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혁 지사 자택 거실의 벽에 걸려 있던 훈장과 훈장증
정만진
2023년 10월 10일 권중혁(權重爀) 지사가 타계했다. 1921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영일군 죽장면(현재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340번지에서 출생했으니 향년 102세였다. 지사는 대구 마지막 생존 독립운동가였다. 자택에서 면담을 하고, 거실에 걸려 있던 훈장을 감격에 겨워 바라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권중혁 지사의 출생지 죽장면 입암리는 구한말 산남의진의 치열한 전투 현장이다. 지사가 태어나기 14년 전 그의 고향마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본다. 지사는 어릴 적에 어른들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까? 고향 산천을 물들인 의병 정신의 붉은 피가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소설 형식으로 짚어본다.
권중혁 지사의 고향마을 입암에 서린 역사
1907년 10월 6일이다. 척후병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일본군이 청송에서 죽장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산남의진 대장 정용기는 영장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이 신시(오후 4시 전후)다. 왜적은 행군 속도로 보아 오늘밤 입암 마을에서 유숙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미리 매복해 있다가 전격적으로 야습하여 놈들을 일거에 척살한다."
아픈 몸을 무릅쓰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대장의 음성은 어쩐지 선이 가늘었다. 장수들은 공연히 처연한 기분에 빠져들어 대장을 애잔하게 바라보았다. 사방에는 어느덧 어스름이 깃들었다. 산골이라 중추의 밤공기가 더욱 차가웠다.
"후봉장은 군사 서른 명을 이끌고 입암서원 터 뒤의 송내마을에 매복해 있으라. 적이 가사천을 따라 내려올 터인즉 그 뒤를 밟아 입암마을 입구까지 전진하라. 우포장은 입암마을이 바라보이는 자호천 건너편에 잠복해 있으라. 연습장은 입암마을에서 봉화봉으로 오르는 길목의 평지마을에 매복하라. 적이 입암마을에 완전히 들어와 군장을 풀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다리라."
세 장수가 결연한 낯빛과 음성으로 힘차게 "옛!" 하고 대답한다. 의병대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나도 곧 뒤따라 군사 100여 명과 함께 명미마을 쪽으로 갈 것이다. 명미마을이 입암마을 북쪽이니 우리는 사방에서 물샐틈없이 적을 포위하게 된다. 내가 총을 쏘아 공격 개시 시점을 알리면 그때 모두들 한꺼번에 적을 들이치라. 우리가 사방을 막고 있으니 도망치는 적병들도 모두 처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왔다. 어둠과 함께 적병 수십 명이 청송 쪽에서 가사천 물길을 따라 입암서원 아래로 왔다. 후봉장 이세기는 적을 놓칠세라 잽싸게 따라붙었다. 그것이 첫 번째 화근이었다.
그 수십 명은 적의 본대가 아니라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인 척후병들이었다. 적 척후병들의 후미에 따라붙은 이세기의 의군은 저절로 적의 본대 앞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스로 호랑이 아가리에 뛰어든 꼴이었다. 게다가 그 착각은 적의 세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낳았다.
이세기는 대장의 명령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저 정도 적이라면 우리 전군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만약에 적이 입암에 유숙하지 않고 그냥 남하해버리면 어쩔 텐가!'라고 생각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담대하게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총을 쏴라! 놈들이 보일 때 어서 총을 쏴!"
탕! 타탕!! 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오자 우재룡과 김일언의 부대는 총공격이 시작된 것으로 오인했다. 우재룡은 평지마을에서 내려와, 김일언은 자호천을 건너와 입암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일본군 척후병들은 자취도 없었다.
상황이 끝난 줄 오인한 의진군은 입암서원 아래의 선바위 물가 주막에 모여 무용담을 펼치며 쉬었다. 그때 일본군 본대가 들이닥쳤다. 작전 계획과 정반대로, 오히려 아군이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총탄 날아가는 불빛이 어둠의 마을을 덮었다. 예상하지 못한 적의 포위 공격에 놀란 아군 병시들은 화급한 나머지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제 막 공격 채비를 하고 있던 정용기의 본대와 명미마을 들머리에서 마주쳤다. 시커먼 무리들이 달려들자 적병으로 여겨 총격을 가하려던 의진 본군은 그것이 아군 병사들인 줄 알고는 기겁을 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정용기가 물었다. 미처 누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적의 총알이 아군을 향해 쏟아졌다. 모두들 허둥대며 땅바닥에 몸을 눕히기 바빴다. 이미 적탄에 맞아 주검으로 넘어진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정용기도 왼쪽 가슴팍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적은 가사천과 자호천 물속에 불쑥불쑥 솟은 거대 바위들 뒤에 몸을 숨긴 채 사격을 가해왔다. 아군은 평지에 노출된 신세였다. 또 다른 화근도 있었다. 아군은 흰옷 차림이었다. 달빛도 거의 없는 그믐밤이었지만, 그래도 희끗희끗한 노출은 검은 옷에 비해 훨씬 심했다.
"모두 보현산으로 철수하라!"
정용기 대장이 간신히 비명을 토했다. 우재룡이 대장을 들쳐 업고 뛰었다. 아군은 보현산으로 올라가는 양지마을에 당도한 뒤에야 숨을 고르며 잠시 군을 점검할 수 있었다.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좌영장 권규섭이 전사했고, 병사들도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 정용기 대장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렵고 가파른 고비였다. 오랜 벗인 이한구와 손영각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자신의 고향과 인근인 신령 출신 의병장 권규섭도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채 정용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장! 대자앙~!"
장졸들의 애타는 울부짖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용기는 자신을 부둥켜안은 채 통곡만 되풀이하고 있는 우재룡을 그윽이 바라보았지만, 끝내 아무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재룡은 그렇게 의형을 잃고 말았다. 정용기는 말이 없고, 우재룡의 뜨거운 울음소리만 보현산 자락을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