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감성으로 국내 최고의 무용 작품 보지 않겠어요?"

[인터뷰] 무용수 출신이 기획한 댄스필름영화제 오선명 PD

등록 2024.08.24 15:33수정 2024.08.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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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최근 두 달간 이어진 찜통같은 무더위가 8월 막바지에 이르자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게다가 오후 8시를 넘기자 옷깃을 파고드는 옅은 바람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담긴다. 대학로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코예술극장의 상징 같은 적별돌. 그곳에 둘러싸인 돌담벽에 가로 13미터, 세로 4.8미터의 거대한 통천에 이런 문구가 지나가는 이들을 반긴다.

'이 스크린을 통해 여러분이 댄스필름과 함께 휴가를 떠나기 30분 전'


푸른 잔디 위로 적벽돌과 라임을 맞춘 서른 개의 빨간 릴렉스체어가 관객들을 기다린다. 아직은 영화가 상영되기 30분 전인데, 영화를 준비하는 관계자는 주변에 이렇게 소리친다.

"시원한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어요. 편하게 가져다 드시면서 영화 관람하세요."

야외에서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난 2021년에 시작한 이래 줄곧 온라인으로 진행해왔는데,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나오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란다.

필자는 지난 23일, 늦은 오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극장장 강량원)이 기획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야외 앞마당에서 열린 '아르코댄스필름 영화제(아웃 오브 3×3)'(아래 영화제)에 참여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캐릭터와 자막을 얹힌 국내 최고 무용단들의 댄스필름 6개 작품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이전과 다른 점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최첨단 기술을 통하여 국내 최고 무용수들의 몸짓이 담긴 영상미가 한결 친숙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영상이 송출되는 내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는 극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번 '아르코댄스필름 영화제'에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무용계의 단체와 무용수들이 펼쳐낸 6개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뒷받침하듯 이번 영화제를 기획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오선명 피디는 "이번에 공개한 작품은 그동안 '아르코댄스필름 A to Z'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았던 대중적인 작품들"이라며, "생성형 AI로 제작된 고양이 캐릭터 '디렉터YOU'가 이해하기 쉽게 작품을 설명해준다"라고 설명했다.

a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1. BAKI < Layer > (3' 49")


제일 처음으로 영화제의 포문을 연 작품은 국립발레단의 촉망받는 솔리스트에서, 사진작가와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영역을 넓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BAKI(박귀섭)의 'LAYER'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그는 200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07년 뉴욕 국제 발레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발레리노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스테이지 위에서 내려와 무용수를 렌즈에 담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영역을 탈바꿈했다.

자신의 작품 비결이 스스로 '무용'에 있다고 자신할만큼 "몸을 가지고 표현해봤기 때문에 몸을 잘 담을 수 있다"고 고백했다. 작품에는 총 24개의 거문고 악구가 겹겹이 쌓인 선율이 만난 레이어 위에서 하나의 곡으로 완성된다. 바키의 무용을 했던 미디어아티스트로서의 작품이랄까. 사람의 오묘한 감정이 오롯이 건네옴을 느낄 수 있다.

#2.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댄스 < foggy하지마 > (4' 23")

두 번째로 상영된 작품은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댄스의 'foggy하지마'. 공기질이 파괴되어 숨 쉬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그동안 꾸준하게 환경오염 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온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댄스의 작품이다. 한결같은 주제의식을 가진 단체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담은 < 1.5℃ >를 제작했다.

단체는 이 작품을 통해 '2022년 천안춤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공기질 오염 문제를 다룬 'foggy하지마'는 환경재단에서 주최한 ECO CREATOR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2023년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의 범위는 무궁무진하게 만든다. 결국, 환경오염 등과 같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까지 비언어인 몸으로 표현하려는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의 일괄된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a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현장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3. 쿱 코다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4' 31")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로댄스 프로젝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 파사무용단, 고블린파티, EDx2댄스컴퍼니, 트러스트무용단, PJH댄스컴퍼니. 이름만 들어도 대번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용계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9개의 현대무용단이 참여하는 현대무용협동조합 쿱 코다(Coop-Coda)의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도 주목받는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9개 단체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더욱이 서로의 특징을 앞뒤로 비교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들에겐 공통의 주제가 주어졌다. 우리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인터넷, 휴대전화, SNS 등에서 펼쳐지는 죽음을 부르는 범죄와 관련된 사이버폭력(Cyber Bullying, 인터넷 상의 집단괴롭힘을 뜻하는 신조어)을 다루는 영상미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아홉 단체가 품고 있는 저마다의 색깔을 짧은 시간 안에 비교하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관람팁이라면 팁.

