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서울북마트> 옛책도 쏠쏠히 만나는 헌책방

서울역 앞에 하나 남은 쓸쓸한 헌책방 찾아가기

등록 2000.10.15 21:49수정 2000.10.16 15:12
0
원고료로 응원
서울역 언저리에 남은 갈 만한 헌책방은 이제 <서울북마트:(옛 별빛서점)> 한 곳입니다. 다른 곳은 모두 문을 닫았죠. <서울북마트>를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찾아갈 적마다 늘 걱정스럽답니다. 혹시 <서울북마트>도 어찌 되지 않았나 하고요. 그러나 우연찮게 쉬는 날과 걸릴 적 문을 닫았을 때를 빼놓고는 부지런히 책방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납니다.

서울에서 지하철 4호선으로는 12번 나들목으로 나옵니다. 국철(1호선)로는 4호선으로 갈아타는 곳이 나오는 쪽(맨끝)으로 와서 밖으로 나오면 됩니다. 서울역광장을 앞으로 바라보았을 때 왼쪽 끝에서 나간다고 할까요?


광장으로 나오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나와서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짝짝이를 치고 호루라기도 불어가며 노래도 부르고 신나게 집회를 하는군요. 언저리에는 한뎃잠이(노숙자)들도 전철역 나들목 벽에 기대어서 자고 있고요. 집회를 막는 전경은 뵈지 않고 언저리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은 자주 있는 집회지만 신기한 듯 구경합니다. 그 집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길가로 난 길을 걷습니다. 전철역으로는 남영역(숙대입구)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서 용산쪽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면 <뿌리서점>으로도 갈 수 있지요.

4호선 나들목이든 국철 나들목이든 이곳에서 나와서 <서울북마트>까지 걸어가는 길은 가깝지 않습니다. 웬만한 버스정류장 하나를 걸어가는 길이죠. 가는 길에 오른쪽에는 오락실, 게임방, 만화방, 밥집, 노래방, 술집들이 가득합니다. 지난 날 이 길가에는 길 건너편 학원과 함께 퍽 많은 헌책방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일은 모두 옛 역사로 남았습니다.

책방에 들어서니 먼저 온 책손님 한 분이 계십니다. 모처럼 저 말고 다른 책손님이 낮에 찾아왔습니다(아마 제가 북마트에 찾아갈 때는 손님이 뜸한가 봐요). 북마트 형님은 책을 떼러 가는지 책방을 나서고 누님이 책방을 지킵니다. 책장이 촘촘히 들어서 개미소굴 같은 곳은 불을 꺼두었지만 제가 촘촘히 들어선 책장을 드나들며 책을 보니 불을 켜 주십니다.

책방을 둘러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승렬-한국어의 어원,한샘(1987)>을 보았고 조금 뒤에 <김사달-최신 인체해부도,박애출판사(1955)>를 봅니다. 낡은 책과 교과서가 쌓인 책 틈에 <인체해부도> 책이 있더군요. 1955년에 `대수정판'이란 이름으로 나왔다길래 어떻게 나왔다 싶어 살피니 뼈와 살들을 나타내는 낱말들이 거의 모두 `한자말'로 바뀌어 있네요. `대수정'을 토박이말에서 한자말로 했을까요? 거의 모든 낱말은 일본에서 쓰는 의학 낱말에서 따왔겠죠. 그리고 이 말들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고요.

책방 문을 들어서서 바로 앞은 책이 그다지 많이 쌓여 있지 않았는데 그 동안 퍽 많은 책들이 쌓여서 흔들거립니다. 얼핏 보니 낡은 어린이책들이 많습니다. 혹시나 귀한 자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뒤지니 을유문화사에서 1962년에 낸 `한국아동문학독본' 가운데 10번 <한국전래동요독본>이 있습니다. 후암동에 있었다는 `영락보린원' 소장도서 도장이 찍혀 있네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어린이 옛책이 있는데 다른 책들은 저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네요.


