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내 아들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으니..."

'부일외고' 사고 사망자 안치된 김천제일병원 현장

등록 2000.07.15 09:02수정 2000.07.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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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2시 '김천제일병원'에는 전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차량 연쇄추돌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 유족들이 하나둘 모였다.

대부분 부산 '부일외고'를 다녔던 희생자들은 부모의 가슴에 묻히기엔 너무 어린 나이 열 다섯, 열 여섯 소년 소녀들이었다.

유족들은 아직도 자식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씩 흘리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고개만을 떨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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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달려온 한 어머니는 열 다섯 어린 자식의 죽음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만 같아요. 병원 병실에 아직도 누워서 엄마를 찾을 것만 같은데..."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너무나 착하기만 했다는 아들은 사고 전날 밤에도 안부 전화를 잊지 않았다


"밤늦게 전화가 와서는 자기 걱정은 하지말고 일찍 자라고 하더니. .."

하지만 그 전화가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사고가 나던 시간 편안히 소파에 누워 있었다며 허망해 하는 임민성(16) 군 어머니는,

"태풍이 온 다음 날 우산 하나 쥐고 학교에 가던 아들이 생각난다"면서 애태웠다.

지금까지 김천시내 소재 병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마지막으로 이 병원을 찾은 유족들의 아픔은 시신이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을렸다는 점이다.

"얼굴도 못 알아 볼 정도라니..." 끝내 유족들은 통곡했다. 누가 내 자식인지 알기만 해도 시신을 안고 펑펑 울기라도 할 것을.

유족에겐 마음 편히 울어댈 망자의 시신도 확인할 길이 없다. 30여 명 유족은 병원 로비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에겐 이젠 미약한 힘도 없어 체면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유족들은 땅바닥에 앉은 채 그나마 몸을 가누고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볼 심사로 한 명씩 말을 던졌다.


"왜 선생들은 얼굴 하나 볼 수 없냐. 학교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공무원은 자기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니... 믿을 게 못 된다."

한 사람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자 그나마 참고 있던 화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듯 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높아졌다. 유족들은 '인재' 라고 하나같이 말했다.

우선 학생들의 안전에 무엇보다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했던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실망은 컸다. 유족들은 한결같이 사고가 난 후 얼굴한번 비추지 않는 교사들의 무성의함을 한탄했다.

그나마 교사들을 믿고 아이들을 맡겼는데 교사들이 책임성 없어 일이 이렇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때 수학여행을 떠나는 반면에 이 학교는 '입시교육'에 지장이 없도록 1학년생 때 수학여행을 실시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안전 수칙을 무시하면서 내리막을 운전한 운전사와 관리를 소홀히 한 여행사도 비난의 화살을 면할 수는 없어 보였다.

"내리막을 110㎞이상이나 밟으면서 달려 사고가 났다더라."

특히 유족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운전자의 '음주의혹'을 이야기하면서 불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이 버스기사가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술을 먹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유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이냐"며 반문하는 유족들의 목소리가 '분노'로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시신의 '부산 이송' 문제였다.

유족들 대부분이 부산에 거주하니 그나마 '마음도, 몸도 편한 부산으로 옮겨 신원을 확인하는 편이 나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였기 때문이었다.

유족들 간의 의견이 '부산이송'쪽으로 모아질 때쯤인 새벽 3시 30분쯤 부일외고 교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사고발생 후 지난 12시간 여 동안 마음의 고통이 엄습한 듯 모습은 초췌했다.

갑작스런 학교장의 등장에 유족들은 또 한번 술렁거렸다. 그는 사고당시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1호차에 학생들과 동승, 사고를 뒤늦게 알았다며 '백배사죄'했다.

하지만 "기사가 술 먹는 걸 몰랐느냐"는 유족들의 추궁엔 "결코 본 일이 없다"며 부인했다. 유족들의 비난은 시신의 조속한 '부산 이송'을 위해 멈춰졌다. 빨리 아들, 딸을 부산으로 내려보내 시신이라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인 듯 했다.

하지만 부산 이송도 쉽지 만은 않은 문제다. 검찰의 '검사 지휘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아들 자식이 죽은 것만 해도 원통한데 무슨 절차가 필요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지금 단순히 당신의 자식을 잃어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있을 지도 모른다. 둘째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세상의 부조리가 아이들을 죽게 만든 것 아니냐. 안전운전을 하고 원칙만을 지켰다면 사고가 날 까닭이 무어냐"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 몬 사회를 원망했다.

결국 이번 사고는 '씨랜드 참사'처럼 어른들의 실수로 또 다시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빼앗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시신조차 알아볼 수 없는 자식들의 죽음 앞에서 '김천 제일병원'의 유족들은 흐느끼고 있었다.

(7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시신들은 모두 부산으로 이송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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