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만규 위원장 첫 공판 있던 날

"이 재판정에 서야 할 사람이 진정 누구인가?"

등록 2000.06.24 17:06수정 2000.06.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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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주황색 깃발.

매향리에 사격을 알리는 깃발은 올랐다. 자리를 털고 일어선 사람들은 모두들 깃발을 한 번쯤은 노려 본다. 그리고 그들은 다짐한다. '반드시 저 깃발을 내리고야 말겠다'고.

어제(23일)는 전만규 위원장의 1차 공판이 있었던 날.

모두들 분주하다. 전 위원장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곱게 차려입은 마을 주민 30여 명과 학생들 20여 명이 관광버스에 올랐다. 전 위원장의 아내인 최선자(43) 씨와 두 살배기 외아들 국이도.

국이는 아빠를 보러 가는 줄 아는지 떼를 쓰지도 않고 잘도 논다.

매향1리에 살고 있는 우종근(48) 씨는 아련한 눈길로 창 밖을 바라보며 자조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0여 일 얼굴을 보지 못한 것뿐인데 전 위원장의 빈 자리는 무척 크게 느껴지네요. 모두들 그 사람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거지요."

수원지방법원으로 가는 길은 숙연했다. 모두들 조용히 묵묵히 1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법원 앞에서 들려온 "제발 법대로 합시다"

오전 10시 20분 관광버스는 수원지법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찰은 도로에서부터 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전경 100여 명이 이들의 법원 출입은 물론이고 법원으로 향하는 보도와 차로도 막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으로부터 시설 보호 요청이 들어와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입을 저지 당한 매향리 대책위 공동 변호단의 한 일원인 여운철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법원은 헌법상 공개 재판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경찰이 이렇게 막아서는 것은 불법"이며 또한 "아무리 법원으로부터 시설보호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도 위험물 소지자가 아닌 이상 막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경찰은 법원 앞에서 위법을 자행하다가 결국 오전 11시 20분 공판이 있기 10분 전 신분증만 확인하고 법원에 사람들을 들여보냈다.

"누가 재판을 받아야 하나"

오전 11시 30분 전만규 위원장이 평상복을 입은 상태로 뒤돌아 앉아있다. 재판은 시작되고 전만규 위원장 발언 시간.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판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방청객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주민생존권 짓밟는 미군 사격장을 철폐하라"

방청객에선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전만규 위원장은 판사와 검사 앞에 당당하게 서서 '매향리의 현실과 아픔'을 15분 동안 큰 소리로 외쳤다. 좌중은 숙연해졌고 소리내어 흐느끼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는 신상 발언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재판정에 서야 할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 겁니다. 저는 출옥하고 나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렵니다. 더 이상 미국의 식민지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 땅은 더 이상 투쟁할 가치도 없는 땅입니다."

오후 12시 30분 전만규 위원장 1차 공판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확인하고 변호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전만규 위원장 기소 내용은 이랬다.

군사보호법 위반(6월 2일 군사 시설 무단 침입 군사시설 파괴), 집시법 위반(6월 1일 2일 외부세력 규합 불법 집회 주도) , 교통법 위반(무면허 음주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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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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