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

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삶이 자연 그대로 이어지길

등록 2000.07.13 10:18수정 2000.07.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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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18년 동안 바다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순박한 산골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가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동해의 한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시원스레 펼쳐진 해변가, 아스라히 펼쳐진 수평선과 검푸른 바다를 보며 소녀는 그림을 그리고, 아버지는 시를 썼습니다. 그 아버지도 35년만에 와보는 바다라고 했습니다. "바다는 아름답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아름답다." 아버지가 바다를 다시 보고 쓴 시입니다.

5부작 특집으로 방영되는 "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의 한 장면입니다. 14일(금)까지 방영되는 이 프로는 KBS 2TV 인간극장에서 오전 8시20-50분에 방송을 내보고 있습니다.

그 산골엔 영자가 산다

영자는 18세 소녀입니다. 소녀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커버린 나이지만, 영자는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자는 장래 꿈이 소설가라고 합니다. 대학생들이 보는 문학개론이나 소설작법 같은 책을 이미 공부했고, 소설도 몇 편 썼습니다. "토종벌 기르기" 같은 소설입니다. 산골에서 토종벌을 길러본 자신과 아버지의 경험담입니다.


영자는 아버지와 함께 집근처 산에 올라 소나무를 봅니다. 바람에 굽어져 벼랑끝으로 자라 있지만 늠름하고 아름다운 기상을 지닌 소나무를 아버지와 함께 자주 찾습니다. 그 소나무를 영자는 그림에 담습니다.

영자의 아버지는 영자에게 그림도 가르치고 시도 가르치고, 그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모든 것은 물려줬나 봅니다.


영자는 침도 놓습니다. 아버지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침을 꺼내 조심스레 놓습니다. 마치 허준이 아픈 백성 환자들에게 침을 놓아주듯이 말입니다.

18년 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영자. 영자에겐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입니다. 라디오를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KBS취재팀이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인터넷도 해 보고, 사진기며 방송촬영장비들이 너무나 신기해 보입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보는 것들이지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삶이 화면에 흐르고 영자와 아버지의 삶은 너무나 부럽게만 느껴집니다.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단 둘이 사는 삶이 외롭고 힘들어 보일텐데 너무 미화를 한 것일까요?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원형 그대로 남았으면 하는 영자의 삶은 우리의 꿈일까요?

14일 영자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방송이 나가고, 이 프로그램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영자를 찾아 강원도 두메산골을 오를지 모릅니다. 저조차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영자를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전 영자의 삶이 원형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오랜 옛날 우리네 삶이 그랬듯이, 산골에 살면서도 농약도 뿌리지 않은 농작물을 키우고, 벌도 치고, 인공을 가미하지 않고 살았던 것처럼 순박한 토종의 삶이 그대로 남았으면 합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요? 영자도 더 크면 사회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더욱 강렬해질테고, 아버지가 나이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도회지로 나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요. 그리고 또 시집도 가야할텐데요.

도회지에 살며 인터넷도 하고 세상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를 풍요롭게 이용하고 살아가는 삶에도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산골에 사는 18세 소녀 영자의 삶에 내가 갖지 못한 자연적인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분명 영자의 삶에도 그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물질문명의 편리와 혜택이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산골에 보이는 영자의 삶"에는 그러한 세상의 편리를 체험해 보지 못한 자신의 산골생활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행복해 보입니다.

14일 영자와 마지막으로 TV에서 보는 날입니다. 물론 출근시간에 방영하니까 많은 직장인들은 볼 수 없습니다. 지각해 욕 들어먹을 각오를 한다면 가능하겠지만요.

강원도 두메산골 소녀 영자. 만약에 영자를 진짜로 만난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먼저 그러고 싶습니다. "토종벌 기르기 소설을 보여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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