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패권국, 중국

제1부 1편. 견고한 강택민 집권체제와 공산당 독재

등록 2000.04.16 04:07수정 2002.10.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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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 사망과 <중앙일보>의 특종

1997년 2월 20일 한국의 3대 메이저신문사 중 하나인 <중앙일보> 1면 톱에는 충격적인 기사가 대문작만하게 난다.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벌써 수년전부터 전세계의 모든 유력언론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알아내려고 했던 중국의 최고실권자 덩의 사망소식을 대한민국의 한 기자가 중국정부의 공식 발표(2월 20일 오전 3시50분)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한국의 본사에 전하여 특종을 낚아 챈 것이었다.

이 날의 영웅은 다름아닌 작년 한동안 한국을 시끄럽게 만든 "언론대책문건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문일현(42)씨.
그는 94년 2월 뻬이징(北京)특파원으로 부임한 이래 곳곳에 정보원을 심어두고 발로 뛴 결과, 이미 중국에 막강한 정보망을 구축한 미국, 일본, 홍콩의 기자들을 제치고 세계적인 특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이 기사로 문일현씨는 속보의 가치를 인정받아, 그 해 한국기자협회에서 선정한 한국기자상의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문씨에게 연락을 받은 <중앙일보>측은 덩의 사망을 헤드라인뉴스로 전하는 한편,
해설기사를 통해 당시만 해도 실질적인 권력을 공고히 못한 장쩌민(江澤民) 중심의 집단지도체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면서 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의 혼란 가능성을 보도하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중앙일보>는 특종을 잡았지만 오보를 낳은 결과를 빚고야만다. 막강한 후원자가 사라진 이후 어려움을 겪으리라 여겼던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은, 덩이 사망한 그 해 9월 북경(北京)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15차 전국대표대회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와 다음 해 3월에 열린 제 9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실권자에 등극한다.

장은 반년 사이를 두고 벌어진 두 대회에서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치아스(喬石)과 리펑(李鵬)을 권력 핵심자리에서 밀어내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것이었다.

어려움을 딛고 권력을 장악하다


1989년 6.4 티엔안먼(天安門)사건 직후 덩샤오핑에 의해 일개 지방 지도자인 상하이(上海)시장에서 일개 국가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5,800만명, 1999년 현재) 세계 최대조직인 중국공산당의 총서기가 되었을 때만 해도, 어느 누구도 지금과 같은 장의 대성공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티엔안먼사건 직후의 혼란한 정국 상황과 그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던 외교적 곤란, 경제적 과열 상태를 줄이기 위한 치리정돈(治理整頓)를 취했던 경제정책적 변화, 민심을 달래기 위해 펼쳐야 했던 공산당 간부들을 겨냥한 반부패투쟁 등 당시 난국을 수습할 능력이 장에게 있을지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도 회의적이었다.


보수파와 온건개혁파, 급진개혁파, 군부세력이 각 사안에 따라 합종연횡의 협력과 대결을 되풀이하고, 역전노장의 장로(長老)들이 힘을 발휘하는 당시 상황에서, 오직 장은 덩의 카리스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름발이 권력자 신세였던 것이다.

이러한 숫한 어려움을 딛고 10년이 지난 지금, 장쩌민 중국주석은 이제 '중국 제3세대 영도집단'의 핵심으로, '중국 국가발전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지난 3월 15일자 미국 시사주간지 는 "Palace Intrigues"라는 북경발 기사에서 장주석이 마오쩌동(毛澤東)과 덩샤오핑에 대를 이어 공산주의 중국의 현대판 황제가 되려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북경 정치가(街) 소식에 정통한 것으로 소문난 북경지국장 Melinda Liu 기자가 쓴 그 기사에서는 장주석이 2002년에 끝나는 국가주석직을 물러나더라도 공산당의 직위를 유지한 채 막후 장노정치를 부활시킬 것임을 암시했다.

구태여 그 기사 내용만이 아니더라도 장주석의 권력유지를 위한 장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역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개인숭배를 위한 단골 메뉴였던 개인어록이 얼마전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의 이념·정치 어록집>이라는 이름으로 이전 선배 지도자들과 동격이 되어 출판되었고, 근래 들어선 자신의 이념적 목표를 내세운 '산장(三講)'운동이라는 정치운동이 연일 모든 중국관영언론매체에 도배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장주석을 찬양하는 동상과 흉상이 제작되었고, 장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상하이방'과 주변 보좌진이 주도하는 '위대한 국가지도자'의 이미지 메이킹이 한창 진행 중인 상태이다.

21세기 중국의 황제를 꿈꾸다

그 대표적인 한 사례를 소개하면, 요즘 장주석의 공식회의 석상에서의 연설 모습을 들을 수 있다. 1989년 6.4 티엔안먼사태 이후 덩샤오핑에게 픽업되어 갓 중국공산당 총서기직 바톤을 자오즈양(趙紫陽)로부터 이어받었을 때만 하더라도, 장주석의 언변은 어딘지 어눌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뚜렷했다.