노래책들 사이에서 1983년에 후반기출판사에서 나온 <열창! 히트송>을 하나 꺼냅니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노래책이지만 흘러간 노래들을 살피며 노랫말을 지난 날 어떻게 썼는지 살필 수 있어서 85년 앞서 나온 노래책들은 틈틈이 사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1985년에 펴낸 시 모음 <홍일선-농토의 역사>를 집었습니다. 농촌에서 살다가 도시로 이농을 한 시를 쓴 이는 시골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이와 이농한 이웃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농민들 마음을 시로 담았습니다.

이렇게 다섯 권을 골랐는데 누님이 책값을 무척 싸게 부릅니다. 엇. 책값을 너무 싸게 주시는 거 아니냐고 여쭈니 그냥 웃으면서 책을 싸 주십니다. <서울북마트>에서 퍽 값지다(귀하다)는 자료를 살 때면 속으로 얼마쯤 나오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형님이나 누님이 부르는 책값은 생각 보다 싸서 긴장을 하곤 합니다.


언젠가 북마트 형님이 좋은 책 많이 갖다 둘 테니 자주 들리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뭐랄까. 고서점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는 꽤나 값을 비싸게 부르며 받을 만한 책이겠지만 책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면 정작 쓸모가 있어 찾는 사람들은 사기 어렵습니다.

보물로 여기며 값이 많이 나가는 책도 있겠죠. 그러나 웬만한 자료로 쓰는 책들은 말 그대로 `두고두고 보려고 사는 책'인 만큼 `보물과 같은 골동품'은 아니지요. 골동품으로 책을 사모으고 파는 사람이야 책값을 올리면 좋겠지만 `공부하고 자료로 쓰려고 책을 찾는 사람'에게는 값진 책들은 그만한 값짐을 책값으로 셈하기만 하면 되지요.

그래서 옛책(고서)은 책값을 두고 책방임자와 책손님이 자주 실랑이를 벌입니다. 책값이 너무 싸면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고 책이 쉬 망가지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책이란 것이 `보려고' 만드는 만큼 `사 보기 어렵게' 책값만 비싸면 문제가 많지요.

우리 나라 헌책방 사이에서 `옛책값' 문제로 실랑이가 자주 오가는 까닭은 아무래도 `영인본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귀한 옛책이라면 마땅히 도서관 같은 곳에서 잘 보관하고 있어야겠죠. 그러나 도서관에서 보관을 한다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그 줄거리를 잘 찾아보고 자료로 쓸 수 있도록 영인본 또한 잘 갖추어야 합니다. 영인본이 거의 나오지 않고 나와도 도서관에서 안 갖추기 일쑤고 찾아보기 힘드니 저 같은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영인본'이든 `원본 옛책'이든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영인본을 만들어 다른 헌책과 비슷한 값으로 책을 사 볼 수 있으면 원본은 원본대로 옛책으로 소중히 여길 보물이나 골동품으로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겠죠.

<서울북마트>는 요즘 책과 옛책들을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고서점처럼 짐스러움을 가지지 않으며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자기가 꼭 보아야 할 책인데 좀 비싸다 할 고서로밖에 없다면 <서울북마트>를 찾아가서 뒤져보면 괜찮죠. 책방은 좁은데 책장을 촘촘히 들여놓아서 책방 안쪽은 이제는 들어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이상자에 책들을 넣어두고 책을 보관해 두기도 하고요.

서울역에서 멀리 기차를 타고갈 일이 있는데 차시간은 많이 남고 할 일은 없다면 그 사이에 <서울북마트>를 찾아가 보는 일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더불어 `개미소굴 헌책방' 맛을 느끼면서 책을 찾아보아도 좋고요. 책은 찾는 사람 눈에는 제 몸을 잘 드러냅니다.

덧붙이는 글 | 02) 701-8327 / 017-365-3432 / 012-1871-8327

덧붙이는 글 02) 701-8327 / 017-365-3432 / 012-1871-832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2. 2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3. 3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4. 4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5. 5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