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은 멋지지만 윤형철은 아니올시다

김수정의 <아줌마의 세상보기>-'이브의 모든 것'

등록 2000.06.11 15:14수정 2000.06.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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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란 드라마는 거의 다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아줌마가 바로 나.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물론 둘 다 예쁨)가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사이에 두고 혈전을 벌이는 상투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하루하루의 결말에 안타까워하고 한편 통쾌해 하는 저이지만, 이 드라마는 아무래도 뭔가 걸립니다.

MBC에서 수,목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이브의 모든 것'이 바로 그것.

대충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진선미(채림 분)와 허영미(김소연 분)라는 예쁜 아나운서 둘이서 소속 방송국의 이사인 윤형철(장동건 분)을 사이에 두고 혈투를 벌이는데, 허영미 아나운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부를 동경하며 별별 여우짓을 통해 진선미의 애인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진선미를 좋아하는 윤형철 이사를 노리며 예쁜 척, 불쌍한 척을 하는 게 현재까지의 상황.

MBC의 에서 족벌체제를 한대 얻어맞은 조선일보의 의도적인 'MBC 혼내주기'(내용이 진부하다 혹은 채림의 발음이 끝장이다 라는 등)에도 불구, 예쁘고 잘생긴 젊은이들과 화려한 직업 등을 내세워 잘 나가는 드라마입니다. 조선일보를 등에 업은 전여옥 아줌마의 말씀에 의하면, 잘생긴 장동건을 보려는 아줌마들과 소녀들의 시청이 가장 큰 힘이라더군요. 아줌마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부인하지 않는 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생긴 장동건에게 있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주의 아들로 젊은 나이에 방송국 이사로 취임, 인사와 제작 등을 멋대로 하는 윤형철 이사인 것이죠.

영국에서 공부하다가 방송국 회장님이 갑자기 병환이 나시는 바람에 그 아들인 윤형철은 급거 귀국, 바로 이사로 취임합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경영방침을 발표, 전부터 아는 사이인 남자 아나운서와 회사의 핵심 사안을 논의하는 한편 사원들의 반응을 전달받기도 합니다. 또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 메인 앵커나 출연진을 자의적으로 결정,통보합니다. 시청률이 안 나오자 항의하는 상무에게(이사가 더 낮은 직급인데도 불구) "한달만 시간을 달라"며 그래도 안 될 경우 프로그램을 없애면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너무나 쉽게). 윤형철 이사의 멋대로 경영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지난 주 방송된 13회분.


자신이 좋아하는 진선미 아나운서의 옛 애인인 김우진 기자와 자신을 좋아하는 허영미 아나운서(김우진 기자와 허영미 아나운서는 애인 사이)를 함께 영국으로 취재를 보냅니다. 둘의 애인관계를 회복하라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취지에서 생각해낸 방법입니다. 아나운서가 취재하면 보도국에서 항의할 것이라는 조언에도 불구, 무리가 있어도 시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힘없는 평사원인 둘은 결국 같이 취재를 떠날 수 밖에...

제 옆자리에 앉은 회사 동료의 딸은 <이브의 모든 것>에 나오는 장동건을 이상형으로 삼기로 했답니다. 그러나 잘생기고 능력 있고 돈 잘 버는 멋진 남자는 탤런트 장동건입니다. 장동건 아닌 극중의 윤형철 이사는 사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회사를 맡아 인사, 경영권을 맘대로 휘두르고 회사를 좀먹는 전형적인 족벌경영인이며,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최근 MBC프로그램 비판 기사가 눈에 띄게 많아진 조선일보에서도 <이브의 모든 것>에서의 족벌경영은 문제삼지 않습니다. 언론사의 족벌경영을 용기있게 비판했던 바로 그 MBC의 프로그램인데도 방송국의 족벌경영을 당연한 듯 멋지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비판의 눈으로 봐야 할 것은 늘상 지적해 왔던 소재의 진부함, 출연자의 연기 미숙 등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회사를 멋대로 휘두르는 사주의 아들이 잘생긴 장동건의 탈을 쓰고 수많은 소녀들의 이상형으로, 수많은 소년들의 본보기로 떠올리는 이런 드라마는 '드라마광'인 이 아줌마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라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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