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이야기(4) - 신입식

전과 2범이 쓰는 진짜 교도소 이야기

등록 2000.08.05 00:35수정 2000.08.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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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식

시작이란 아름다운 것이라지만 모든 시작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교도소 신입식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나는 절도방과 재산방(사기, 횡령, 부도 등), 교특방 등을 전전했는데 어딜 가든 신입식은 그야말로 야만도 그런 야만이 없을 지경이다. 그나마 그런 곳은 조금 나은 편이다. 강력방 같은 곳에선 심심하면 사람 한둘씩 다음날 의무과로 실려가기 일쑤고 때론, 신입식에 불만을 품은 신입이 한밤 중에 플라스틱 수저로 눈알을 파내버리는 엽기적인 일까지도 생긴다. (96년7월)

신입식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심심한데 시간이나 떼우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입에게 방의 질서와 규율을 과시함으로써 온순한 '아랫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처음의 목적이 강조되는 곳은 대게 절도방, 재산방, 교특방 같은 곳이고, 두번째의 목적이 강조되는 곳은 강력방이다. 둘다 저열한 야만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경찰서 유치장 등에서 신입식에 대해 잔뜩 공포를 주입받고 온 신입들의 근거없는 공포심과 3.75평의 공간에서 적게는 15 많게는 21명까지 부대끼며 살아가는 수용자들의 지루함과 그 지루함이 양산하는 변태적인 장난기가 짬뽕되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나 겨우 3.75평에 무려 많게는 21명까지 수용되는 그 야만의 공간이 주는 주체못할 스트레스를 신입식에서의 가학을 통해 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상상을 해보라. 3.75평에 20여명이라니...

그럼 본격적으로 신입식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겠다.


98년 4월, 절도방에 들어온 지 한달만에 나는 내 특수한 죄명때문에 방규율에서 완전 해방되었다. 나에겐 청소하고, 식사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여타 자질구래한 일을 할 의무가 전면 면제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자유스럽게 교도소 내를 돌아다닐 수 있고 그렇게 돌아다니며 방에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모아다 준 덕택이었다. 예컨대, 교도관들이 마시고 버린 음료수캔 하나도 방에 가지고 오면 귀중한 칼로 가공되었다.

일주일에 한두번 있는 신입식은 언제 보아도 즐겁고 유쾌한 것이었다. 때론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어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지나치게 '오버'하는 일도 없었던 데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따뜻한 인정'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갈군 뒤 보내는 애정어린 손길'이 보기 좋아 궂이 참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날은 밤이 아주 늦어서야 신입 한 명이 들어왔다. 막 잠이 들려던 찰나에 방문이 덜커덩 열리고 신입이 들어오자 기분이 몹씨 나빠 '오늘은 나도 신입식에 참여해서 좀 괴롭혀야겠다'고 맘을 먹었는데, 어라? 얼굴을 보니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어찌할 줄 모르고 서 계신 게 아닌가.

나이가 많건 적건간에 신입식은 필수 코스. 봉사원은(방에서의 서열은 봉사원 - 배식반장 - 규율반장 - 소지반장 순이다) 어차피 잠도 깼고 하니 바로 신입식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고 나머지야 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신입은 뼁끼통(화장실) 옆 벽에 기대듯 꿇어 앉고 우리는 자기 잠자리에서 정좌를 하고 앉았다. 신입식의 사회는 언제나 배식반장이다. 배식반장은 전형적인 월담스포츠맨(담넘이)인데 담을 넘은 횟수에 비해 액수가 작아 자기보다 훔친 액수가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버릇이 있었다.

"에... 오늘도 우리 고요한 의적방에 도둑놈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저녁만큼은 경건하게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의 바쁜 하루를 계획하며 선진징역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지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유통업계의 내일을 걱정하며 그렇지 않아도 IMF때문에 어려운 지역경제의 자금회전율을 높이고자... 어쩌고 저쩌고... 신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배식반장의 첫 맨트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배식반장은 신입식의 개회(?)를 알리는 맨트를 끝내고 조그마한 쪽지하나를 신입에게 건넨다. 거기엔 신입소개 요령이 적혀 있는데, 중간에 말이 막히거나 토씨하나라도 틀리거나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먼저 큰절.
그러면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신입 인사올리겠습니다. 성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명은 @@@입니다. 주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소는 ~ ~ ~ 입니다. 가족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족관계는 # # # 입니다. 죄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신입의 소개가 끝나면 사건개요를 듣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범죄학습이 이루어지는데, 대개 이런 식이다.
"아, 거기서 영감이 수표를 바로 사용한 게 문제지. 수표는 일단 ***로 가서 **한 다음에 ***해야 한단 말야. 내가 그렇게 해서 600 거저 먹었잖아. 경찰에 걸리지도 않아요~"

