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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범죄 묘사에 열광... 이건 언론 역할 아냐"

[인터뷰] 이완수 동서대학교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

등록 2024.07.29 10:36수정 2024.07.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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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 ⓒ 권우성

 
범죄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현재 방영 중인 범죄 관련 프로그램만 10개 가량이다. 몇몇 채널에서만 시도하는 것도 아닌데다, 프로그램 형식 또한 교양부터 예능까지 폭이 넓다. 이런 흐름은 언론에서도 목격된다. '사건속 오늘'(뉴스1), '세기의 미제사건'(조선일보) 등 과거의 잔혹 범죄를 발굴해서 재조명하는 기사가 최근 부쩍 눈에 띈다. 

과거 범죄를 재조명하는 연재 기사는 잔혹 범죄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데 지면 대부분을 할애한다. 범죄에 사용된 도구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신체 부위의 훼손 정도를 세세하게 그려내며 시신 처리 방식도 설명한다. 아예 도입부에 "잔혹한 범죄 상황 묘사가 포함돼 있다"라는 경고 문구를 넣은 뒤 기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TV나 영화 등의 영상물과 달리 연령 제한이 없는 이런 보도에 문제는 없을까. 범죄 보도는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7월 초 '저널리즘 가치 제고를 위한 범죄보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완수 동서대학교 미디어콘텐츠대학 저널리즘 전공 교수는 '디지털 시대, 한국 언론의 범죄보도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발제했다. 

이 교수는 이날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언론의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을 소개한 뒤 한국언론재단이 일선 기자나 간부를 대상으로 윤리 교육 등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완수 교수를 만나 더 나은 범죄 보도를 위해 어떤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지 물었다. 

"조서나 판결문 그대로 옮기는 건 언론의 역할 아냐"

이완수 교수는 "언론이 실제로 일어나는 범죄보다 양적으로 더 많이 범죄 보도를 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보다 지금의 언론의 범죄 보도가 훨씬 나빠졌다"고 비판했다. 


"범죄가 실제로 10 정도 일어난다면 범죄를 다루는 언론 보도는 20 정도로 많다. 특히 과거와 달리 현재는 보도가 실시간으로, 자주 그리고 크게 이뤄지기 때문에 사회에 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원래 대중들은 네거티브한(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다. 특히 범죄 보도는 네거티브한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교수는 언론의 상업주의적 관행을 지적하면서 "범죄에는 (다른 사건 보도와 달리) 스토리텔링이 용이한 행위자와 상황, 그리고 맥락이 있다"라며 "범죄를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기사에 상세하게 묘사할 수록 독자들에게 자극을 주게 되는데, 이런 흐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제적이었던 범죄 보도로 수원 오원춘 살인 사건(2012)과 김학의 성접대 사건 기사를 꼽았다. 그는 쇠사슬, 최음제 등 해당 기사에 등장한 단어를 하나씩 짚으면서 "뉴스에서 읽어야 할 표현이 아니었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 교수는 "범죄 보도는 결국 표현의 문제다. 낯뜨겁고 외설적인 단어를 쏟아내는 것이 언론의 사명은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세한 범죄 보도로 인한 모방 범죄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 교수는 "살인이라는 건 사람을 죽이는 행위 자체만으로 단순화시켜서 볼 수 있지만 피·가해자의 관계를 보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살인을 위해 엄청난 준비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라면서 "살인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정보가 없다면 쉬울 것 같나, 어려울 것 같나? 언론에서 이 과정을 자세히 보도하면 일종의 매뉴얼을 제공하게 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나 CCTV 등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범죄 보도를 지속해나가는 행태에 대해서 이 교수는 "기자들이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전달자로 역할하는 데, 이것이 기자의 임무가 아니다"라며 "사건을 재구성해 어느 범주까지 보도할 것인지를 윤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범죄 보도는 경찰이나 법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 자료는 대부분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다"라며 "그걸 그대로 복사해서 기사에 써야 옳을까 아니면 정제된 형태로 재구성을 해야 옳은가"라고 반문했다. 

범죄 보도 자체가 모두 문제이고,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교수는 "범죄가 왜 일어났는지를 짚어 사회적 경각심을 높인다는 차원해서 범죄 보도도 중요하다"라며 "유사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자각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라고 짚었다. 다만 언론이 "범죄 과정을 중계하면 그저 '끔찍한 범죄' 정도로 소비되고 마니, 범죄 행위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필요하나 실천이 더 중요"
 
a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

이완수 동서대 미디어콘텐츠대학 교수. ⓒ 권우성

 
이완수 교수는 한국 언론에 더 구체적인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원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는 원칙 보다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돼왔다. 그렇기에 가이드라인을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만든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을 한국 현실에 적용해 기자를 대상으로 수시로 교육할 필요도 있다. 기사쓰기를 계속 훈련 받듯, 범죄 보도 윤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보도 가이드라인은 어느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할까. 이 교수는 미국 내 한 기구를 언급하면서 "2009년에 발간된 '범죄 희생자를 보도하는 기자들을 위한 가이드'라는 책자가 있는데,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가 밤에 혼자 걸어갔다거나 술을 마셨다거나 노출이 심하다는 언급을 하지 말라고 한다.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했다는 인상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의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사법기관의 범죄 퇴치 활동에 방해가 되는 행동 금지'라는 조항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범죄 수사 등에 언론이 끼어들어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일이 생긴다"라며 "수사가 진행 중일 때 기자들이 앞질러서 '예단 보도'를 하기도 하고 수사에 혼선을 초래해 용의자 검거에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럴 때를 위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엔 경찰과 언론이 협력해 범죄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든 사례가 있다. 이 교수는 이 사례를 들면서 "경찰은 범죄 보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니 언론과 서로 합의를 볼 필요도 있다"라며 "범죄 보도가 선정적으로 나가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범죄 보도 공표에 대한 관련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이완수 교수는 "기자들은 바쁘다. 특종 경쟁을 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규범적인 보도를 하라는 주문도 받는다"라며 "딜레마 상황에서 언론사 내부에서 범죄 보도에 대한 대원칙을 세우고 이를 숙지하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그나마 기준이 있으면 왜 기준을 따르지 않았느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기준이 없으면 비판하기 어렵다. 기준 없이 무절제한 보도가 나오고, 이는 결과적으로 나쁜 보도를 만든다."
#범죄보도 #가이드라인 #잔혹범죄 #범죄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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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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