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서구식 개발 논리'의 실수

서구식 개발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등록 2000.08.21 14:12수정 2000.08.2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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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개발이 지구촌 모든 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등 선진국들은 이같은 착각으로 인해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 1944년 설립된 뒤 최근 제 3세계 개발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세계은행(총재·제임스 울펜슨).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을 확대시키는 도구라는 지적이 적지않지만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에 1164억달러(약 132조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있는 거대한 국제기구입니다.

막강한 경제권력을 휘두르는 세계은행의 제1원칙은 "도움을 주되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세계은행은 최근 이같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또 다시 시인해야 했습니다.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지난달 인도석탄회사에 대한 차관 프로젝트를 취소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난 97년 5억3000만달러(약 6000억원)를 빌려주기로 한 뒤 절반밖에 집행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수천명의 지역 주민들이 세계은행의 프로젝트로 인해 비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당초 세계은행은 이 석탄회사에 자금을 지원,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답니다. 광산 확장등을 위해 농사짓던 땅을 내줘야 했던 현지 주민들에게는 적절한 직업교육등 이주정책이 뒷받침될 것으로 믿었죠.

그러나 한디드후아라는 이주민들의 마을은 '유령동네'로 낙인찍혔습니다. 주민들은 하루 단 몇시간만 나오는 석탄가루가 섞인 더러운 물로 간신히 목욕과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석탄회사는 마실 물을 약속했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한 주민은 "예전에 살던 마을에는 물과 전기, 석탄이 다 있었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석탄회사는 과거보다 효율적으로 변신, 수익도 내지만 지역주민 재훈련 문제에는 쑥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세계은행이 요구하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용을 늘릴 수도 없었습니다. 땅을 빼앗긴 1만여 주민 가운데 직업훈련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이는 현재 550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들이 대부분 문맹이고 자본주의 경제에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죠. 세계은행이 개도국 빈곤층을 위해 고용하고 있는 사회,경제학자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전혀 도움이 안됐습니다.


세계은행은 이미 몇 년전부터 제3세계에 빌딩과 도로, 댐과 수로 건설을 지원해주고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기업과 엘리트에게만 이익을 돌려준다"는 국제적 비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페루에서는 금광 개발을 지원했으나 가난한 농부의 땅을 빼앗았을뿐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댐 건설을 지원한 아프리카 레소토에서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인도 프로젝트가 실패한 뒤 세계은행과 석탄회사가 서로 '네탓'을 외치는 동안 주민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 특성을 무시한 서구식 개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돈을 빌려줄테니 경제구조를 '선진화'하라는 오만한 요구가 때로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받아들여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1일자 문화일보에 게재된 것을 기자가 메일진 용으로 다듬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21일자 문화일보에 게재된 것을 기자가 메일진 용으로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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