#4. 디렉터 You < Pina's Dance > (4' 00")

아르코댄스필름은 인공지능(AI) 댄스필름을 선보이고자 생성형 AI인 '디렉터YOU'를 탄생시킨다. 담당 피디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디렉터가 될 수 있다"는 중의적 표현을 담았다고 한단다. 고양이의 모습을 한 캐릭터인 '디렉터YOU'는 독일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의 춤을 접한 후 '춤'이라는 언어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주변과 깊은 소통을 경험하게 되는 내용을 담은 영상이다. 이를 위해 이번 영화제에는 이번 작품을 위해 '생성형 AI제작 댄스필름'이라는 소제목을 별도로 붙였다.

a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에 직접 관람해본 모습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에 직접 관람해본 모습 ⓒ 필립리


#5. 멜랑콜리 댄스컴퍼니 <서울을 달리다> (7' 48")

정인철 안무가가 이끄는 멜랑콜리 댄스컴퍼니는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를 예술로 바라보며 다양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인간 삶을 주제로 속도, 리듬감, 무게감을 통한 변주를 인간사와 현상에 대한 섬세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동시대의 멜랑콜리한 감정을 고스란히 수용하며 예술을 통해 신체 언어의 확장, 한계를 극보하여 미래와 이상으로의 도달을 보여주고자 한다.

도시 속에서 달리기도 춤이 되고, 도시도 무대가 되는 뛰어난 영상미를 연출함으로써 상영되는 작품들 중에서 가장 영상적 완성도가 높아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영상은 무용이 아니라 영화에 가장 가까운 효과를 연출했으며, 도시에서 촬영한 속도감으로 인해 유튜브 속 댓글도 빠르게 불타오르고 있다.

#6. 콜렉티브 에이 <원형하는 몸: round1> (13' 45")

얼음-물-증기의 순환과정을 몸에 비유한 콜렉티브에이의 '원형하는 몸:round1'가 이번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에서 솔로 공연으로 초연된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을 통해 기술적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높여 더욱 주목 받는다. 작품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증기가 되는' 물의 순환과정을 통해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 가상의 것이 혼합되고 서로 상관 관계 속에서 반응하는 현대무용과 미디어아트 그리고 사운드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퍼포먼스로 완성된다. (꼬리가 꼬리에 물고 헷갈리지만 결국 돌고돌아 순환이 된다는 의미이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얼음이 녹으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의 사운드와 움직임은 청각적, 시각적 요소로 합성, 분해, 증폭되어 무대에 반영된다. 이를 통해 무수하게 변형되고 진화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여 원형과 변형 사이의 끝없는 변화와 반복을 스스로 상기하는 현재의 상태를 감각한다. 무엇보다 얼음, 물, 증발의 순환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영화제의 상영시간은 오후 8시와 9시에 걸쳐 총 2회 진행하며, 작품별로 약 4분~14분으로 다양하다. 연령의 제한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아르코댄스필름은 2021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4년째를 맞고 있으며 매년 새로운 다양한 상영작으로 구성된다. 오는 30일, '아르코댄스필름 영화제'의 두 번째 상영일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무용수 출신이 직접 기획한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 비하인드 스토리

a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를 기획한 오선명 PD

아르코댄스필름영화제를 기획한 오선명 PD ⓒ 본인 제공


십여 년 전에는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 출신이었지만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무용 PD로 활동하고 있는 오선명 PD를 만나 직접 이번 영화제에 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무용PD로서 이번 사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주요 방향성인 '접근성' 기후변화' '다양성' 중에 나는 '다양성'을 맡고 있다. 다양성이라는 것이 포괄적인 의미이다 보니 어디서 어디까지 범위를 두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무용 분야라 댄스필름으로 집중했다. 예술극장의 댄스필름사업은 코로나 시기에 시작됐는데,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다가 이번에 아르코예술극장 앞마당에서 오프라인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게 기획했다."

- 무용 전공자로서 무용은 왜 일반사람들이 낯설어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무용은 몸과 불가분의 관계라 태생적으로 내재적 특수성이 있다. 몸의 언어라는 비언어적 요소의 표현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일반 관객과의 접점에서 괴리가 생긴다. 하지만 요즘엔 정말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도 지금처럼 다양한 기획으로 관객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무용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르코댄스필름과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2021년 코로나시기에 온라인으로 '아르코댄스필름 A to Z'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로예술극장에 작은 전시장을 만들어서 댄스필름을 지나는 누구나 볼 수 있게 QR코드 설명과 전시 작품이 함께하는 '스테이지 3x3'이라는 쇼윈도우 전시장을 만들었다. '스테이지 3x3'은 1평 남짓한 작은 쇼윈도우 전시장을 활용한 시도였는데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에 전시장을 넘어 아웃도어로 나온 개념이 이번에 하는 아르코댄스필름 영화제 '아웃 오브 3x3'이다.

이런 전시와 댄스필름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인천국제공항터미널1의 초대형 미디어타워(세로27m, 가로10m)에 예술극장이 제작한 댄스필름 < ALIVE >를 송출하며 댄스필름 장르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 오는 30일에 대학로를 찾은 관람객을 위해서 소개한다면?
"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끝자락에 모든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캠핑감성으로 구성됐다, 관람하는 모든 분께 무료로 아이스크림과 시원한 음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예술극장 앞마당이 캠핑장으로 바뀌니 모두가 힐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오선명 피디는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니스 안티폴리스 대학교 공연예술학과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파리8대학교 무용학과에서 미학&예술 테크놀로지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다수의 대학에서 강의하고있으며, 2012년부터 2017년까지 SPAF 무용PD 및 프로그램 디렉터로 근무하였다.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획PD로 재직하고 있다.

#아르코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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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지 '문화+서울' 편집장과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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