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용산집무실 앞을 찾았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은평시민신문
"유가족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으로 위로받고 공감받을 수 있었어요. 그제야 모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조금씩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뉴스고 뭐고 전혀 안 보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위험 신고가 계속 들어갔는데도 왜 경찰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사고 이후에 사고처리는 왜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같은 생각과 의문을 품은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 유가족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이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대통령이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행안부장관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시민단체 계신 분들, 변호사 분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맞아요. 그래서 국회에 요구를 하게 됐죠. 특수본에서 내놓은 결과는 그냥 공중 유체 현상이라는 말밖에는 없었어요. 누구를 기소하지 않겠다는 설명만 13장이고 누구를 기소한다는 말은 없었어요. 저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죠."
유가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는 처벌해달라는 요구를 하며 행진을 1년 반 이상 이어갔다. 진종오씨는 그동안 행진한 거리를 계산해 보니 500km가 넘는다고 전했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행진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반을 다니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고요. 이후에 다시 특별법이 통과됐고 특조위가 구성이 되었죠."
참사 당일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 지역에 많은 인파가 모였고 좁은 골목길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인파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안전 대책이나 인력 배치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고됐고 특히 경찰과 안전 요원의 수가 부족하여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일었다. 긴급 구조와 응급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했죠. 실제로 경찰도 용산구청도 몇십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니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식 문서도 있어요. 그런데 다들 설마 했다는 거예요. 그날 최초 신고가 6시 34분에 있었는데 그 뒤로도 계속 신고전화가 들어왔어요. '긴급 레드'가 계속 떴는데 왜 현장에 안 갔냐고 물어보면 그냥 관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인근 파출소 옥상에서 현장이 다 보여요. 그리고 한 50m 거리에 소방서가 있어요. 참사가 일어났는데 거의 2시간 동안 뭘 한 건가요?"
진씨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 묻어났다. 위험신호가 계속 뜨는데도 괜찮겠거니 하고 넘긴 안일한 인식이 사고를 불러온 셈이다. 매년 배치했다는 안전요원은 왜 하필 그때는 없었을까, 왜 구청과 경찰은 위험상황을 예측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수록 의구심과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시민들의 지지로 버티고, 악성 댓글에 상처받는 유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