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어느 전경의 이야기

등록 2000.06.19 23:05수정 2000.07.10 18:26
0
원고료로 응원
이 글은 에바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원문 그대로 올리려 노력하였으나 혹시나 이 사람(글쓴이)에게 해가 될까봐 조심스럽습니다. (글쓴이는 한때 에바다 투쟁에 참여했던 학생으로, 지금은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99년 서울 지하철 파업때 난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사수대였다. 그런데 2000년 6월 17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였나? 나는 매향리에 있었다. 그리고 전투경찰이었다.

작년 2학기 어느 때였나?
동아리 후배들과 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집행부 선배들, 그리고 농아아이들이 농성하고 있는 평택의 해아래집에 가던 길에 불안한(정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음) 봉고차 안에서 아이들의 농성을 지지하다 파면당하신 권오일 선생님께서 저기 보이는 저 불빛이 오산공군기지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떠오르며 도착한 매향리.

후~
지리를 잘 모르는 탓에 내내 위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혹 평택시청을 지나지는 않을까?' '잘하면 천막농성하는 것 볼 수 있겠다.'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창문 열고 손을 흔들어야지......'
온통 에바다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매향리.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내 생애 최대의 악몽이 되어 남을 것 같다. 특히 어제의 일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돌덩이들.(한대 맞기는 했지만, 하이바를 쓴 덕에 살았다.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

몇 시였지?
내 생애 최대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농성건물을 지나 교회를 돌아 들어온 학생사수대들. 공군기지 철망 안에서 우리 부대와 맞서게 되었다.

순간, 어디서부턴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압력이 무겁게 내 머리를 눌렀다. 사수대 맨 앞에는 지금 우리학교 동연짱, 작년 우리과 학생회장 선배, 그리고 과 후배들을 비롯해서 많은 친구들이 서 있었다.


붙으면 그 친구들이 어떻게 되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그토록 어떤 자리에 서있기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친구들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앞에 서 있어서 하이바 철망 사이로 나도 그 친구들의 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망가버려 이 x개끼들아! 뒤에서 또 오고 있단 말야. 이대로 있으면, 전부 포위된다니까! 제발! 가! 이 xx새꺄...'


양쪽에서 10명씩 쭉 늘어선 좁은 길.
눈앞에 보이는 택과 그들의 뒤로 오는 타중대 전경들.
그렇게 멍하니 서있기를 2~3분 결국 우리 중대는 그들을 향해 조금씩 전진했다. 나도 그들을 향해서 갔고.

다행히 사수대는 뒤로 도망을 쳤고 불상사는 없었지만 정말이지 이놈의 전경이라는 것 빌어먹을 짓이다.
"에이 씨발!"

어제 상황이 일단락된 후 가장 우수한 중대로 평가받은 우리 중대.
모두들 기쁨에 들떠 있었고 직원들은 우리 부대를 한총련 진압용으로 돌리면 어떻겠느냐는 제의에 매우 기뻐했던, (하기는 그 막강파워의 전라 2중대가 박살났어도 우리는 살아남았으니. 물론 내 동기 한 놈은 돌맞아서 병원갔다가 지금은 옆에서 끼득거리지만 녀석도 모대학 문선패장이었던 놈이라 지금 서로 눈길을 주지 않고 모니터만 노리고 있다) 그 속에서 미묘함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나.

나란 인간에 대해서 격려까지는 필요없지만 최소한 한가지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난 여기서도 에바다 생각, 그리고 지독한 자본의 억압에, 그리고 지금의 이 정부에 치를 떨면서 보내고 있다는 것을.

모두들 몸 조심하고 내 몸은 내가 지킬테니. 에바다패밀리 모두 몸 조심하시길. 그리고 매향리에 혹시 오게 되거든 꼭!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꼭) 오토바이 헬맷이라도 쓰고 오기를 꼭 부탁합니다.

어제 매향리에서 다치신 분 많지 않길 바라고, 또 다치신 분은 빨리 나으시길 빕니다. 저도 돌을 좀 맞기는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

이건 분노라는 감정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군요. 하지만 그 감정조차도 내 하이바 속에서 침참해야 하는 지금의 이 심정을 과연 아는 사람들은 있을까?

오산 가까이에 있는 평택에서는 또 다른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4년이 넘도록 에바다복지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탄압에 저항하고 있는 에바다투쟁입니다. 지금 평택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에바다 투쟁에도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땅의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언제 또 매향리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더욱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땅 민중들의 참 세상을 위해서 우리모두 힘냅시다.
그리고 에바다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상으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http://ept.jinbo.net)

부디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함께 갈 수 있기를.

지금도 땀흘리고 있을 에바다 동지들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군요.

급하게 쓰는 글이라 혹 오해가 있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그저 못난 한 인간의 글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에바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을 그대로 올리려 노력하였으나 혹시나 이 사람에게 해가 될까봐 조심스럽습니다.

덧붙이는 글 에바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을 그대로 올리려 노력하였으나 혹시나 이 사람에게 해가 될까봐 조심스럽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