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의약분업을 2개월간 실천해본 소감

등록 2000.08.24 21:15수정 2000.08.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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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업 의사일 때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약은 환자에게 처방전을 써주었는다. 그리고 보건소 의사가 된 후로는 7월 1일부터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발행하고 있다. 주로 성분명으로 처방하지만 성분명이 너무 긴 약과 내가 개업하면서 경험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약은 상품명으로 발행한다.

성분명으로 처방했는데도 약사들에게서 다른 약으로 대체하면 어떻겠냐는 전화가 상당히 온다. 주요한 약으로서가 아니라 보조제로서 처방한 제산제 같은 약은 대개 대체하라고 말해주고 조금이라도 의심쩍으면 꼭 전화하라고 한다. 서너명의 약사는 고친 처방전을 fax로 보내오기도 했다.

요즈음은 보건소에 하루에 200여명의 환자가 오는데 많은 수는 아니지만 약국에서 마이신이나 혈압약, 당뇨약 등을 판매할 수 없으니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오라고 해 처방전을 받으러 왔다는 환자들이 날마다 몇 명 정도는 있다.

어느 노인 여성은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약국의 약사가 자신은 어지러운데 혈압약을 하루 분도 주지 않고 딱 잡아떼며 처방전을 받아오라고 해 그 약사가 미워서 다시는 그 약국에 가지 않아야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노인에게 그 약사야말로 제대로 된 좋은 약사라면서 앞으로는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되도록이면 꼭 그 약국을 이용하시라고 했다. 약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약을 주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니 그 약사처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그러냐면서 웃고 그 약국에 가야겠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열이 있고 기침을 하며 온 몸에 빨간 발진이 난 초등학교 2년생 남자아이가 5학년생 누나와 함께 치료받으러 왔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일하러 갔으며 할머니는 걸을 수가 없어서 초등학교 5학년생이 보호자로 같이 온 것이다.

군복무 중인 공보의로 보건소에 파견나와 다른 어려운 내과 환자에 대해선 내게 알려주기도 했던 서울대 대학병원에서 수련받은 내과 전문의가 소아 환자이고 피부에 발진이 돋아 자신은 진료하지 못하겠다며 내게 데리고 온 환자였는데 환자 상태가 외부로 보기에 너무 심해 처음엔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큰 병원에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어려워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진료해 보자고 작정했다.


열, 기침, 발진으로 보면 홍역인 것 같고 기침이 없고 혀의 백태가 벗겨졌다면 성홍열 같은데 성홍열의 초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두드러기 같은 생각도 들어서 history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기침과 열이 나서 어느 개인의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지어 3봉째 먹고 발진이 돋았다는 말을 듣고 무슨 약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누나인 여자 아이가 처방전을 지갑에서 꺼내 주는 것이었다. 이 처방전이 내가 바른 진단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이 경우는 의약분업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이다.


코데원, 아네모,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약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나는 10년간의 개업 경험으로 코데원과 아네모가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발진을 자세히 보니 조금씩 위로 올라온 양상이 두드러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약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진단을 내리고 주사약과 먹는 약을 하루분 처방하고 다음날 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상당히 좋아졌고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세번째 날엔 더욱 좋아져서 또 주사를 놓아주고 약을 이틀분 처방해주었다.

남은 약이라며 가져온 약을 보니 흰색 알약 두알과 노란색의 긴 알약을 절반으로 쪼갠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아네모가 항생제인 줄 알았는데 모양이 항생제가 아닌 것 같아 의사들이 약에 대해 잘 모를 때 참조하는 KIMS라는 책을 보았는데 그 책자에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노란색 약이 코데원이라고 금방 추측이 되는데 심한 기침에 잘 듣는 코데인제제이다. KIMS를 보니 내 추측이 맞았고 같은 성분인 코데날과 색갈이 약간 더 옅으기만 할 뿐 아주 비슷했다. 나는 경험으로 그 노란색 색소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코데날을 사용하다가 색소가 전혀 없는 코데농으로 바꾸어서 몇년간을 환자들에게 처방해 주었다. 그 후론 그 약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환자를 본 적이 없다.

그 색소는 타르트라진인데 다른 회사 다른 제제의 기침약에서도 알레르기 천식 반응을 일으켜 내가 약을 주었던 환자가 큰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나는 그 색소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건소에 오는 환자들에게 그 약을 처방해줄 땐 꼭 그 이야기를 해주고 약사에게서 코데날로 대체하면 어떻겠느냐는 전화가 오면 그 이야기를 또 해주며 대체하지 말고 우선 환자를 다른 약국으로 보내고 그 약국에도 색소가 안 들어간 코데농을 구입하라고 권한다.

대체조제가 경우에 따라선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약사 마음대로 같은 성분이라고 의사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대체하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또 두드러기와 피부 염증이 있는 공무원 환자가 있었는데 먼저 약국에 가서 한약으로 된 알약(8,000원이나 했다고 한다)과 진통제를 사 복용했지만 낫지 않아 보건소로 와서 내 처방을 받아 낫게 되었는데 거의 다 나아갈 무렵 또 그 약국에 갔더니 처음에 판매했던 한약제인지 생약제인지를 또 권했다고 한다.

빨리 완전히 낫고 싶다며 그 약을 함께 복용해도 좋은지 내게 물어보니 그 환자에게 나는 약은 같이 사용할 경우에 상승, 반대 작용 등이 있을 수 있고 심한 경우엔 무서운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아무 약도 사용하지 말고 가만히 놓아두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무좀약과 항히스타민제을 함께 사용한 환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한약제와 함께 먹으라고 약사가 권하다니 참으로 무섭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팔 때는 한약제는 함께 팔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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