이렇게 30여분 가량 문답식 혹은 토론식의 범죄학습이 끝나면 슬슬 배식반장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어이, 신입! 신입이 아무리 나이도 많고 억울하게 들어왔어도 이 방은 나름의 규율과 질서, 전통이란 게 있어. 우리는 이 방에서 나갈 때까지 한가족이란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항상 신입이 들어오면 피를 나눠 먹지. 여기 있는 사람 죄다 한모금씩 마시려면 원래 한바가지가 필요한데 신입은 나이도 많고 몸도 많이 불편한것 같으니까 한사발만 뽑아 마실께. 괞찮지?"

규율반장이 한 몫 거든다.
"배식반장님, 저변에 영식이(가명) 들어왔을 때 영식이 귀는 형님이 먹고 다음에 들어온 사람 귀는 저더러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저 영감 귀 하나 제가 먹어도 되죠?" 영식이는 21살 먹은 앤데,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 한쪽 귀가 없는 애다.

이쯤 되면, 신입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거나 이빨을 소리가 날 정도로 덜그럭거리기 시작한다. 웃음이 터지려고 하지만 절대 엄격하고 굳은 표정을 누그려 뜨려선 안된다.

"어이, 영감. 불만 없지? 그럼 피 뽑게 여기 누워."
여기저기서 이미 짜놓은 한마디씩 뱉어낸다.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배식반장님, 무서울텐데 눈이라도 좀 가려주죠."
"어이 신입, 피 뽑다가 죽으면 안되니까 피 뽑는 도중에 추우면 오른손을 들고 어지러우면 오른발을 들어. 알았지?"
"야, 빵가져 와. 피에다 찍어 먹으니까 무진 맛있더라"

이제 본격적으로 "피뽑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현란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실제로 피를 뽑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수건으로 눈을 가린 다음, 왼손 팔꿈치 밑에 피(?)를 받을 사발을 하나 놓는다. 그리고 팔꿈치 바로 위를 줄로 세게 묶어 감각을 마비시키고 화장지에 물을 묻혀 소독하듯 팔을 닦아낸다. (때론 이 단계에서 엉엉 울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떼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곤 "이제 피 뽑는다"라고 말하고는 배식칼(음료수캔이나 모기약따위를 펴서 만든 칼)로 핏줄을 죽 긋는데 피가 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동시에 음료수 빨대를 정확하게 그은 자리에 꽂아야 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미리 따뜻한 물을 입에 담고 있던 사람이 와서 빨대를 물고는 따뜻한 물을 천천히 조금씩 빨대를 통해 뱉어낸다. 그럼 감쪽같이 피가 팔뚝을 흘러 빠져나가는 느낌이 나는데 십중팔구 엉엉 울면서 5초도 안돼서 오른팔과 오른 발을 들고 "춥고 어지러워요... 한 번만 봐주세요"하게 되어있다. 폭소만발!

그외에도 <김일성 눈깔파기>, <아리랑>등이 있는데,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신입식의 마지막은 언제나 "야, 신입. 잠자게 이제 불꺼"로 끝난다.
교도소는 계호상 편의를 위해 24시간 불을 켜 놓는다. 그리고 전등의 점멸은 중앙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방안에 불을 끌 수 있는 장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신입식이 끝나고 자리에 누워 조용히 몇마디 수근대는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덧 여기저기서 코고를 소리가 들리고 여느 때처럼 잠시 후, 신입의 조용한 흐느낌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식들? 아내? 부모님? 형제들?

아, 그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고물장수였다. IMF 이후 너무 장사가 안되자 그는 리어카를 끌로 멀리까지 고물을 주으러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공사장 주변에서 고장난 듯한 쇳덩이 하나를 주어온다. 그는 그것이 소형굴착기였는지도 몰랐고 집엔 허리가 몹시 아픈 늙은 아내가 움직이지도 못한채 누워 있다.

그가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자 검찰은 그가 대단히 파렴치하다고 판단했고 그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는 '고장나 보이는' '쇳덩이'하나를 '주어'왔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내일부터 국토순례를 하게 됩니다. 간간히 PC방에 들러 글을 올릴 수도 있겠으나 예정했던 대로 매일 글을 올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래 광고를 클릭해 주십시오. <교도소 이야기>는 30회까지 연재할 예정인데, 여기서 모인 원고료는 현재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양심수 정동찬 군의 영치금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가 내일부터 국토순례를 하게 됩니다. 간간히 PC방에 들러 글을 올릴 수도 있겠으나 예정했던 대로 매일 글을 올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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