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호남은행 건물 역사 흔적 그대로 간직

70년 나이 민족자본 상징으로 남아

등록 2000.09.29 08:04수정 2000.09.2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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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흥은행 목포지점이 들어서 있는 구 호남은행 건물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남 목포문화원은 최근 펴낸 책자를 통해 목포시 상락동 1가 10-2번지에 자리한 호남은행 건물 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조흥은행도 10월 2일 나기언 호남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현관 옆에 건물의 유래를 소개한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일제치하인 지난 1920년 9월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호남은행은 풍부한 농산물과 죽세공 등 유명한 특산물을 생산하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지역 금융기관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호남의 부호로 알려진 현준호와 김상섭,김병로 등 자본금 150만원으로 설립된 호남은행은 본점을 광주에 두고 있었다

현준호 선생 등 주도로 설립

당시 조선은행과 조선식산 은행 등 금융기관이 있었으나 특수은행이어서 금융수급 업무에 제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호남은행은 상업은행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설립 13년만인 1933년 7월에는 동래은행을 흡수, 합병한 것을 계기로 금융시장을 경상남도 지역까지 확대했다.


동래와 거창을 비롯해 영광과 담양 등지에 지점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제는 1928년 신은행령을 공포해 민족계 금융기관에 대해 일본계 은행과의 통합을 강요했다고 한다. 일종의 식민지 금융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호남은행은 일본인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계 은행 동일은행과 통합하지 않는 등 조선 총독부 정책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다가 결국 1942년 4월 30일 강제합병의 수모를 당하게 된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942년 9월 민족자본 은행들은 주식회사 조흥은행을 설립해 민족계 은행의 명맥을 이어왔다.

창립 22년만에 강제합병

이런 유서깊은 역사를 담고 있는 목포시 상락동 건물은 밖에서 보면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이며 외벽을 장식한 자재는 당시 러시아산 타일로, 70년이 흐른 지금도 견고함을 간직하고 있다.

목포문화원 이생연 사무국장은 "한말의 근대적 금융기관 설립은 일본인들의 식민지 전초과정의 하나로 추진됐다"며 "호남은행은 일제의 식민자본 이식에 맞서 설립한 은행으로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주자본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 건물에 얽힌 일화도 있다.

간판글자 관련 일화

건물 정문에 부착된 현대식 간판 뒤엔 음각된 주식회사 조선은행 목포지점(株式會社 朝鮮銀行 木浦支店)이란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조선"이라는 글자는 원래 "호남"이었던 것을 후에 바꾼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浦"자의 <'> 한 획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전해지는 일화에는 은행 설립자 현준호 선생(1889∼1950)이 "일제로부터 독립하면 점을 찍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설립자인 현준호 선생은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출신으로 사업가이자 전라남도 참사, 전남도 평의회 의원 등을 두루 거친 현기봉 씨가 아들이다.

서울에서 공부한 뒤 23살 때 일본 메이지 대학 법률학과를 마치고 1917년 귀국해 민족은행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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