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꼼꼼히 따지자면 노고산동 골목 안에 자리한 헌책방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책>. 이 책방은 지난 1999년 시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정식으로는 11월 1일에 동무분들을 불러 모아놓고 '개업식'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헌책방 문을 연 날은 시월 중순이 아닌 11월 1일로 따진답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손님이 뜸했답니다.
처음 헌책방 문을 연다고 하면서 책방 문을 열기 앞서 자주 다녔던 헌책방 다섯 군데를 찾아가 이런 저런 얘기를 묻고 했는데 두 분은 `당신 밑에 들어와 직원으로 일해 본 다음에 해 보라' 말했고 두 분은 `안 된다(망한다)'고 했답니다. 그 가운데 한 분만 `해 보라'고 말씀했다는군요. 어느 분은 처음 문을 열려면 1억은 있어야 한다고, 5천만 원쯤은 가게값, 권리금, 책장이나 뭐 여러 가지 마련하는 데 든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숨어있는 책> 형님은 그만한 돈을 갖고 있었다면 헌책방이 아닌 다른 사업을 했을 거라고요...
해 보고팠던 세 가지 일은 '자그마한 출판사를 차리는 일'과 '한 가지 밭(분야)' 책만 갖추는 전문 새책방, 다음으로 헌책방이었답니다. 여기서 헌책방이 적은 돈으로도 해 볼 만하다고 느낀 '사업'이랍니다.
헌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대학교도 마치고 출판사(직장)도 다닌 사람이 IMF 즈음에 헌책방을 연다'고 하니 피식 웃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하는 눈길도 보냈답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출판 문화가 여물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는 한 대목이 아닐까 해요. 헌책방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고졸이나 그 아래 학력을 가진 사람으로 치는 사회 분위기라고 할까요? 무척 위험한 생각이며 배운 사람은 헌책방 장사는 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보는 생각입니다.
어느 헌책방을 꾸리는 분은 "같은 돈으로 먹는 장사를 했으면 돈이나 많이 벌지"하고 했답니다. 말 그대로 헌책방 장사란 돈도 썩 벌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면서 몸도 많이 축날 수 있는 일이죠. 그래서 '배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배운 만큼 '많이 돈을 벌 수 없다고 보아' 뛰어들 만한 일이 못 될 수 있지요. 이런 '편견'을 뚫고 헌책방 문을 열었고 나름대로 즐거움을 안고 어려움도 딛고 이겨내면서 살림을 꾸려간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이야기는 들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10월 26일(목요일) 저녁 여덟 시에 한국저작권센터(KCC)에서 일하는 박중서 씨와 프리챌(freechal.com/booklover)에 '숨어있는 책' 모임을 열어놓고 헌책방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꾸려가는 김민성 씨와 오마이뉴스 기자 최종규 씨가 모였습니다. 최종규 씨는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타자로 쳐서 옮기는 일을 했고 박중서, 김민성, <숨어있는 책> 젊은 부부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숨어있는 책> 이름은?
김민성 : 궁금해요. <숨어있는 책> 이름 유래요.
노동환 : 작명은 이 사람이 했어. 난 책과 관련된 이름만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찾아보려 했거든. 그런데 이 사람이 <숨어있는 책>으로 하자고 해서 '어, 이거다'라고 했고. 이거다 싶었지. 내가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느꼈던 게, 서가 사이를 뒤지면서, <뿌리서점>같은 데 있잖아, 이런 곳에 쌓인 책들을 뒤져서 책을 찾은 경험 있잖아. 청계천 같은 데에서 '숨어있는 책'을 뒤지면서 책을 찾은 게 컸지. (그래서 헌책방 이름으로 '숨어있는 책'을 찾는다는 말이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지)
박중서 : 혹시 "숨은 신- 루시앙 골드만"에서 따왔나요?
이미경 : 어디서 따온 건 아니고 그냥 생각했어요. 웃긴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름이)장난 같다고.
김민성 : 헌책방 계속 다니셨잖아요? 책방하시기 전에. 예전에 헌책방 손님이었을 때, 헌책방 계속 다니시면서 건져낸 지금까지 특별하게 여기는 보물 같은 책이 있나요?"
노동환 : 사실 그런 건 없어요. 제일 아끼는 책이라든지, 음,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이라는 건 없고. 그때그때 즐거웠어. 내 목록에서 제일이라는 건 없어. 내 성격 탓이라고 할까? 제일 와닿는 건 없고.
<숨어있는 책> 앞날은?
박중서 : 현실 이야기로. 언제까지 책방을 할 수 있다고 봐요?
노동환 : 쉰 살까지는 할 수 있을 거 같고. 모르겠어. 그리고, 내가 보는 헌책방 규모는 이 매장으론 작은 거 같애. 요거보다는 대여섯 배 크기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크기가, 말하자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일 거 같고. 고 정도까지만 하고 그 안에서 하고 싶어.