90년대 이래 중국 경제가 연GDP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장주석의 연설은 힘이 더해갔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둘씩 사라져간 공산당 노혁명가들 덕에 이젠 아무도 그 적수를 찾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장주석은 "동즈먼!(同志們; 동무들)!" 하고 말을 이어나가면서 말의 강약과 언어의 위세를 너어가며 연설하다가 끝부분에 "~~합시다!"라는 강한 어조로 말을 마무리하여 사람들의 박수를 끌어내는 마오쩌동과 똑같은 연설 패턴을 구사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이전 중국 정치지도자들이 혁명가이자 사상가라는 특징을 본받아 장주석 또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이념-산장운동-을 자주 인용하면서, 이와 같이 21세기 중국을 이끌어 나갈 현대판 황제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장주석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직함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중앙위원회 총서기·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으로, 1976년 마오쩌동 사망 이후 잠시 권력을 쥐었던 화아궈펑(華國鋒)를 제외하고 중국 역사상 그 누구도 얻지 못했던 최고의 직위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

이런 장주석의 권력장악에 대한 공산당 내부에서의 불만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허나 외국언론에 의해 유일한 적수라 여겨졌던 리펑과 주롱지(朱鎔基)마저도 장주석의 권력 우산 밑에 들어간 지금과 같은 상황 아래에서, 반대파를 이끌어갈 중심 인물이 없기 때문에 장주석의 권력 장악은 그가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견고하기만 하다.

반대세력의 존재를 용서하지 않는 공산당

현재 장주석의 확고해진 권력 장악과 더불어 중국공산당의 통치기반은 일말의 누수의 틈이 안 보이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만의 정치적 격변에 따른 독립 가능성과 중국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 일부 시민과 노동자들의 사회적 소요 외에 세계 4분의 1 인구의 나라를 이끄는 공산당의 권력기반은 도전하는 세력은 전무하다.

작년 4월 25일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벌어졌던 파룬궁(法輪功)의 시위 이후 일어났던 일련의 종교적 사태는, 외부로부터 공산당의 중국 사회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았는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으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파룬궁 사건에 많은 공산당원이 가담되어 중국 지도부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것은 중국 정치지도자들에게 인민을 다시 채찍질하여 새로운 정치운동-산장운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NATO의 주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 오폭사건과 당금의 대만독립의 기운은 중국대륙의 인민들에게 새로운 민족주의사상을 고취하게 하면서 국가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좋은 구실을 낳았던 것이었다.

작년 오폭사건 이후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젊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반미국·반나토시위는 하나의 관제데모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치열하게 이어졌었다.

근래 들어 TV·신문·잡지·영상물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 공익광고 혹은 특집기사와 드라마, 다큐멘타리 등의 형식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충(忠)·효(孝)사상 강조 분위기 또한 이전의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유교와 공자(孔子)를 인민의 적으로 간주하여 모든 유학 논리를 거부했던 공산당은,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건히 다지기 위해 통치의 철학인 유학의 모티브 충과 효를 적절히 원용하여 인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 서적출판, 영상물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공간에서까지 중국정부의 교화(敎化)라 불리우는 인민들에 대한 세뇌는 철저하면서도 지속적이다.

여기에 더하여 도시와 농촌에 모든 사회단체와 학교에 형식을 불문하는 기업집단에, 거미줄처럼 깔려져 있는 행정기관과 공산당 하부조직, 공안(경찰)조직, 인민해방군(군대) 등은 공산당의 중국 통치를 받쳐주는 수족(手足)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민 생활의 기초 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 속에서도 최정예의 우수한 인원들만을 해마다 선발해 받아들여 신입 당원을 뽑는 공산당의 통치 정책은 13억 인구와 56개 민족,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국토를 가진 대국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

단순히 점과 선만을 통치했던 역대 왕조와 정권의 통치 행태와는 차이가 있는 인민 속의 조직, 거대한 면까지도 장악한 진정한 통치 집단이 바로 중국공산당인 것이다.

중국의 정치민주화는 언제 가능할 것인가

21세기를 시작하는 첫 해에도 장주석과 중국공산당은 앞날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요즘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이스라엘에 가있는 장주석의 모습에는 전에 보기 힘든 자신만만함이 넘쳐 흐른다.

1998년 7월 발간된 <政治中國>이라는 책에서 적지않은 지식인들이 중국의 평탄한 미래를 위해선 정치적 민주화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러한 장주석의 자신감 앞에서는 소귀의 경읽기 만하다.

과연 수많은 권력싸움와 부정부패에 휩싸이면서도 80년의 연륜을 끈질기게 이어 가고있는 공산당의 미래에 대적할 집단은 나타날 것인가? 잠시 한 줄기 햇살과도 같았던 1970년대말 마오쩌동 사후의 민주의 봄과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1998년의 중국민주당 결성사건과 같은 과거의 정치적 거사들은 앞으로 더욱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은 단지 기자만이 가지는 단견인가? 아직까지 중국에서의 정치민주화는 요원한 것이 2000년의 현실 모습이다.



* 다음 기사 예고
- 2000년 4월 19일
- 제 1 부 2편 - 용쟁호투, 포스트 장(江)-주(朱)시대를 노리는 사람들


* 정정 기사
- 지난 '프롤로그' 기사에 실린 사진 제목을 "마카오반환을 맞아 반환 축하행사를 벌이고 있는 마카오시민들"로 바꿉니다. 사진 전송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 제 기사에 실리는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퍼온 것입니다. 이후 제가 찍은 사진까지 포함해서 저는 기사에 있는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도움을 요청합니다
- 이번 연재기사는 본 기자가 반년에 걸친 준비를 통해 기획·보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자의 능력 부족과 지식의 일천함으로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제게 중국 관련 자료와 정보를 주시거나 교류하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바랍니다.
- 제1부 3편의 '중국외교' 분야에 미국과 일본, 유럽의 시각을 현지에서 기사를 써주실 분을 찾습니다. 간단한 기사 내용을 써서 제게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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