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을 접으며 보내온 에바다 옥중 서신

사랑하는 동지들에게

등록 2000.07.25 05:02수정 2000.07.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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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 농성 투쟁 1000일을 기념하며 3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가 구성된 지 이제 1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인권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립 법인의 민주화, 장애인 시설의 인권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들어 상문고 사태는 법원이 공식적으로 비리 재단의 손을 들어 주는 만행(?)을 보여 주었고 에바다 복지회 이사 구성 역시 지역 토착 권력형 비리라는 큰 벽 앞에서 비리 이사장이 다시 호시탐탐 이사복귀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년간을 싸워오면서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을 위한 투쟁이어서 그랬는지 경찰의 폭력도 농성단의 무리한 대응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6월 28일 이사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평택시가 사간 당시 이사장인 최성창을 전격 이사로 다시 복귀 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이사 구성을 발표한 이후에는 이른바 롯데 호텔처럼 무자비한 탄압은 없돼 아주 치밀하고 전략적인 탄압이 이어져 오고 있다.

6월 28일 전국에바다연대회의 의장이 잔혹한 구타와 함께 이례적으로 구속되었고 7월 7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시위 역시 구경온 학생까지 불구속 기소하고 현장에 있던 장애인들도 무리하게 진술 조사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천막 농성 현장의 선전물들이 깡그리 철거당하는가 하면 연이어 에바다 지역 공대위 공동의징인 김용한씨가 매향리 집회에서 평화적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구속 기소되어 이른바 연좌제까지 적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마저 분분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전국민이 시청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약속했던 사건. 정부에서도 이번 이사진 개편을 앞두고 빨리 사간을 마무리 지을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는 말도 상당히 신뢰성 있게 다가 온다.

7월 18일부터는 구속 기소된 전국 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의장 좌동엽 군이 에바다 복지회의 민주적 이사구성과 구 비리 재단인사 이사 복귀를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진행해 왔으며 최근들어 단식을 풀면서 에바다 대학생 연대회의 시무국장 좌혜경 양을 통해 옥중 서신을 보내와 독자들에 소개한다.


<사랑하는 동지들에게>


비록 내가 그대들과 얼굴을 맞대어 농담도 하고 어깨를 걸어 함께 삶의 노래를 부를 수 없지만 내 마음은 그대들의 숨쉬는 곳 어디에나 있고 싶소.

나는 여기에 들어와 솔직히 자유를 그리워한적이 있소.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교만이던가요? 이 땅, 장애인 시설 곳곳에서는 아직도 비리와 인권유린이 넘쳐나는데, 그들의 자유와 그들의 꿈을 채 펼치지도 못한채 절망을 먹고사는 그네들에게, 나의 지금 삶은 너무나 황공할 따름이지요.


동지들이여! 내가 이 안에서 힘든것은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일 뿐이오. 에바다 해결을 위해 부족한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무식하게 실행했던 지난 추억이 그립고, 여기서라도 나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안할 따름이오.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소. 우리 앞에는 에바다 해결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있소. 그 벽은 너무나 암담해서 감히 우리를 무력화 시키오. 하지만 난 생각하오.

에바다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공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너무나 공고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자신들이 에바다 해결을 위한 염원과 의지가 어느 만큼이냐에 따라 그 승패가 달려 있는 것이오.

그 벽은 애초부터 너무나 암담하게 우리 사회를 짓눌러 왔소. 단지 그 벽에다 계란 몇개 던져 봤다고 우리 몸을 그 벽에다 몇 번 부딪혀 봤다고 우리는 할만큼 다 했으니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소. 오직 그것은 자기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운동이고 교만일 따름이오. 애초부터 우리가 시도를 하지 말던가, 아니면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그 거대한 벽을 허물어 버려야만 하오. 저들은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팔딱 팔딱 뛰는 싱싱한 양심 하나뿐이오, 양심 하나....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소. 하지만 비록 저들이 우리의 양심을 회쳐 먹는다 하여도, 우리의 양심은 모든 이들에 의해서 부활하는 것이오. 우리들이 정의를 갈구하는 애절한 소망이 이 사회 곳곳에 울려 퍼질때 비로소 에바다는 해결되는 것이오.

동지들이여! 일순간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좌절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소. 오직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따라, 이 땅 곳곳의 어둠을 밝힐 뿐이오. 우리는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되는 것이오. 스스로에게도 떳떳한 우리의 사랑만이 이 땅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이 아닌 삶의 희망이 되는 것이오.

그럼 다시 볼 날까지 몸 건강히 지내고, 이만 총총....

p.s. 마음이 심란한 사람은 저에게 편지를 보내도 되오.
주소: 우편번호 450-150
경기도 평택우체국 사서함 30호
205호 좌동엽

2000년 7월 17일 평택구치소에서 동엽

덧붙이는 글 | 기사 내용에 주소까지 공개해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으나 의장님에게 일빈 독자들의 격려 편지라도 닿는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아 조심스레 공개합니다. 
편집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 내용에 주소까지 공개해도 괜찮을지 판단이 서지 않으나 의장님에게 일빈 독자들의 격려 편지라도 닿는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아 조심스레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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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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