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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쟁이 아닌 학살"... 어느 팔레스타인 난민의 호소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알란티시를 만나다

등록 2024.10.04 11:15수정 2024.10.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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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레 알란티시1 살레 알란티시

살레 알란티시1 살레 알란티시 ⓒ 박영록


2023년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쐈다. 작전명 '알아크사 홍수'. 알아크사 사원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통 성지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격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이스라엘판 9·11테러'라며 하마스의 '도발'을 비난했고, 한국에선 이날부터 시작한 사태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부르며 갈등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관점에서 본 역사의 한 조각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0월 7일 이전부터 이스라엘 공격으로 희생당하고 있었다. 이번 분쟁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023년 10월 28일 "1948년 이후 제2차 독립전쟁"이라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건설 이후 70년 넘게 이어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와 집단학살의 연장선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이유로 다시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이 심해진 것뿐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알란티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1900년대 초부터 팔레스타인 땅으로 넘어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낸 역사를 봐야 한다"며 최근의 사태를 '전쟁'이 아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라고 정정했다. 독립된 주권을 가진 두 나라가 싸워야 전쟁이라는 지적이다. 전쟁인지 학살인지 판단할 때, 정치조직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 전쟁'으로 알려진 '집단학살'이 벌어진 지 1년이 됐다. 가자지구에 살다가 지난 2022년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살레 알란티시를 지난 9월 13일 만나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참상, 한국에서 난민 신청자로 살아가는 현실적 어려움, 한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생각 등을 들었다. 통역은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가 맡았다.

*최근의 사태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데 동의하지만 인터뷰 질문에선 서구 국가들과 한국 다수 언론의 친이스라엘 관점을 반영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표기한다.

세 번이나 파괴된 집,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

- 자기소개를 해달라.


"내 이름은 살렌 알란티시, 27살이다. 가자지구 '이브나'에서 왔다. 1948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 1945년, 이스라엘이 건국과 동시에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실향과 이산을 의미한다) 이후 할아버지가 살던 지역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2022년 한국으로 유학 왔다."

- 한국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


"지난해 10월 7일 이전부터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나 발언 등을 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사실을 전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등 네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가족과 이웃의 삶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 집은 세 번이나 파괴됐고, 지금은 집이 없는 상태다. 첫 번째는 1948년 할아버지 고향이었던 이브나 지역의 땅을 빼앗겼고, 2000년경 인티파다(Intifada,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단어.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 운동을 의미한다) 당시 가자지구 국경에 있던 땅은 몰수당했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난민캠프에서 지내다 집이 폭파돼 가족들은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 3명의 형과 2명의 누이 등 가족 7명이 모두 난민이 됐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삼촌도 죽었다. 너무 많은 친구들이 이번 학살로 사망했다. 가자지구에선 수많은 가족들이 학살당하는데 이러한 사망은 대부분 공식적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땅과 생명을 빼앗기거나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 지난 9월 5일 한국 축구대표팀이 팔레스타인 축구대표팀과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전 경기에서 비겼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가 경기장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응원했고 살레씨도 같이 응원했다고 들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소 410명의 스포츠인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도 최초로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경기를 보면서 다양한 감정이 들었을 것 같다.

"처음엔 응원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가자지구에서 선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살해당하고 있지 않나. 가족과 친구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축구를 보고 즐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날 초대해서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한국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응원한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있었다."

-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처음 한국 왔을 때는 자동차 수출입 일을 했고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상황이 바뀌면서 그 일은 그만뒀다. 지금은 농부로 일하면서 연세대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경기도 여주에 종교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 고용돼 땅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다."

- 한국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어렵나? 물가가 높아 생활비가 부담되거나 병원에 가기도 어려울 텐데.

"현재 난민 신청자다. 난민 심사 인정 절차가 6년이 걸릴지 7년이 걸릴 지 알 수 없어 신분이 불안정하다. 가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관련 직종 취업은 어렵다. 병원비도 상당히 부담이다. 다행히 아직 크게 아프지 않아서 문제가 없었다. 건강보험은 일하는 곳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받고 있다. 한국 물가가 비싸서 지금 급여로 충분하진 않지만 일단 난 먹을 수 있지 않나. 오늘 아침 가자지구 친구들이 '기쁜 소식'이라며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두 가구당 1kg의 양파를 지급했다고 전해왔다. 이런 상황에 놓인 친구들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

