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은 반칙을 하고 있다"

[격돌 인터뷰 : 도서정가제 찬반 논란]
한국출판인회의 정책기획위원장 한철희 씨

등록 2000.10.27 11:40수정 2000.10.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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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반대 논리에 대해서 질문할 것입니다."
10월 27일 오후 4시 돌베개 출판사 사장실. 인터뷰는 처음부터 이런 말로 시작했다.

문화관광부가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에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는 벌칙조항을 신설하면서 일기 시작한 '도서정가제 논란'은 지난 10월 21일 출판사와 서적 도매상 측에서 온라인 서점에 책공급을 중단하면서 본격화됐다.

10월 17일 오마이뉴스에 도서정가제에 관한 기사에 오르자 30여명이 넘는 독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보내왔다. 대부분 논리가 있는 의견이었고 생산적인 토론을 해볼 여지가 충분했다.

모든 기사의견을 프린터했다. 그리고 '도서정가제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한국출판인회의 정책기획위원장 한철희(44·돌베개 출판사 대표) 씨를 찾아갔다. 같은 시각 동료 기자는 반대입장의 온라인 서점 운영자를 인터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기획은 '도전적 격돌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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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싼 값에 책을 살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현상적으로 보면 싸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모든 서점이 할인판매를 하게 된다. 그러면 독자들이 실제 지불하는 가격 자체는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올라간다. 실제로는 만원짜리 책에 할인을 생각해 명목가격으로 만오천원을 붙이게 되기 때문이다."


- 인터넷 서점에는 잠재수요 개발 등 많은 순기능이 있다. 그런 인터넷 서점에 책 공급을 안하는 것은 인터넷 서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서점의 여러가지 순기능과 역할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동안 출판계와 서점계가 해왔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삼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은 지금 반칙을 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터넷 서점들이 자신의 존립이나 경쟁력의 근거를 할인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 서점들끼리 할인 경쟁을 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질서를 잘 지키고 있던 서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비유하자면 조금 막히는 길에서 다른 사람은 다 차선을 지켜서 가는데 혼자 빨리 가겠다고 갓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누구라도 갓길로 가고 싶지 않겠는가."

- 그렇다고 책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 아닌가.

"인터넷 서점이라고 해서 꼭 할인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는다. 정가제를 실시하는 많은 나라는 인터넷 서점도 똑같이 정가제를 하고 있다."

- 유통비를 줄여서 소비자에게 혜택을 돌리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온라인 서점은 이야기한다.

"지금 할인율이 근 30%에 달하는 곳도 있다. 내가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제대로 수익이 나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할인의 양상은 유통비 절감 차원이 아닌 것 같다. 할인을 무기로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많다."

"할인율이 몇 페센트건 원칙적으로 도서할인은 안된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 현재 할인폭은 유통마진의 절감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인가.

"그 이전에 할인 자체가 도서정가제라는 규칙을 깨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 출혈 할인이 아닌 유통비 절감만큼의 할인도 안된다는 말인가.

"그것이 안되는 이유가 몇 퍼센트가 할인되건 간에 기본 원칙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5%건 10%건 15%건 결국 할인을 용인하는 것이다."

- 사실 중소 서점들은 학술서나 양서보다는 학습지와 참고서 등을 주로 공급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온라인 서점이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서적을 전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지 않다. 군소서점 매상에서 학습지와 참고서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또한 대학가 앞에 있는 작은 서점들은 주로 양서를 공급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폐지는 그런 서점들을 다 없어지게 할 수 있다."

-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으면 중소서점이 연쇄도산을 한다는 말인데, 거꾸로 생각하면 아예 할인을 인정하지 않으면 온라인 서점이 도산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꼭 할인을 해야만 인터넷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고 할인하지 않으면 도산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온라인 서점은 할인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을 개발해 경쟁해야 한다."

-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야후 코리아'가 생긴 지금 '아마존 코리아'가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세계적인 온라인 상거래에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자체적인 온라인 서적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서점 다 문닫고 출판사도 다 문닫고 그 속에서 인터넷 서점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인가. 오프라인 서점도 잘 갖춰진 상태에서 온라인 서점이 발전해야 굳건히 대처할 수 있다. 아마존 코리아를 대비하기 위해 도서정가제에 온라인 서점만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오프라인을 다 죽이고 온라인을 키워달라는 것이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이 모두 다 사는 방법, 즉 윈-윈(win-win) 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래서 출판계와 온라인 서점들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없지만 일단은 기본적으로 도서정가제를 인정하는 속에서 온라인 서점의 특수성을 감안하는 방식, 마일리지 제도 확대나 마케팅적인 방식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는 도서관의 확충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도서관 확충과 예산 확보는 온라인, 오프라인, 독자 모두에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지금의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도서관 문제는 각계에서 벌써부터 지적해 오던 문제고 도서정가제 문제는 당면한 문제다. 도서관 문제는 1·2년 내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해결 가능성도 현실성도 없다. 지금 갈등은 온라인 서점이 도서정가제의 틀에 들어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 일부 독자들은 인터넷 서점의 싼 책값을 보면서 기존 서점이 도서정가라는 미명하에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내가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대답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그 말이 맞다면 서점들이 떼돈을 벌어야 하는데, 주변 서점들이 과연 그런가."

- 어떻게 보면 엄격한 도서정가제 유지는 결국 대형서점만 이득 보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도서정가제가 잘 지켜져왔지만 일부 대형서점만 번창하고 중소 서점들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대형서점만 이득보는 제도라….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볼 때는 전체 유통산업의 대형화, 전문화 추세에 따라 출판 부분도 영향을 받는 것이지 도서정가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방에서도 교보문고 같은 초대형은 아니어도 점차 중대형화로 가고 있다. 이 문제는 도서정가제보다는 산업 자체의 발전추이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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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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