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한 역사가 반복되는 한, 우리는 상복을 벗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하나... 슬픔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등록 2023.04.12 09:40수정 2023.04.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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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분향소를 에워싸고 지키는 중이다.
4일 오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분향소를 에워싸고 지키는 중이다.권우성
 
"저는 요즘 우리 삶에서 아픔이나 슬픔이 거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지난주 고향에 갔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몇 날을 무거운 침묵 속에서 헤매다가 오늘 또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제 고향은 수년 전부터 해체 속도가 빨라져 이제는 다섯 가구만 사는 작은마을이 됐습니다. 교회 잘 다니는 두 살 위 옆집 언니가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글쎄, 이번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딸을 잃었답니다. 저는 그 얘길 듣는 순간 정신 줄을 놓을 뻔했습니다."


이 장탄식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올해 초 셋째 목요일에 열린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위한그리스도인월례기도회'에서 세월호 참사 때 자녀 창현이를 잃은 어머니 최순화님이 내놓은 고백이다.

이분은 세월호 참사 후 '꿈의숲기독교혁신학교'가 마련한 유가족 위로 기도회에 오셨던 분이다. 생때같은 자식이 졸지에 의문사를 당했는데 원인조차 알 수 없어 밤낮없이 탄식하는 유족의 손이라도 잡아주자는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무슨 말로 위로한다는 것이 가당찮은 일이라 피맺힌 가슴 속 이야길 그냥 들어주면서 슬퍼하고 같이 울어주었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목요기도회 후 잠시 마주한 창현이 어머니는 세월호 참사 진상을 밝히겠다고 만들어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9월 10일에 3년 반이나 걸려 내놓은 보고서에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른다'라는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어 우리는 수용할 수 없었고,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느껴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한 달을 버티는 중, 또 10.29 참사라는 핵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속이는 것이나 무책임함이나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지 유가족들은 이중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분노한다고 공감을 표했다.

짧지 않은 8년 동안을 울며불며 '아이들이 죽은 원인만이라도 알게 해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건만 끝내 외면당한 일을 눈물을 훔치며 조곤조곤 얘기했다. 세월호 잠사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고 외면한 한 달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답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지난번 8주기 때 여러 학교에 초대를 받아 강연했을 때 또래 아이들의 질문 대부분이 "왜 침몰했어요?", "구할 수 있었다는데 왜 안 구했어요?"였다고 한다. CCTV 영상문제만 해도 "세상이 다 아는 대로 제일 중요한 몇 초가 사라졌잖아요"라고 하기에 그건 고의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외력설'에 대해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10.29 이태원 참사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급질문을 했을 때 먹먹한 가슴으로 머뭇거리다가 딱히 할 말이 없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이나 이태원에서 죽은 아이들이 우리 아들놈하고 같은 또래입니다"라고 처연히 동문서답을 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해답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10.29에 딸이 죽은 고향 이웃집 그 언니네 가족은 참사 후 분향소에 가서 유족들과 대화할 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고 하기에 그저께도 분향소에 있는 언니를 찾아가 함께 울고 왔단다. 그들이나 우리 세월호 유족이나 제일 섭섭하고 분한 것은 '언론이 정직하지 않은 것, 왜곡 보도하는 것'이란다.

대통령도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면서 "목사님! 어디 글을 좀 써서 우리 이야기 좀 널리 알려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공감 능력 제로이고 몰인정한 한국교회에 대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가슴이 쓰리다고 통탄했다.

그렇다. 8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못된 행태에 일관성이 있는지. 자식 잃은 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주려는 최소한의 인정이 있기나 한 건지. 속이고 변명하고 심지어 겁박하는 자들의 몰 인간성. 역사가 조목조목 기록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참사 8주기 기억식' 때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장애진 양은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은 건 사고가 아닙니다. 유가족들이 여한이 남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또, 먼저 간 친구들을 향해서 "부모님도 많이 지치고 힘들거야. 꿈에 나와서 한 번 껴안아 주고 가. 고생하셨다고"라고 말해, 눈물이 왈칵 솟았다. '지금도 국가는 없다'는 팻말을 종일토록 들고선 세월호 아빠 엄마를 올해도 또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리다.

매월 셋째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위한그리스도인월례기도회'를 올해부터는 개교회가 하루씩 전담키로 했단다. 그날은 사랑누리교회(김정태 목사)였다.

시편 22편을 통해 '우리가 여전히 버림받은 것 같은 현실 가운데 있지만 희망의 길도 분명히 열린다'고 전하면서, "이제는 상복이 피부처럼 들러붙어 떼어지지가 않습니다. 주님, 이 사회에 정의롭지 못한 역사가 반복되는 한 우리는 이 슬픔의 상복을 벗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라고 기도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원홍씨는 서문교회담임목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연구위원입니다.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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