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마음을 미처 몰라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쪽지를 남기고 퇴근했는데, 책상 위에 답장이 와있었다.
A씨
- 노동 강도가 상당하겠어요.
"온 몸을 쓰는 일이니 골병이 들죠. 저와 제 동료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대부분 허리 디스크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최대한 관리 하면서 일하는 거고, 그러다 아예 찢어지거나 터지기도 해요. 다들 손목보호대 차고 일하고요. 산재로 처리한 경우는 없고 치료비도 개인 부담이에요. 저희 포함 어떤 시설에서도 그런 사유로 산재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큰 부상이나 질병으로 아플 땐 유급휴가를 주는데, 운영 예산이 딱 맞춰져있다 보니 단기인력을 고용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코로나 때 대체인력지원센터가 생겨서 이런 경우에 공백을 메울 수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는 주된 사유에는 건강 문제보다 정서적 탈진 이슈가 더 많아요. 아이들 훈육 과정에서 아동에게 쌍욕이나 폭언 듣는 건 예사예요. 멱살을 잡히고, 주먹다짐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어요. 아이들도 그런 표현이 진심은 아니에요. 양육자가 고정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며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욕구를 충분히 해소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훈육도 일관적이지 않고요.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시설 아동들이 충동조절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안쓰럽고 이해도 하지만 아동의 분노와 원망, 피해의식을 아무 필터 없이 면전에서 듣는 일은 정서적인 손상을 입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에서 일하시기로 한 까닭이 있다면요?
"일단 사회복지를 선택한 건, 영리 기업에서 일하는 게 제게는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성과를 내는 활동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껴서요. 지역아동센터는 장기적인 케어가 힘든 경우가 많았어요. '방과 후 돌봄'의 영역에서는 간섭하기 어려운 양육태도의 문제라거나 가정 내 방임과 무관심, 폭력 등이 너무 안타깝고, 그런 안타까움이 쌓이고 쌓여서 '학부모' 없는 곳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동양육에 있어 제가 추구하는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가능한 한 안정적인 애착 관계 안에서 밝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시설들끼리 모이는 큰 행사에 가면, 가끔 다른 데서 온 6, 7살 또래 아이들이 두 시간 내내 떠들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경우가 있어요. 어리광 피우기 어려운 환경이겠구나 싶어서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어린이가 어른 눈치를 보면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하는 사람끼리도 최대한 감정 상하는 일 없고 다투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할 일이 눈에 계속 보이고, 해둬야 할 것이 항상 밀려있다 보니, 아이들 살피고 돌보는 데에 쓸 힘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동료들의 업무 여건이나 정서적 탈진이 오지 않게끔 나름대로 계속 살피고 애쓰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잘 되고 있는지. 솔직히 아동생활시설은 복지 쪽에서도 '3D'이기 때문에…. 그런데 또 한편에선 워낙에 고된 일이라는 걸 알고도 이 일터에 남아있는 생활지도원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 일과 일터를 애정과 열의로 지켜가는 게, 제가 우리 일터와 제 동료들에게 마음깊이 가지고 있는 경의와 자부심이기도 해요."
- 애정과 애씀이 무엇 하나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양육시설은 인력배치 기준이 아동 7명당 생활지도원 1명이라고 하던데. 인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어떠세요?
"보건복지부의 <시설종사자 가이드라인>에는 아동 7명당 보육사 1명, 경계선이나 발달장애 같은 장애아동 경우는 1.5명으로 상정하라고 권고하지만, 이게 지자체마다 달라요. 운영비가 지자체에서 나오니까, 지자체장에게 재량권이 있거든요. 일관된 가이드라인도 없고 담당 공무원도 보직변경으로 주기적으로 바뀌니 매번 다시 확인하고 소통하며 행정업무를 하는 편이에요. 전반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위생원, 간호사, 영양사, 자립전담요원, 생활복지사 등의 다양한 직무별 시설종사자를 배치할 수 있는데, 아동 수에 따라 지원되는 인력이라 제가 일하는 소규모 시설에는 사무원, 조리원, 자립전담요원과 생활지도원들 뿐이에요. 저는 생활지도원이면서 3교대 스케줄을 짜고 조율하는 중간관리자 역할도 겸하고 있고요. 공백이 생기면 안 되는 돌봄의 영역과 노동인권 사이에서 헤매게 될 때가 많아요. 권리와 권리가 경합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장에선 자꾸만 한 쪽의 헌신을 고려하게 됩니다. 이것도 그나마 52시간 교대근무제 도입돼서 인력이 추가된 거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