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패권국, 중국

제1부 4편 종이호랑이에서 진정한 군사강국으로

등록 2000.05.01 12:07수정 2002.10.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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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주의 형제국을 침공하다

1979년 2월 18일 중국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은 광시성 남부 요이관(友誼關)을 넘어 월남을 침공했다.

1975년 월맹에 의한 무력통일 이후 베트남 내에 불어닥친 화교 추방 움직임과 1978년 11월 베트남-소련간의 우호협력조약 조인, 같은 해 12월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점령 등 일련의 반중국 행위를 '응징'하기 위한 전격적인 군사행동이었다.

중·미 국교정상화 조약을 맺고 미국 방문에서 갓 돌아온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일어난 이 전쟁은 당시 외부세계에는 베일에 휩싸여 있었던 중국군의 면모를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중·월전쟁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광동군구(廣東軍區)가 중심이 된 18만 병력 - 최대 23만명까지 - 을 동원하여 베트남군을 응징하기 위해 애를 썼다.

베트남과의 전면 전쟁이 아닌 국지전 성격을 띈 군사행동이었기에 전투에 참가한 인민해방군은 오직 정해진 목표지를 향해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즉 주공격 목표였던 베트남 내의 성도(省都) 랑 손, 라오 카이, 가이 방에 집중된 것이었다.

인민해방군은 산간지대에서는 베트남 국경 내 6마일, 다른 지역에서는 21마일까지의 다른 거리로 진공선을 정지하였다.


일부 지역에서 병력의 배치 전환이 있긴 했지만, 인민해방군의 목표가 베트남 북부 교통·통신의 중심지인 랑 손에 초점을 맞춘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3월 2일 베트남군이 자진해서 철수한 이 성도가 중국군 수중에 들어가고 중요한 고지들을 여러 개를 점령하자, 3월 5일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장한 뒤 베트남으로부터의 철수를 공포하게 된다.


중·월 양국간의 어떠한 정치외교적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상호동시철군의 원칙을 포기한 일방적인 전쟁 종식 선언이었던 것이었다.

드러낸 '종이 호랑이'의 몰골

이 중·월전쟁처럼 지금까지도 그 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도 드물다. 전체적인 전황을 논하자면 중국군의 우세가 뚜렷하긴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지리멸렬한 몰골을 보여준 인민해방군의 전투수행능력에 깊은 회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군과 비교해 2배 이상의 전력을 투입한 인민해방군이 상대방 보다 훨씬 많은 사망 26,000명, 부상 37,000명이라는 인적 손해를 입은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세인에 납득시킬 수 없었다.

오늘날 중국군 전사(戰史)에 '자위반격작전'이라 불리는 이 전쟁 이후, 전 세계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1927년 8월 1일 주더(朱德)의 지휘 하에 전개된 난창(南昌) 무장폭동 - 중국군은 이 날을 기념해 건군절이라 불린다 - 이후 창설되어,

일본군과의 항일전쟁, 국민당과의 인민해방전쟁, 미군과의 조선지원전쟁(한국전쟁), 소련군과의 국토수호전쟁 등에서 혁혁한 공을 이루어냈던 중국공산당의 군대 홍군(紅軍)의 현대전 수행 능력을 세상 밖으로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중·월전쟁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은 건국 이후 최초로 군 현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낌으로서, 현대화-정규화 노선을 걸어나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즉 현대전을 수행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상군의 기동력과 전술공군의 능력, 병참의 지원, 고도의 통신체계 등의 열악함을 절감한 군 내부로부터 강한 반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취약점 또한 현대전에 적합한 현대화·정규화된 군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게 만들었고, 마오쩌동(毛澤東)이 제창한 인민전쟁전략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국방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다

그렇다면 마오쩌동의 인민전쟁전략은 무엇인가?
이 전략은 1936년말 옌안(延安) 시절 마오쩌동이 제시한 군사이론 <중국혁명전쟁의 전략문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중국의 광대한 영토와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여 인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사기가 높은 군인으로 하여금 국민당과 일본군을 대항하고자 한 것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62년 인도와 영토분쟁, 1969년 소련과의 국경분쟁을 통해 문제점이 드러난 부분을 수정하여, 세계대전 불가피론(天下大亂不可避)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즉 조만간 발생할 세계대전에 대비하여 제3세계 국가들을 포섭, '세계의 도시'지역에 해당하는 서방자본주의진영을 적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허나 중·월전쟁에 있어서의 인민해방군의 '참패'는 1966년부터 76년까지 문혁대혁명 시기 정치구호에 휩싸여 현대화를 등한시한데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고, 이에 따라 군 내부에서부터 군 현대화의 강한 욕구가 일어나게 된다.

당시 군부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 또한 4대 현대화(농업, 공업, 과학기술, 국방)를 제창하면서 군사 현대화의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한다.

70년대 말부터 진행된 냉전의 완화 분위기와 미국과의 화해 무드, 경제의 개혁개방 실시 또한 중국에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절치부심하기를 20년, 오늘날 중국 인민해방군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작년 10월 1일에 있었던 중국 건국 50주년 국경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현대화된 중국군의 열병식 장면이었다.

건군 당시 2천여명의 오합지졸에 약간의 소총으로만 무장하여 출발한 인민해방군은 이제 정규병력 287만명(1997년 현재)으로 육군 205만, 해군 26만, 공군 47만, 제2포병(전략미사일부대) 9만명의 매머드 병력으로 발전하였으며, 보조조직이라 할 수 있는 무장된 430만의 기간민병과 100만에 가까운 무장경찰을 포용하고 있다.

