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위협받는 일터의 여성노동자들(자료사진).
픽사베이
사람의 몸이 모두 다 다양하듯,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몸에 끼치는 영향도 모두 다르다.
'산업재해'라는 단어를 보고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말해보자. 공사장, 커다란 배, 심한 부상을 입은 남성 노동자들의 모습. '산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위험한 노동현장에서의 남성 노동자들로 일반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는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나이와 국적, 성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 다른 다양한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각각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는 당연히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다양하게 발생하는 산재에 대하여 제대로 된 대응을 하려 하는 것은 남성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기 위함도 아니고,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를 서로 대립관계로 보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원하는 것은 딱 하나, '모두가 안전한 일터' 아니겠는가.
이 책의 지은이들은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성인지적인 시각을 반영했을 때 여성만이 아닌 모두가 안전한 일터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현재의 일터가 누구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맞춰져 있는지를 드러냈을 때 비로소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편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296쪽).
이 책에 따르면, 많은 일터에서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의 육체노동이나 물리적 사고만 산재가 되는 줄 알거나, 유방암과 같은 여성들의 질병이 산재가 되는 줄 모르거나, 정신질환은 산재를 신청해도 승인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산업재해의 '산업'은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고 여성이 속한 일터는 산업으로, 온전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비판한다(122쪽).
이러한 배경에는 노동안전보건 정책들과 기준들이 모두 남성 노동자가 집에 있는 여성에게 가사와 돌봄을 의존하던 시기에 고안된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때문에 안전보건 규정은 서비스직 여성들이 안고 있는 위험요인을 외면한 채 공장 안의 표준화된 몸에 여전히 머물러 있고, 결국 남성 노동자에 맞춰진 안전과 보건 기준으로 보면 여성의 몸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노동시장의 구조 또한 변화됐는데, 그 안의 건강권 침해에 대해 이전 잣대로 판단을 한다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즉 여성의 몸에 걸맞은 새로운 안전과 보건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별을 떠나 계속해서 새로운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노동의 유형과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면, 그 안에서 침해당할 수 있는 건강권과 산재에 대한 시선의 확장이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한다.
'경력 단절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약 2년 전, 애들 친구 엄마의 소개로 학생들이 많이 하는 학습지를 채점하는 일을 시작했다. 일은 아주 단순하다. 학생들이 스마트기기로 푼 학습지를 컴퓨터로 하루에 할당받는 양을 채점하면 되는 일이다.
요일마다 배정량이 달라지는데 하루 평균 네 시간을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 있어야 한다. 채점 실수가 다 기록되기 때문에 최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컴퓨터 화면을 집중해서 보며 일을 해야 하니 어깨결림과 눈 피로감이 상당했다. 학습지 한 장당 약 10원을 조금 넘게 받으며(하루 일당으로 치면 평균 약 1만 원 정도이다) 약 한 달을 채점하면 초등생 기준, 딱 애들 한 과목 학원비 정도 벌 수 있다.
일을 하는 시간이 유연하고, 쉬는 날을 채점교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어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 노동 착취의 현장을 좀 더 이어갈 생각이다. 지금은 어깨결림과 눈의 피로감이 만성처럼 굳어졌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새이지만,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어깨결림은 매우 놀라울 정도였다. 겨우 장당 10원 남짓 받으려고 이 어깨결림을 참아야 한다는 게 조금은 서럽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경력단절 여성이 아이 양육에 공백을 두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가 딱 이 정도라는 현실은 좀 더 서러웠다는 건, '안 비밀'!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의 사이를 치열하게 투쟁하며 오고가는 노동현장들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는 아주 당연하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라는 당연한 명제가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게 되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면 다시 당연한 명제로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것은 업무상 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다방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저 내 몸으로 일해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정답을 찾아보자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몸들과의 연대'. 결국 연대가 희망이다. 이 책의 한 부분을 끄적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는 보상-예방-재활이 긴밀하게 연결된 제도를 바탕으로 성별, 인종, 장애 여부,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모든 몸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일터에서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다른 몸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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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란 단어에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성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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