-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했는데 어떤 과정이 남았고 필요한 건 무엇인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유엔 난민기구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난민증도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시 난민 지위 신청부터 해야 했다. 신청하고 1년이 지났지만 인터뷰도 못 했다. (출입국관리소를) 서너 번 방문했는데 기다리라고만 한다. 6개월마다 신분을 갱신하다 보니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불안하다. 이 업무를 전문적으로 전담해 줄 변호사가 필요하다. 전문 지식이 있는 변호사가 난민 인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길 희망한다. 한 단체에서 변호사를 소개받았는데 300~400만 원을 요구해서 거절했다."

a  살레 알란티시 난민증을 보여주는 살레 알란티시

살레 알란티시 난민증을 보여주는 살레 알란티시 ⓒ 박영록


- 현재 가자지구 상황은 어떤가?

"가자지구에선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먹는 물도 아닌 씻을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5~6시간 돌아다녀야 한다. 가자에서 35명의 아이들이 기아로 사망했고 1만 명이 넘는 실종자가 잔해에 깔려있다. 내 친척 중 한 명도 실종됐는데 7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 물리적으로 7개월 동안 생존할 수 없지만 시신을 못 찾았으니 살아있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이 하늘에서 공습을 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계속 움직여야 한다. 거리에서 살고 거리에서 잠을 잔다. 텐트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내 누이의 집 바로 옆에 폭격이 있었다. 누이의 시어머니는 직접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한 시간 뒤 사망했다. 폭격의 충격으로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 노출되고 있는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는 어떨까."

- 최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인질 6명이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이스라엘에서도 휴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총리는 강경한 입장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말하기 조심스럽다. 이스라엘 인질 6명이 사망해 시위가 벌어졌지만, 1만5000명에 달하는 가자지구 어린이 사망자에 대한 언론보도와 비교하면 모순적이다. 이게 국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의 차이, 극단적으로 친이스라엘 시선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종전을 하고 집단학살을 멈추는 것에는 환영한다. 하지만 종전 자체가 우리의 최종적인 희망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점령으로부터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한다."

- 만약 휴전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개인적으로는 일단 친구들에게 전화해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가자지구의 집과 빌딩 75%가 완전히 파괴됐다. 사람들에게 임시거주지, 임시보호소가 너무 필요하다. 또 가장 기본적인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 시급한 문제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질문이 나에겐 이상하다. 한국 사람들은 두 개의 정부가 있고 양국이 노력하면 갈등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점령이 있었고 인종청소가 일어났다. 누가 그 땅의 주인이고, 누가 살았고, 현재 누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가. 현재 나의 고향 이브나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다. 아마 평화롭게 살고 있을 거다. 내게 점령은 곧 인종청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돌아갈 권리와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1948년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에선 팔레스타인 난민이 자신의 땅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했다. 국제법이 귀향권을 명시해서 보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갈 수 없다. 내가 가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이 날 죽일 것이다. 먼저 땅을 되찾고 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협상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점령자들은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은 러시아로 돌아가고, 유럽에서 온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먼저다."

- 지금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로 생각해 보자. 한국의 문화나 권리를 존중하는 일본인이 오면 환영하지 않겠나. 하지만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을 죽이고 쫓아내고 땅을 빼앗으면 어떻게 할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1900년 초부터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고 쫓아냈다. 그러다 1948년 나크바를 맞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방을 걱정하기 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미 쫓겨났고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아 달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오해나 편견은 대부분 친미·친이스라엘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의견을 듣고, 읽어보면 선명해질 거다."

"한국 시민사회의 지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힘이 돼"

- 참여연대와 사단법인 아디가 지난 5월 시민 5000명을 모아 이스라엘 전범 7명을 한국 수사기관에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했고 그때 고발인으로 같이 참여했다. 국가수사본부가 관할권을 이유로 각하했지만 여러 국제단체가 자국에서 이스라엘 전범을 고발을 하겠다며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아디의 고발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지역뉴스와 알자지라 등 아랍 언론에서 이번 고발 사건이 소개됐다.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한국에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한국의 지지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큰 의미가 있다."

- 한국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난해 10월 이후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이 급속히 성장했고 한국인들의 진정성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시위와 캠페인에 참여해 깜짝 놀랐다. 이런 활동으로 팔레스타인과 한국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고맙다는 말 그 이상의 표현을 하고 싶다. 한국 시민사회의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 삶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영록 작가
통역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덧붙이는 글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난민 #가자지구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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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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