<콕스보고서>와 중국의 핵기술, 우주항공산업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있어서 전력이 출중한 군사력은 단연 제2포병(전략미사일)부대라 할 수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국민당으로부터 포획한 소수의 탱크와 몇 대의 비행기, 함정 밖에 없었던 인민해방군에게 미사일이라는 최첨단 무기는 그저 그림의 떡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국전쟁시 맥아더가 중국에 가했던 만주의 원자폭탄 공격 위협은 중국 정치지도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1958년 이후 국가적인 중점사업으로 핵개발과 인공위성 제작을 추진하지만, 다음 해에 일어난 중소이념분쟁으로 소련의 기술자들이 전부 철수하자 자력의 힘으로 원폭을 개발하게 되었다.

외국으로부터 되돌아온 유학파 핵물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개발되기 시작한 중국의 핵개발사업은 1965년 신강(新疆)에서 벌어진 핵폭발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1966년 소련의 'P-2'를 모방한 '장청(長城)' 1호 로켓 발사, 1970년 중국 최초 인공위성 '동팡홍(東方紅)' 1호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진정한 군사강국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중국은 1992년 3월 <핵무기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엄청난 핵개발 노하우를 축적하게 되고, 라디오와 TV 보급률을 각각 85%와 79%로 끌어올린 동팡홍 3호 등 인공위성들이 잇달아 발사하면서 미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서 과학기술분야 연구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런 중국 핵물리학과 우주항공기술의 발전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 한 해 미·중 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던 이른바 <콕스보고서>사건이다.

정식 명칭 "US National Security And Military/Commercial Concerns with China"(관련 홈페이지: www.access.gpo.gov/congress/house/hr105851)인 이 보고서는 캘리포니아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 콕스(Cox)를 위원장으로 하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 반 세기동안의 중국 핵개발과 우주항공산업의 발전을 기술하면서도 근 10년간의 눈부신 발전을 이룬 중국의 성과가 미국의 기술을 빼내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즉 1979년 미·중 국교정상화 이후 미국을 오간 중국의 과학자와 미국내 중국 협조자들의 절도행위로 지금의 중국 핵개발과 우주항공기술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이다.

널려있는 군사분쟁의 위험성

이에 중국 당국은 즉각 자신들이 키우고 있는 사이버 해커군(軍)을 동원하여, 인터넷상에 있는 미국 연구소와 군사관련기관 홈페이지에서 이미 공개된 핵과 우주항공 기술을 다운로드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벌여 자신들의 실력을 만방에 과시했다.

지금은 미국의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증명하면서, 전 화교권의 언론을 동원하다시피 하면서 대만계 화교과학자 리원허(李文和)의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당국에 구속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리원허는 불의의 미국과 맞서는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대접받으면서 중국 당국의 각별한 지지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북한·러시아·몽골·인도·파키스탄 등 12개국 국경을 접하고 있는 거대한 나라이다. 이 중에서 1997년과 98년에 이루어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국경선 확정 이외에는 아직도 인도, 베트남 등과 국경선 표시를 위한 외교 회담이 진행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띠아오위타이(釣魚臺)를 놓고 벌이는 일본과의 영토분쟁, 남사군도(南沙群島)·서사군도(西沙群島)의 영유권을 둘러싼 동남아시아국가들과의 갈등, 대만독립문제에 따른 대만·미국과의 긴장, 티베트·신강의 분립독립 움직임 등은 중국 내부와 주변에서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중국의 현실에서 강력한 국방력은 중국에 있어서 필요암의 존재와도 같다. 서방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한 기억이 생생한 중국에게 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의 존재는 여러 번 강조해도 과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 인민해방군은 과학화된 현대전을 치르기에는 노후화된 장비와 전투력이 낮은 인원, 낡은 전술, 전무한 실전 경험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중국 당국은 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탄탄한 과학기술에 기초를 두어 군사강국으로

작년 11월 20일에 발사한 성공한 우주선 '선저우(神舟)'는 이런 중국의 노력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중국 북부 네이멍구(內蒙古) 사막지대에 사뿐히 내려앉은 이 인공위성으로 중국은 소련,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무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직접 이름을 붙인 선저우는 베이징(北京)의 중국우주지휘통제센터의 제어를 받아 지구를 14바퀴 돈 뒤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되돌아옴으로써 중국의 우주항공기술을 진일보시켰다.

그 날 중국의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지난 500년간 중국인들이 품어왔던 우주 비행의 꿈이 실현 단계에 왔다"며, "이번 비행 성공을 계기로 국력강화, 과학기술증진, 국위선양, 국가 자존심 고양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근래 들어 급성장하는 경제력에 바탕으로 둔 중국의 군사력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급속히 현대화되고 있다.

종래의 게릴라전 위주전략에서 각 군과 병종 협동 운용에 의한 통합작전과 즉시 대응능력을 중시하고 지상군보다 해·공군 전력증강을 통해 현대전을 부응하는 인민해방군의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1988년에 전면 부활된 계급제나 83, 84년에 각각 도입된 4년제 사관학교와 간부후보생 제도는 군간부의 4화(년소화, 지식화, 전문화, 혁명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이전의 11개 대군구를 7개 군구를 개편하거나 장갑병, 포병, 방화병, 공정병 등의 4개 병과를 통합한 특종부대을 편성한 것은 현대전의 군대로 거듭나려는 인민해방군의 몸부림 중 하나이다.

드러난 예산보다 누락된 돈이 더 많은 중국 국방예산의 특징을 볼 때, 중국 군사비는 1997년 이미 380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이 호랑이에서 진정한 군사강국으로 변화하는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21세기 그 참된 변모가 드러날 것 같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중국위협론'이 과연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군사교류가 활발한 요즘 중국의 군사실력을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기사 예고
- 2000년 5월 3일
- 제 1 부 5편 - 100백년을 내다보는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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