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섬에서 살아온 그를 만났더니

매향리의 거지성자 이야기

등록 2000.06.22 10:06수정 2000.07.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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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김용한 씨가 지난 6월 20일 최신부를 면회갔다 온 후 작성한 글이다. 한편 6월 20일 구속된 최종수 신부를 비롯한 구속자 전원은 6월 22일 오전 10시 불구속 입건된 상태로 석방됐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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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들이 사람이여? 짐승이지!"

최종수 신부. 그가 살아 돌아왔다. "목숨 걸고 사격장을 폐쇄하겠다"던 최 신부가 죽음의 농섬에서 정말로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매향리 앞바다 농섬, 질퍽거리는 개펄, 점점 차오르는 바닷물, 머리 위를 나는 정찰기들, 쉬익 꽈과과광 꽈과과광 바로 머리 위에서 쏘아대는 미공군 A-10기의 섬광과 기총사격… 이 모든 사선을 뚫고 그는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아직 우리 곁에 있지 않고, 화성경찰서 유치장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전만규 위원장을 석방하라'며, 그리고 '미군한테 죽지 못했으니 단식해서 죽겠다!'며.

6월 20일 오후 5시 18분 경찰 헬기가 마지막으로 최 신부를 연행해 갔다. 그러자 매향리 대책위 현장에서 분 단위로 상황을 정리하며 지켜보던 문정현 신부가 외쳤다.


"농섬에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한두 군데 했어야지. 청와대, 국방부, 미대사관, 미군사령부…. 그런데도 사람 머리에다 대고 타다다닥, 타다다닥 쏴 대는 놈들이 사람이여, 짐승이지!"

그는 기자들이 다 보는 데서 엉엉 울었다.


"분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난 죽을 거야."

최종수 신부 일행이 실신 상태로 화성경찰서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세 팀이 화성경찰서에 도착했다. 한 팀은 문규현 신부, 최병모 변호사였고, 다른 한 팀은 서 로레르토 신부(미국인)와 오두희 공동집행위원장(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 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영옥 편집장(전북평화인권연대 인권신문)팀이었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장영애 씨(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와 김용한 공동집행위원장(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이었다.

밖에서 만난 우리가 화성경찰서에 들어서자 최 신부는 수사2계 안 소파에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온몸에 묻은 뻘흙이 거의 말라 있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거지 성자'였다. 최 변호사가 다가가 '접견'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찾아온 걸 안 최 신부는 퉁퉁 부은 눈에서 또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내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죽을 거야. 죽어!" 그리고는 또 엉엉 울었다.
"사람도 아니야, 사람도! 며칠 전 가수 안치환이 매향리에서 어렸을 때 사격 소리 듣고 울었다고 할 때 실감이 안 났어. 근데,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경찰 헬기 안에서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어. 매향리 주민들이 미군들 때문에 50년동안 그런 사선을 넘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하도 분해서…."

오두희 집행위원장과 문규현 신부가 사들고 온 옷으로 갈아입을 것을 권했다.
"죽을 각오하고 갔지만, 죽음의 공포 때문에 눈도 못 떴어. 그래도 불이 번쩍번쩍 번쩍번쩍하는 게 보여. 사람도 아니야. 바로 앞에서 섬광이 번쩍번쩍해. 바로 타다다닥 갈기고는 머리 위로 휙 날아가. 곧바로 돌아와 오며 번쩍번쩍해. 이번엔 뒤에다 대고 타다다닥 갈겨.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날아가…. "

우리는 '물좀 마시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권했다. 최 신부는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모습은 역시 영락없는 거지 성자였다. 미군들한테 못 죽었으니 단식해서 죽겠어."

우리는 같은 방의 김상진 씨, 다른 방의 한 여성, 벌써 조사 다 받고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르포 비디오 작가 고안원석 씨를 면회했다. 모두들 밝은 표정이었다. 목숨을 걸고 농섬을 점거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순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미군한테 못 죽었으니, 단식해서 죽겠어!"

매향리에서 밤을 지샌 문정현 신부 일행은 11시쯤 화성경찰서에 도착했다. 거기서 민주당 임종석 의원을 만나 함께 수사과장실에서 최 신부를 면회했다. 미군들의 폭격 만행에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최 신부는 눈이 퉁퉁 부은 채 농섬 점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며 또 울었다. 그 말을 듣다가 문 신부도 엉엉 울었다. 문 신부는 어제 최 신부 전화가 마지막으로 끊어지고 경찰 헬기가 최 신부를 태우고 사라지던 순간 기자들 앞에서 엉어 울었는데, 그 감정이 다시 복받쳤다고 했다.

최 신부는 "미군한테 못 죽었으니, 단식해서 죽겠다!"고 했다. 지금도 너무 서글프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맞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미군은 그렇게 마음대로 범죄를 저지르는데…. 그래서 119 구급차 안에서도 간호사한테 챙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이토록 애절하게 시위하는데, 그리고 농섬에 사람이 있는 걸 빤히 아는데 설마 폭격을 할까" 했다. 그런데 진짜로 폭격을 하니까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한국 정부고 미군이고 모두 야수가 아닌 다음에야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한테 이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미군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책임 못 진다. 누가 농섬에 들어가랬나? 안 들어갔으면 될 것 아닌가?"
농섬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니 사격을 중단하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전화를 받은 미대사관 직원의 반응이었다.

