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정신 차리시오

함세웅 신부 <계간 다리>에 김대통령 비판 공개편지, 김상현 의원이 원고청탁

등록 2000.02.28 17:36수정 2000.02.28 23:26
0
원고료로 응원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재야동지인 함세웅(58) 신부(상도동 성당)가 김 대통령의 개혁부진을 비판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참으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공개고언(苦言)을 보냈다.

함 신부는 최근 발간된 <계간 다리> 복간1호(2000년 봄호)의 권두시언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것은 그렇게 염원하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건만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아끼고 사랑하던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하며 실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 신부는 2백자 원고지 35매 분량의 이 글 마지막 대목에서 김 대통령의 개혁추진 과정을 볼 때 "지금은 거의 절망에 가깝다, 이미 끝났다고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따라서 김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참으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면서 이렇게 편지를 맺었다.

"그(김 대통령)를 위해 죽음도 불사해마지 않았던 많은 의인들의 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사명을 바로 교정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함 신부에게 이 원고를 청탁한 사람은 <계간 다리>의 '실질적 주인'인 김상현 의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의원은 지난 11월 말에 함 신부에게 원고를 청탁했고 함 신부는 1차완성 원고를 1월 10일께 <계간 다리>에 넘겼다. <계간 다리>의 한 관계자는 "1차원고에서는 김 대통령을 비판하는 강도가 더 강했는데 교정지에서 함 신부가 좀 손을 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책이 발행된 직후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에게 한 부를 보냈기 때문에 김 대통령도 봤을 것"이라면서 "김영삼 전대통령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몇 권을 사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 공개편지와 김상현 의원의 공천탈락과는 그리 큰 연관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의 이 공개편지는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오랫동안 각별한 사이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함 신부는 이 편지에서도 그런 사이였기에 실망 또한 크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함 신부는 "김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마치 내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나에게 축하인사를 보내주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감격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면서 "너무나 어럽고 쓰라리던 시절, 나라를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꿈과 이상을 그를 통해 이룩해보려던 마음이 너무나 천진난만했다고나 할까?"라고 적었다.

함 신부의 편지는 김영삼 정권시절 김영삼씨의 절친한 재야동지였으면서도 그의 개혁부진에 대해 실망하면서 비판을 가했던 박형규 목사의 인터뷰를 연상시킨다. 박 목사는 95년초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신랄하게 김영삼 대통령을 비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함 신부와 같은 천주교 신자이며 김영삼 전대통령은 박형규 목사와 같은 개신교 신자다. 양김씨는 대통령이 된 후 같은 성도이자 절친한 재야동지로부터 똑같이 "정신 차려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그 이유도 똑같이 '개혁부진'.

함 신부로부터 공개편지를 받은 김 대통령이 어떤 개혁정책으로 답을 할지 주목된다.

다음은 함 신부 편지의 주요 대목

(전략)
얼마나 우리 민족이 자유와 정의, 평화와 해방을 갈구하며 고군분투하였던가?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것은 그렇게 염원하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건만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비틀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권교체에는 정당간의 '야합'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여하튼 좋은 방향으로 역사를 수용할 철학과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마치 내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나에게 축하인사를 보내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감격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너무나 어렵고 쓰라리던 시절, 나라를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꿈과 이상을 그를 통해 이룩해 보려던 마음이 너무나 천진난만했다고나 할까? 대통령 한 사람이 무어 그리 대단한가 하면서도 대통령 중심제인 이 나라에서 그의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일어서면 사회가 일어서고, 국가가 일어서고, 세계가 일어선다는 생각이 자칫 공동선을 무시한 개인주의 또는 소시민적 이기주의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쨌든 정권교체의 그 감격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제 우리는 국민들과 함께 그 대통령을 능가하는 성숙한 새 세대를 이루어야 할 더 큰 책무가 있다.


(중략)
또한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의 새로운 각성과 실천이 모범적이어야 할 때이다. 그는 지난 독재시절 눈물과 땀으로 이룩된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망을 늘 기억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결코 과거의 환상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즉 과거에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으레히 자신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고난받는 종"인 그를 사랑하고 껴안았던 것은 진리와 자유의 편에 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권세가가 되어 보수 세력에 대한 타협을 통해 지지기반을 넓히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야욕으로 진리와 정의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국가 인권기구 설립이 좌절되는 등 나아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IMF 위기를 극복하는 데 몹시 수고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그러나 IMF의 진정한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한 것은 아니며, 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디 정신적인 위기가 하루 아침에 해결되겠느냐만은 적어도 그가 올바른 방향만은 잡아야 했다. 정치절학이 없는 국정은 인간 중심이라는 기본을 저버리게 마련이다. 때문에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많이 이들이 가슴 아파하며 실망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둘 다 놓친다는 선현들의 격언이 참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웬일일까. 재벌 개혁은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또한 노동계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벌써 이번 선거에 대한 비관적인 결론들이 여기 저기서 예상되고 있다. 이제 그는 환상을 버리고 그의 일생에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시간을 소비한 것에 대해 남은 생애동안 아쉬워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참된 청산과 개혁은 그가 하늘과 국민 앞에 겸손하고 정직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참으로 하늘의 도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의를 이루는 일에 주변을 돌아보며 망설여서는 안된다.


(중략)
끝으로 나는 이 나라의 개혁 중심이 되어야 할 대통령에게 간언한다. 민주와 통일을 열망하였던 많은 민주인사들이 지금 마음의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만능의 메시아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김 대통령은 때묻은 사람, 즉 민주 인사를 감옥에 가두고 권력에만 기생했던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앉혀서는 안된다. 지금의 거의 절망에 가깝다. 2000년, 다행히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가 변수가 되어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횐경이 조성된다면, 다소 희망을 지닐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적어도 희망이 없다. 이미 끝났다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김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참으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바른 소리, 쓴 소리, 민중의 소리가 바로 하느님의 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획신을 가지기를 바라며, 여기에 어떤한 인간적인 타협으로 이 정의와 자유를 향한 해방의 소리에 배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만은 민중들의 눈물과 한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를 위해 죽음도 불사해 마지 않았던 많은 의인들의 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사명을 바로 교정하게 될 것이다. 부디 남은 임기 동안 새 천년을 여는 하느님의 시간에 한국의 인권대통령으로 남아, 그토록 열망하던 민중들의 진정한 해방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