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을 떠들썩하게 한 "거리극"

콜롬비아 극단 ‘띠에라’ <다시 온 선사시대>

등록 2000.09.29 14:56수정 2000.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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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였던가. 국어 선생님께서 연극의 특성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두 가지 사실로 들어 주셨던 게 기억난다. 무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거기다 그 때 그 시간 외에는 그것과 똑같은 연극을 다시 보긴 힘들다는 얘기였다.

영화와는 달리 연기자가 매번 연기를 관객 앞에서 해야 하니까 손동작 하나라도 틀리게 되고, 바람 소리, 조명의 밝기조차 아주 미세하지만 다를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것이었다. 시험을 칠 때면 배운 그대로 달달 외워서 답안지에 쓰곤 했었는데 2000년 ‘과천 마당극제’에서 만난 충격 덕분에 그 명제는 이제 페기되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콜롬비아 극단 ‘띠에라’의 거리극 ‘다시 온 선사시대’였다. “우리 모두는 무관심의 노예다……지금은 다시 온 선사시대다” 그들은 그렇게 외치며 극을 시작했다.

처음, 과천 시민회관 잔디큰마당(이라곤 하지만, 사실은 잔디는 전혀 깔려 있지 않은 모래바닥이다)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이 연극은 초반기 몇 회의 공연을 갇힌 공간에서 펼치며 논란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콜롬비아 극단 띠에라는 원래가 거리극으로 유명한 극단이었고,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물체를 이용해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바꿔가는 것으로 호평을 받고 있었던 극이다.

그럼에도 유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 마당극제를 준비한 쪽에선 이들에게 열린 공간에서 펼칠 연극을 닫힌 공간에 맞게 재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덕분에 내가 본 마지막 공연 말고는 4회 공연 전부 색동마당과 잔디큰마당 안에 갇힌 채 공연되어야 했다. 그 날(27일)의 공연을 선택한 이들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잔디큰마당에 모였던 이십여명의 관객들(중에 아이가 절반을 차지했다)은 자원봉사자와 콜롬비아 극단 관계자가 들고 가는 하얀 팻말을 따라 공연장 밖 거리로 나서게 됐다. 팻말에 적힌 것은 “이리 오세요, 따라오세요”하는 글자들이었고, 키득키득 웃으며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가 한번 구경해 보자는 심사로 나 역시 흔쾌히 그 무리에 섞여들었다.

그들 나라의 말로 진행되는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우를 데려와 확성기로 부분부분 읽으며 배우들을 따라가도록 했는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엉성한 번역과 성의없이 읽어대는 성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울려 흡사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희극적이다. 먼 외국에서 날아와 너무도 진지하게, 온몸으로 땀 흘리며 거리극을 펼쳐 놓고 있는 콜롬비아의 배우들에 비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는 태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배우들의 뒤를 좋아라 따라간다. 엄마들은 그 아이들을 쫓아가느라 어쩔 수 없이 우물쭈물하는 동안 어느새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시선을 그대로 받는 신세가 됐다.

검은 우산을 들고 든 배우가 어느 새 과천시민회관 입구의 ‘문화 예술의 전당’이라 적은 2미터에 이르는 비석에 올라가서 계속 호루라기를 분다. 그 앞에서 그들은 “우리는 모두 도시가 잉태한 생명이다……고독한 군중이다”란 대사를 읊으며 서로의 몸을 부딪치고 목 없는 어린아이 인형을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절대고독을 표현한다. 그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눈은 아주 많았는데 놀러나온 유치원 아이부터, 길 가던 할머니, 심지어는 전경차에 그득 실린 전경들도 어두운 버스 안에서 눈을 반짝이며 밖을 내다본다.


시민회관을 벗어난 우리(배우와 자원봉사자와 구경꾼들)는 신호등이 빨간 불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역 입구가 있는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경찰을 코 앞에 두고 그렇게 건너가는 건 시위 현장에서 도로 점거를 했던 대학 때의 그런 경험과는 그 고소함의 정도는 다르지만, 작은 통쾌함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진행되는‘다시 온 선사시대’는 소통불능의 현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대도시 현대인의 아픔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다.
정부종합청사 11번 출구 지붕 위에 올라간 배우는 “당신들은 나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의 파산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외치고, 다른 배우들은 막 죽음으로 뛰어들려는 그와 상관없이 핸드폰 통화에 여념이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꽤 높은 곳인데도 다들 아주 가볍게 오르내리며 연기를 한다. 공연장 안에서였다면 찾아볼 수 없었을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지하철역을 지나 도로 저 편의 서울호프호텔로 가기 위해 배우들과 긴 행렬의 구경꾼이 뒤따랐다. 파란 불로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로 뛰어간 배우들은 착하게 파란 불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억울했던지 그만 도로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들의 공인된 불법 행위는 아주 통쾌했다. 연극이 결말을 향해 다가갈수록 관객도 늘어나 이젠 제법 규모가 큰 70여명 정도가 배우들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길 가던 모든 이를 연극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호텔 내부 전기 공사를 하던 인부도,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쓰레기봉지를 손에 들고, 그대로 이 연극의 관객이 된다. 드디어는 배우과 관객이 간간이 섞여 한 줄로 길게 서게 되는데 주택은행 과천점 뒷길로 앞 사람의 발을 쫓아 배우들의 호루라기 소리를 벗삼아 따라가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난다.

그들은 결국 연극을 보는 순간, 연극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말았던 관객들을 성공적으로 자기들의 연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닫힌 공연장 안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관객을 찾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은 틀을 한꺼풀 벗어내는 통쾌함을 갖고 있었다.
“병들어가는 대도시에서 인간은 지렁이로 변해갔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이를 미친 놈이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던 외침은 결국 청계산 들어가는 길 옆의 중앙공원 분수대에 이르러 “나는 지렁이가 아니라 개성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예전에 인간이었단 사실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거리극은 그렇게 흥겨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공연장 안에서 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낳았다. 23일부터 나흘 동안 내내 닫힌 공간에서 진행되었단 얘기를 들으니 얼마나 갑갑한 연극이었을까 절로 고개를 흔들게 된다. 진행하는 쪽에선 이 극이 원래 거리극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으니, 혹 입장료 2천원이나마 받아야 한다는 조직위의 욕심 때문에 마지막 회 단 한 번만 거리에서 진행하게 한 것이나 아닌지…….

남미의 열정적인 거리극 한 편이 우리 연극인들에게도 좀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관객을 만나려는 노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덧붙이는 글 | ◆ La Nueva Prehistoria‘다시 온 선사시대’/Teatro Tierra‘극단 띠에라’  
◆ 작 - 레네 레베떼스  
◆ 연출 - Juan Carlos Moya

덧붙이는 글 ◆ La Nueva Prehistoria‘다시 온 선사시대’/Teatro Tierra‘극단 띠에라’  
◆ 작 - 레네 레베떼스  
◆ 연출 - Juan Carlos M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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