"사격 중단을 요청할 순 없다. 그건 우리 권한 밖이다. 김 위원장이 전화한 내용을 미군사령부에 전하기는 하겠다."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은 우리 나라 국방부 간부의 답변이었다. 평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아 갖고만 있으면 뭘하나? 언제 어떻게 써먹는지도 모르는데. 하기야 언제 그런 걸 써먹어 봤어야지.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채 미군 눈치만 보는 국방부는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미군이 다 해주는 마당에 그 따위 국방부가 무슨 필요가 있나? 문 신부 일행은 김상진 씨와 구은주 씨도 면회하였다.

개펄을 지나 죽음의 선을 넘어 농섬에 태극기 펼치기까지

농성 점거 과정과 그 때 느낀 심정은 지금 최 신부가 직접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은 문정현 신부가 최종수 신부를 면회하며 메모한 뒤 구술한 내용을 받아 정리한 것이다.

6월 20일. 최종수 신부는 아침도 굶은 채, 남녀 학생 한 명씩을 데리고 매향리 미군 사격장 바로 옆 백철금속 쪽에서 한 시간쯤 걸어서 농섬으로 들어갔다. 개펄을 걷는다는 게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하도 힘들어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최 신부는 함께 왔던 여학생을 돌려보냈다. 그렇게 해서 김상진 씨와 둘이만 갔다.

12시 반쯤 대책위에 전화를 했다. 오전에 들어갔던 팀이 다 연행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1시 30분쯤 농섬에서 2km 쯤 떨어진 곳에 다다랐다. 만조 시간인 3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어 기다리는데, 2시쯤 미군 헬기가 두어 바퀴 공중을 선회했다. 그러더니 최 신부 일행을 확인하고는 바로 사정없이 사격을 했다. 그 뒤로도 먼지가 뿌옇게 날 정도로 진짜 사격을 두 차례나 더 했다.

"저 놈들이 우리를 정말 죽이는구나" 생각했다.
바로 앞에서 실탄이 탁 튕겨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떨리고 겁이 났다. 김상진 씨가 바로 앞에 떨어진 실탄을 줍기도 했다. 유탄이라도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책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이 놈들이 진짜로 사격을 한다고. 대책위에서는 미대사관, 국방부, 청와대에 다 연락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사격을 계속해 댔다. 죽음을 각오한다고 했지만, '우리를 정말 죽이나 보다' 하고 생각하니 정말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50년 동안 이렇게 당해왔을 매향리 주민들이 떠올라 울컥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바닷물은 계속 들어왔다. 물에 잠겨 죽겠다 싶은 공포도 몰려왔다. 그래서 농섬으로 다가갔다. 한 300미터쯤 남았을까? 머리 위를 A-10기가 선회하며 폭격을 해대기 시작했다. 번쩍번쩍하는 섬광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눈을 감고 달달 떨었다.

섬광이 끝난 뒤에 무엇이 터지나 머리를 들어보니 바로 앞이 화약 연기로 자욱해졌다. A-10기는 반대편에도 폭격을 해댔다. 고공투하도 했다.
함께 있던 김상진 씨가 "무서우니 농섬에 들어가지 말자"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앞으로 다시는 농섬 점거 같은 생각을 못 하게 하려고 미군들이 일부러 위협
사격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과 '진짜 죽는다면' 하는 생각이 엇갈렸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대책위에 연락해 봤지만 대책위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농섬 100미터 앞까지 접근했다. 다시 다가오는 A-10기를 향해 최 신부는 로만 칼라를 보여주며 신호를 보냈다. 소용 없었다.

드디어 오후 4시. 농섬 진입 결심을 하고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농섬 꼭대기에 올랐다. 어제 밤새 만든 전지 6장짜리 대형 태극기를 정면을 향해 펼쳤다. 그 순간 한국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막상 죽을 각오하고 온 농섬이었지만 사람이 있는데도 그렇게 폭격을 해 대다니,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역사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하던 로이터 통신 기자가 함께 오지 못했기 때문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다. 주문대로 포즈를 취해 주었지만, 농섬 점거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죽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 경찰 헬기가 도착했다. 김상진 씨를 먼저 싣고 간 뒤 다시 와서 최 신부를 연행했다. 헬기에서 내릴 때 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부축을 받았다. 미군 막사에서 30분 정도 기다렸다. 그러자 119 구급대가 왔다. 그 차는 비포장도로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렸다.

최 신부는 그 안에서도 미군 폭격 순간이 떠올라 엉엉 울었다. 그렇게 화성경찰서에 도착했다.

밤중에 문규현 신부와 최병모 변호사, 오두희 집행위원장 일행이 다녀간 뒤로도 밥과 진술을 다 거부했다. 설잠에 들었다가 눈을 뜬 때는 새벽 두시 반이었다. 또 울었다. 이게 매향리의 눈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일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담당 수사관에게 필기도구 좀 달랬더니, 취침 시간이라 안 된다고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부터는 경찰 조사에 응했다.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다간 감옥에 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6월 6일 철조망 뜯어낸 것부터 경고판 뜯어낸 것, 불법으로 집회한 것, 마무리 집회 도중에도 철조망을 계속 잘라낸 것, 17일에도 몸싸움하다 시멘트 덩어리에 맞아 머리를 여섯 바늘 꿰맨 것, 농섬 점거 팀을 구성하고 학생들 동원한 것 따위를 모두 주도하고 직접 했다고 진술했다.

학생들과 최 신부가 목숨 걸고 미군 폭격 훈련 표적인 농섬을 점거한 2000년 6월 20일과 21일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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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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