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미국 사는 이야기>6

재빈이와 민혁이의 닮은 점

등록 2000.03.11 16:55수정 2000.03.1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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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빈이와 민혁이에게서 몇 가지 닮은 점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둘 다 남자아이라는 것.
초등학생이라는 것.
미국 온 지 2년 안팎이라는 것.
담임 선생님이 머리를 흔들던 아이라는 것.
그래서 엄마 아빠를 열나게 했다는 것.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아이로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까지 소리없는 눈물이 있었다는 것.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겨우 꺼내 말하는 민혁이 엄마가 안쓰러워서 함께 민혁이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갔다.

여기는 한 학년에 4번 리포트 카드(성적표)를 보내주고 가을과 봄 한차례씩 일년에 두 번 학부모 상담을 하지.

영어가 안 통할뿐더러 밤낮으로 일에 매어있는 민혁이 엄마는 내내 상담날짜를 피해 오다가 급기야는 비상연락처로 써놓은 우리집으로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는 바람에 시간을 다시 맞춰서 같이 갔었어.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민혁이 엄마는 재빈이 얘기를 했어.
재빈이는 민혁이보다 1년 정도 먼저 왔는데 바로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지금 민혁이 담임이라는 거야.
재빈이는 나도 잘 아는 아이라서 쉽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


얘기의 요는

2학년 때 재빈이 엄마도 몇차례 담임선생으로부터 주의를 들으며 학교를 들락거렸다는 것.
우리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우겼다는 것.
그러다가 교장실로 가서 인종차별이냐고 따졌다는 것.
하필이면 그 까다로운 선생한테 민혁이도 걸렸다는 것.


가는 내내 한숨을 들이쉬고 내리쉬었지. 민혁이 엄마는.
덩달아 나도 불안해 졌고.
우리 애 담임은 상냥하기만 하던데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했고.

교실로 찾아 들어가니 키 큰 전형적인 백인 여 선생 표정이 금새 꽃처럼 열리며 반가운 체를 했다.
민혁이 엄마대신 반가운 척 나도 요란스럽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어.

선생님 얘기를 들으니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겠더라구.

민혁이는 전혀 영어로 말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
저널쓰기(매일 아침마다 자유시간에 일기 비슷한 형식의 쓰기를 하는 것)에 자기 얘기는 안쓰고 예문만 베낀다는 것.
그래도 노는 시간에는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
수업시간에 방해를 한다는 것.

방해하는 방법은 주로 연필을 달각거리거나
먼저 손을 들어 선생님한테 말도 없이 화장실로 쑥 들어간다는 것.
화장실 가서는 30분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는 것.
들어가 보면 비누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
어떤 때는 책상 위에 올라가 떡 버티고 서 있다는 것.
열심히 수업하는데 교실을 돌아다닌다는 것.
복도에서 아이들을 밀치고 뛰어다닌다는 것.
숙제 잘 안해 온다는 것.
선생이 불러서 주의를 주면 뒤돌아서 아예 딴 데를 보고 듣지 않는 다는 것.

그 중에서 선생이 가장 속상해 하며 얘기한 부분은 바로 그 마지막이었어.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딴청하는 데는 속이 상할 대로 상한 것 같더라.

선생은 민혁이가 영어를 못하는 걸 문제 삼기보다는 선생을 무시하는 듯한 그 아이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거야.
그런데다 상담을 하자고 아무리 가정통신문을 보내도 부모는 오지도 않고 묵묵부답이지. 도대체 집에서 아이 교육에 신경을 쓰는 건지 안 쓰는 건지 그게 답답했던 거지.
그래서 자꾸만 만나자고 했고. 우리 집까지 전화를 걸고.

내가 보기에는 인종차별하는 나쁜 선생은 아니었어.
오히려 민혁이 수준에 맞는 영어교육을 위해 이리저리 신경을 쓰며 노력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지.

문제는 문화였어.
다른 문화.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도무지 손에 확 잡히지 않는 미꾸라지같은 문화.

유아원부터 시작해 이른바 학교라는 곳에서 맨 먼저 강조하는 것은 ABC도 123도 아니다.
그럼 뭐냐구?
내 경험으로는 자기 훈련이지. 그리고 규칙을 지키는 법을 제일 먼저 가르쳐.
이를테면 긍정적인 자아상 갖기, 학교와 학급의 규칙 지키기, 다른 사람 존중하기, 내 기분이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기, 다른 아이들과 협동하기...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학교에 온지 1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학교규칙을 지킬 줄 모르고 딴청을 하며 자기를 무시하는 행동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엄마는 물론 펄쩍 뛰었지.

민혁이는 전혀 그럴 애가 아니라고.
한국에서는 얼마나 공부도 잘하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책상 위에 올라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미국 초년생들의 아이들은 영어도 영어지만 한국과는 다른 학교 문화에 쉽게 적응을 못해 일탈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재빈이나 민혁이처럼.

한국에서 안 하던 짓을 여기 와서 하는 거지.
그거라도 안 하면 웬지 불안하니까.

그런데 집에서 부모들은 어르고 달래다 안되면 소리만 지르는 거야.
왜 이렇게 공부를 못 따라 잡느냐고.
남들한테 부탁하는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누구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는데.
너 공부만 잘하고 말썽만 안 부리면 뭐든지 다 사 줄께.

결국 아이들은 학교에서 볶이고 집에서 볶이고 그러다 보면 공부는 웬만큼 따라잡지.
"코리아 파이팅!"

그런데,
학교에서 울고 집에서 울고.

애들이 어디다 '으악!' 소리도 한번 못 내고 속상할 때마다 툭툭 떨구는 그 많은 눈물 방울들.
그걸 거름 삼아 얻어내야 할 이 아이들의 삶의 면류관은 도대체 무언지 솔직히 답을 찾기 민망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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