이미경 : 사실은, 조금만 더 커지면 될 거 같은데 안 크면 사람들이 웃을 거 같애요. 벌어서 다 뭐 할 거냐고(얘기할 듯하고), 사실 버는 건 없는데.
노동환 : 현실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헌책방 말고 할인서점이라든지 헌책방이면서 특정분야 서점 있잖아. 그젠가 어느 손님이 와서 얘기했는데. 말하자면 소규모 출판사로 전국으로 배본은 안 하고, 무가지? 서점에서 유통 안 되는 책만 공급루트로 유통하는데 그런 것도 있다고 하는데.
박중서 : 신한마디어 박 노인님이 생각은 있는데 호응은 많이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이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를 내기도 했죠. '헌책방 그라픽스' 같은 책을 낸다면 (그렇게 팔아도) 될 거도 같은데. 그런데 새 책 가격에 나가야 한다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지.
김민성 : 인터넷에 있는 '숨어있는책 사이트'는 죽어 있는데, 게시판이라도 손님이 책을 찾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라도 만들어 갈 생각은 있나요?
노동환 : 전체적으론 여기 매출규모나 살림 규모가 커져야지. 책방 꾸리고 인터넷까지 하기엔 나하고 마누라하고 하기엔 힘들 거 같애.
김민성 : 그래도 인터넷에서 물어 보는 거에 답을 하는 정도로는...
노동환 : 그래. 좀 애써 볼게.
(<숨어있는 책>은 처음 문을 열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려고 했으나
일손이 모자라 열지 못하고 도메인만 등록해서 그 값만 냈다고 합니다)
최종규 : 지금까지 운영한 건 만족하는지?
노동환 : 잘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벌이는 웬만큼 생활할 수 있을 정도고. 빡빡하게 (살림을 꾸리긴 하는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마음 편한 거를 한다고 봐요. 아직까진 성공이라고 생각해.
박중서 : 책 말고 다른 건 어때요? 비디오테이프나 다른 물건을 만져 보면 어떨까요? 여러 가지 물건을 만지는 헌책방들도 많잖아요?
노동환 : 문제가 좀 있지. 1차 수거로 비디오나 레코드는 가능한 데 난 2차 수거니까. 책만 하면 되는데. 비디오 같은 거는 매장에서 다른 거 할 여지도 없고(좁으니까). 책만 하기에도 힘든 상황이니까.
박중서 : 1차 수집기관이 아니라는 거, 그게 문제가 될지도 몰라. 단가가 확 뛰면 여기도 타격을 받을 수 있고.
노동환 : 타격폭이 치명적이진 않을 거라고 봐. 도매가와 함께 소매가도 움직이니까.
박중서 : 하여간 몸이 힘들어.
노동환 : 몸이 힘든 건 사실인데.
박중서 :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며 생각해야지. 중개상과 거래하지 않으면서 혼자 다 하면 힘이 많이 들 텐데.
노동환 : 규모를 달리 하면 책방하면서 구해오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아직 중개상 하는 분들이 별로 안 찾아왔지만, 찾아오시면 거래할 생각은 있어요.
교과서,참고서와 헌책방
김민성 : <숨어있는 책> 생긴 뒤에다른 책방도 생기고 미아리 <책의 향기>도 올해 4월에 생겼고. <문화서점>도 그렇고. 그렇게 생겼을 때 나가는 게 (책이 팔려나가는 걸 말합니다) 있잖아요, 셋을 비교했을 때 <숨어있는 책>이 많이 알려져 있고 운영하는 데에서 2차 수거라는 장점이 많은 거 같애요. 그래서 사람들도 많이 찾고.
노동환 : 그런 장점도 있어.
박중서 : 그런데 그건 한계가 있어. 주인이 아는 분야와 딱 맞아떨어졌을 때 장점이 되지.
김민성 : 대부분 다른 서점을 봤을 때 중고생 참고서 있잖아요. 책방이 돌아가는 건 중고생 참고서를 팔아서 돌아가는 거지. 일반 책들만 갖춰서는 책방을 꾸려가기 어려우니까 중고생 참고서와 교과서를 많이 갖추잖아요.
최종규 : 참고서나 여성지, 교과서를 팔아서 책방을 꾸려간다고 해도 그 책들도 나름대로 찾을모와 쓸모가 있어요. 사람마다 찾는 책이 다르니까요. 사실 중고등학교 수험생 처지로 교과서와 참고서 말고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올 수도 없고 눈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게 우리 현실이잖아요. 저도 헌책방에 발을 들여놓은 건 대입공부 하며 절판된 독일어 문제집을 찾으러 가면서부터죠. 많은 중고등학생들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찾아보려고 헌책방에 발을 들여놓다가 엄청난 책-교과서와 참고서가 아닌 책-을 보고 `또 다른 세상이 있구나' 하고 느끼며 헌책방에 다시 찾아갑니다.
