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와 진보당, 기본소득당이 함께 연 '전주페이퍼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망자 유가족이 고인이 적어둔 메모장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쿠팡배송 일을 하다가 과로로 사망한 정슬기씨가 쿠팡관리자와 주고받은 카톡 문자는 문학작품이었다면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비판을 받았을지 모른다. 쿠팡 관리자는 "달려주십쇼ㅠ"라고 요청했고 노동자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했다.
정슬기씨의 아버지 정금석 장로는 <뉴스앤조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의 가르침 중에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내 자식 키우고 내 가정 꾸리느라 그 일을 잘 못하고 살았어요. 이번 일을 당하고 보니까 제가 잘못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늘 자신을 탓하는 산재 유가족들을 보면서 김남주의 시 <아기를 보면서>가 떠올랐다.
김남주의 시는 산재유가족에 의해 계속 낭독되고 있다
아기를 보면서 / 김남주
제비꽃을 만지작거리는 아기의 손가락
봄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고사리 같고
장다리밭에서 나비를 쫓는 아기의 눈동자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 초저녁의 샛별 같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기지개를 켜는 품은
비 온 뒤 쑤욱쑤욱 자라나는 죽순 같네
오 여보게 친구 우리 아기 좀 보게
어서어서 키워서 그 손에 호미를 쥐어줘야겠네
어서어서 키워서 그 손에 괭이를 쥐어줘야겠네
봄이면 들에 나가 나물이나 캐먹고 살라고 그러는 게 아니네
가을이면 산에 올라 칡뿌리나 캐먹고 살라고 그러는 게 아니네
콩나물 한 그릇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서울이 무서워서 그러네
별 하나 아름답게 키우지 못한 서울 하늘이 저주스러워서 그러네
고기 한 마리 병들지 않고 살지 못하는 서울의 강이 싫어서 그러네
우리 아기 고운 아기
나물이나 뜯어먹고 칡뿌리나 캐먹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지언정
맑은 물 맑은 공기 푸른 하늘과 가까이 벗하며
흙과 더불어 시골에서 살았으면 싶어서 그러네
(사상의 거처, 창작과비평사 1991)
산재사망 노동자의 가족들은 늘 '그렇게 위험한 일인 줄 알았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울이 무섭고, 서울이 저주스럽고, 서울의 강이 싫다는 김남주의 시는 죽음의 일터가 무섭고, 죽음의 일터가 저주스럽고, 죽음의 강이 싫다는 유족의 말로 반복해서 낭독되고 있다.
다른 시를 낭송하는 부모들도 있다. 아기 손에 호미와 괭이 대신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쥐여주는 부모들이다. 지난해 상속세를 낸 국민은 1만9944명에 불과하다. 총 12조 2901억 원을 세금으로 냈는데, 이들이 물려받은 자산은 무려 51조 8564억 원 이다. 세금을 제하고 39조 5663억 원으로 평균 약 20억 원씩 물려받았다.
누군가는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없는 돈을 누군가는 부모를 잘 만나 가지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아니라 20억 원을 물려주는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걱정한다. 정치인들은 상속세를 깎아주는 것을 중산층 대책 서민 대책이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한다. 산재부모의 시는 읽히지 않고, 부자부모들의 시는 널리 널리 퍼져나간다.
우리가 읽고 들어야 할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