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께 면목없고, 고맙고, 의지하고 싶었다"

허인회씨 인터뷰-"처음부터 큰절 올리려 작정했다"

등록 2000.04.26 13:00수정 2000.04.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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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청와대에서는 민주당 낙선자 초청 오찬이 열렸다. 정식 오찬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낙선자들과 차례로 인사하는 순서 때 동대문을에서 낙선한 허인회 위원장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김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 갑작스러운 큰절은 카메라에 잡혔고 다음날 일간지에 실렸다. 그리고 그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의 많은 비판 의견이 이어졌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통신사이트 토론방은 물론 허 위원장의 홈페이지에도 많은 의견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도 21일 머릿기사로 '386 당선자 축하모임 풍경들'이란 기사가 오르자 이 기사 내용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허인회씨의 큰절'에 대한 의견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386을 팔지 마라'는 내용들이었다. 결국 24일에는 네티즌들의 이러한 의견을 종합한 '그렇게 우리의 과거를 팔지 마라'라는 기사가 머릿기사를 장식하며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허 위원장은 왜 그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갑자기 큰절을 했을까? 기자는 허 위원장을 만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허인회 큰절 사건'에 대한 변을 들어보기로 했다.

허 위원장은 요즘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 바쁘다. 오늘도(4월 25일) 선거기간 자신을 도와준 지역 구민들과의 만남 시간이 오후 내내 잡혀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허위원장이 몸을 담고 있는 '제3의 힘 주최 낙선자 좌담회'가 잡혀있었다.

기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허 위원장이 지역구민들과 만나고 있다는 다방으로 직접 찾아가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후 3시 허 위원장과 1시간동안 단독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 낙선자 초청 오찬에서 왜 김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렸나.
"실제로 김대통령을 볼 면목이 없었고, 고맙고, 의지하고 싶었고...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처음부터 절을 올리려고 마음먹었다. 갑자기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 같은 경우 공천을 받은 것은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거다. 억울하게 간첩단 사건(김동식 사건)에 연류된 사람을 공천 준 것은 기회를 준거다. 그런 나에게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허인회씨는 덧붙였다.

"또 한편으로는 이쪽의 싸움(선거무효소송, 그는 11표차료 낙선했다)을 해나가는데 김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 공인으로서 그런 자리에서 큰절을 했을 때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렇게 큰 파장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주변에서 내 행동을 가지고 말들을 하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 허 위원장은 평소에도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공천, 1인 보스 정치를 타파 등 당내 민주화를 주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통령에게 큰절하는 모습은...

"나는 개인적으로 김대통령을 여러 가지 이유로 존경한다. 그리고 절하는 문제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독립적인 문제인 거다. 당연히 존경하는 사람에게 절할 것을 절한 것뿐이다. 다만 그런 자리여야 했느냐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들은 실천 과제 속에서 풀어나갈 것이다."

- 며칠 전에 민주당의 김민석 의원과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초당적인 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김민석 의원이 남경필 의원과 초당적 협력을 선언한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386이 내용이 없다고 본다. 나를 포함해서 386세대들은 거품이다. 내용을 채우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한다. 내용적인 발전을 위해서 현실적인 대안과 조건들이 준비되어있어야 하는데 나를 비롯해 386세대들이 아직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치기 어린 모습보다는 자기반성에 근거한 386세대의 새 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김민석 의원의 그런 움직임은 적절치 못하다는...

"특별사안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남경필 의원을 협력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는 대표적인 '오랜지' 아닌가."

- 이번에 당선한 여야 386 정치신인에 대해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자기준비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는 바꿔, 바꿔 열풍이 불었는데 국민들이 386을 찍어준 것은 대안이 없어서다. 그런데 386도 반성과 대안을 가지고 이번 선거에 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성의 정치를 거부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자기성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부터 차분히 준비해 가야한다."

- 다른 386세대 정치신인에 대해 섭섭한 것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 공천 전부터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는 눈치를 보면서 임삼진씨 외에는 호응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당내민주주의, 초당적 협력 운운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스스로 냉혹한 지기반성이 필요하다.".

- 이번 큰절 사건에 대해 비판을 전했던 네티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네티즌들의 현상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다. 오히려 이 지역 유권자들은 더 좋아했다. 네티즌들이 그 비판만큼이나 책임의식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변명보다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허 위원장을 비롯한 386세대 정치신인들은 대학다닐 때 노동자-학생의 연대를 주장했다. 대통령한테만 큰절할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장소에서 노동자들에게도 큰 절할 생각이 없나?

"당연히 절할 것이다. 오늘도 얼마나 많이 절을 했는데... 마음속 깊이 언제나 서민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절을 하겠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오후 4시 허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허위원장 선거운동 했다는 분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허 위원장은 내가 겪어 본 사람들 중 가장 여리고,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같이 선거운동을 한 사람들도 이번에 절을 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공인으로서 할 행동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허 위원장을 좋아한다."

허 위원장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나를 포함한 386세대 정치인들의 치열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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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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