노동환 : 참고서나 교과서가 많다고 해서 나쁜 서점은 아니라고 봐요. 다만 나는 원래 인문 사회과학 분야와 예술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헌책방을 생각해 왔고, 지금의 가게 위치도 중고교 앞이 아니라 참고서를 찾는 학생들도 적은 편이어서 참고서를 다룰 필요를 못 느끼죠. 또 하나, 앞으로 헌책방은 규모를 키워서 대형 서점이 되거나, 규모가 작다면 한두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입니다.
헌책방과 학력
노동환 : 1차 수거 헌책방과 나는 원래 가격 차이가 나서 마진폭이 작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가지는 게, 나는 재고부담은 작다고 할 수 있는 거야. 2차 수거 할 때는 <숨어있는 책>에 맞는 알짜만 가져온다고 할 수 있으니까. 처지는(안 팔리는) 책 비율이 작을 수 있다는 거지. 고거가 좀 만회가 되는 거 같애.
박중서 : <숨어있는 책>처럼 (언론 매체에서) 호의적으로 다룬 경우는 없는 거 같애. 헌책방들 말이면 처음 얘기한 것처럼 대학도 제대로 마치고 출판사도 여러 해 다닌 직장인이 헌책방을 한다는 게 멀쩡한 사람들이 보기에 재밌게(신기하게) 봤다는 거지.
노동환 : 일반적인 의식이 그런 거고, 난 다른 데. 말 그대로 새책방을 했을 땐 덜 달리 봤을까? 실질적으로 봤을 땐 헌책방이 그런 감식안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 장점이 더 드러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종규 : 헌책방만이 아니라 어린이책 전문서점도 처음엔 `저 사람들 뭐하는 거지?' 하고 쳐다들 봤죠. 지금은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알려 주는 곳을 넘어서 지역 문화공간으로 시나브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헌책방도 그러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나가면 대학교도 마치고 전문직(출판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헌책방 문을 여는 일이 자연스런 `문화현상'이 되리라 봐요. 요새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 가끔 헌책방 문을 열듯 말이죠.
헌책방과 외상
노동환 : 헌책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게 100이라면 난 50로도 충분하다고 봐. 주인이 헌책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말이지.
박중서 : 다른 분들은 100을 바라기에?
노동환 : 그렇다는 게, 내가 근검절약내핍할 수 있는 소질이 있어서 100을 벌지 않아도 50으로도 만족할 수 있거든.
박중서 : 헌책방의 문제도 가족 단위 사업장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해요. 어느 헌책방이나 결정권은 아저씨가 갖고 있거든. 아저씨 아주머니 있어도 비싼 책은 그런 거는 거의 아저씨가 셈하지.
최종규 : 외상으로 책 맡겨놓고 떼먹은 사람은 있나요?
노동환 : 아직... 우리 책방에선 없어.
박중서 : 외상거래는 주인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손님도 가져가지 말아야 해.
이미경 : 그런데 주인이 딱 자르지 못해요.
박중서 : 일 년 걸려 쌓아둔 믿음(책방과 맺은)이 하루만에 무너진다고.
최종규 : 믿음만이 아니라 한 해 동안 쌓은 헌책방 살림도 하루 아침에 도루묵이 되죠.
박중서 : 통신판매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 이른가요?
이미경 : 음, 우리 형편엔 아직 이른 듯...
노동환 :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박중서 : 거봐.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한계를 느끼는 건데. `작은 책방'으로 나아가니까 이런 데서도 제약을 받는 거 아녜요?
노동환 : 한계는 아니고. 이 만큼으로도 괜찮다 이거지. 다만 통신판매를 하려면 그 일을 맡을 만한 일손이 딸리는 문제야.
박중서 : 그런데 커져야지만 좀 유리하게 돌아가는 부분도 있거덩. 손님들에게 만족할 만한 서비스도 그렇고.
김민성 : 사모님도 만족할 만한?
박중서 : 사모님은 불만은 없으셨나요? 그런 생각도 할 만한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사람들이 좀 웃지는 않았어요? 헌책방한다고 할 때. 처음에 어떻게 얘기했어요? 제가 한다고 하면 `너 그럴 줄 알았다' 하면서도 속으로 좀 웃었을 거 같애.
노동환 : 처음엔 벌이가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미경 : 쉽게 헌책방 한다는 얘기는 못해요. 그냥 '책방' 한다고 하지. 생각해 보니까, 우린 단번에 (헌책방 일을) 해 버린 거 같애.
노동환 : 우린 시작할 때 `한번 해 보자, 살 수는 있겠다' 하고 했지.
덧붙이는 글 | 10월 26일 다섯 사람이 모여 나눈 이야기는 퍽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기사로 올리기엔 너무 길어서 <숨어있는 책>이란 헌책방이 한 해 동안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으로 책방을 꾸리는지 살필 수 있는 이야기만 추스리며 다시 갈무리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 둘로 나누어 앞엣것을 먼저 올리고 뒤엣것은 다음에 이어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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