 적다가 그해엔 그만두었다. 한 푼이라도 줄이고 아껴보겠다고 기름을 '쥐어짜는' 게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다. 요즘 언론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어 화물차운전수들의 수입이 두 배가 되었고 운송비 부담 때문에 기업이 도산할 지경이라고. 이게 무슨 소린지, 당사자 입장에서 답해 주어야 할 의무감이 생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1993년에 벌크 시멘트 운송 트레일러 일을 시작했다. 다들 그랬던 것처럼 맞교대 월급 기사로 일을 배웠다. 맞교대는 두 명의 기사가 한 대의 차량을 교대로 운행, 가동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식이다. 믿기지 않게 무식한 방식이지만 추석과 구정 당일만 빼고 차는 굴러가야 했다.
24시간 한숨도 안 자고 운전하는 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도대체 일 년 삼백육십사일 근무가 가능하냐고? 우리는 다들 그렇게 했다. 많이도 다치고 여럿도 죽었다. 짐 싣고 상차장에서 출발한 차가 공장 정문에서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주 5일제, 48시간 근무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일산, 평촌, 분당 신도시와 서해안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 건설로 시멘트 육송 수요는 넘쳐났다.
일을 그만두는 동료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