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감독 선생이 되어 되새긴 상념

지난 해 수능감독을 하며 느낀 생각들을...

등록 2000.11.16 13:57수정 2000.11.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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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년에 처음으로 수능감독을 했을 때 적어두었던 새순같던 상념들입니다. 올해도 수능감독을 했습니다. 정말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지요. 작년에는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는 그저 공허함, 무상(無想)으로만 다가오네요.


가 대입을 치르고 거의 10년만인가. 이제는 철저히 타자(他者)가 되어 이 자리에 선다고 믿었지만, 심정적으로든 아니면 같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하며 옆에서 목도해서이든, 난 타자이기는커녕 다시 18살로 인생의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는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이 어느 순간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이 망각이 동물이라는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고3이 내게 남겨준 것이라고는 변비와 뽀얀 피부, 한껏 살오른 내 포동포동한 몸매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의 학교생활이 끝나면 기다리는 독서실 차를 타고 새벽 2시까지 버티느라 안간힘을 썼던 고3 막바지. 집에 들어가면 소파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엄마를 보고 괜한 투정과 짜증을 다 부리고...

사실 난 얼마 전까지도 수학 시험을 보는 꿈을 꿨다. 대학에 들어가고, 임용고시에 붙고, 자동차 운전 면허까지 땄는데 왜 새삼 그 악몽을 꾸는 건지 나도 모를 일이다.

고3때 수학은 내게 늘 열패감과 절망을 심어주는 존재였다. 모의고사 때마다 나오는 수학 평어는 가끔씩 나를 웃기게 했다.
"동점자의 평균보다 20점이 낮습니다."

그렇게 수학은 내게, 해도 안될 것 같은, 제대로 해 보지도 않은 미완성, 나의 오점으로 영원히 남았다. 수능 시험 감독을 하며 쉬는 시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읽었다. 거기서 나온 대화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때요, 다시 한 번 열여덟 살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아니"하고 나는 대답했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군.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열여덟 살이 되고 싶진 않아."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구요.......정말?"
"물론."
"어째서요?"
"지금 이대로가 좋으니까."
"그 말은 어쩐지 믿기지 않는걸요. 젊다는 건 근사하잖아요."
"그렇긴 해."
"그런데 어째서 지금 쪽이 좋죠?"
"한 번으로 충분하거든."
"난 아직 충분치 않은걸요."
"넌 아직 열여덟 살이니까."

나도 열여덟 살(만 나이)이 되고 싶진 않다. 그때가 가장 암울했던 고3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키처럼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지금 나이의 내가 좋다. 아직도 사랑스럽다. 예전보다 더.

옆구리가 결리기 시작한다고 느낀 것은 점심으로 나온 갈비탕을 먹고 난 직후였다. 무엇보다 수능감독하는데 영향을 미칠까봐 당황을 했고, 보건실로 가서 활명수를 달라고 해 마셨다. 한참 동안 속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이 나와 같이 체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빙그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원 대학으로 직접 가서 시험을 보던 세대였다.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뀌고 우리가 처음이었다. 시험 날 동국대 후문에서 정문에 있는 혜화관까지 걸어올라가는데 친절한 ROTC가 나를 데리고 동악을 한 바퀴 가로질러 바래다 주었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시험 잘 보라는 인사말까지. 참 고마웠던 기억이다. 끝말이 가장 맘에 들었지만.
"후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수능 감독을 하며 난 공상과 회상 사이를 수없이 써핑하고 있었다. 내가 어지러워 쓰러지면 어쩌나하는 생각부터, 듣기평가가 끝나고 다시 라디오를 켜면 어떻게 되나하는 망령된 생각. 옛 애인과 차 안에서 첫키스하던 추억과 대학 교수님께 보낼 편지의 내용까지 온갖 상념들이 나를 휘어감고 있었다. 하다못해 저 앞에 서 계신 정감독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까지.

내가 상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많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마음껏 공상할 수 있는 시간은 나이가 들면서 눈에 띄게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무한정 시간이 주어지면 그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지루함 때문에 고민하느니, 난 이 첫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 지루한 시간에 조금씩 감독관 유의사항 용지에 메모를 했다.

처음부터 메모할 용기가 났던 것은 아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3교시 정감독 선생님이 놀랍게도 아이들 앞에서 조그만 라디오(휴대용)를 꺼내 이어폰을 한 쪽 귀에다 꽂는 것이 아닌가. 난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배짱도 두둑하시네. 지루함이 저런 무모한 용기까지 만드는 건가. 난 표정으로 짐짓 담담한 척했지만, 보통 시험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 우리 학교 사례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무리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뒤에서 흘깃거리며 메모할 용기를 얻었던 것 아닐까.

어쨌든 위의 사항은 감독관의 자질로는 부적격이라는 생각이다. 컨닝이 발생하면 그건 학생책임이 아니라 미리 예방하지 못한 교사의 책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보는 그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완전한 타자(他者)가 된 셈 아닌가. 아이를 가르치면서 그토록 외로 꼬는 듯한 태도는 내가 학생이라면, 참 많이 섭섭하고, 무례하게 느꼈을 행동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 반면에 학생의 안경다리를 직접 손으로 고쳐 주시며, 아이가 시간을 아껴 시험 풀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다. 그럼 그 행동은 아이들을 믿기에 하신, 무시험 감독의 추종자? 아구,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감독 선생님, 다시는 그러지 마셔요. 위험한 일이에요."

시험이 끝난 아이들을 보며 의외로 아이들이 시험에 전부를 건 것은 아닌 것같아 보였다. 우리 생각처럼 인생을 좌지우지하거나, 대단한 긴장을 해야 하는 평생의 몇 날일 거라는 생각이 기대치만큼 느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역시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고 난 그 안도감과 멍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난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지금의 안도감과 하나를 매듭지은 느낌은 잠깐이야. 모든 것이 당분간은 완결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우리 인생에 그런 것이 어디에 있니. 너희는 이제 코 앞의 논술부터 해서 많은 허들을 뛰어 넘어야 해. 지금은 안개에 싸여 있지만 말야.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한숨 돌릴 수 있겠구나. 몇 번 넘다보면 좀 익숙해지긴 하겠지만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주책없이 멈칫거리는구나. 너희들은 나보다는 잘 넘는 것 같다. 난 뛰어넘다가 걸린 적은 면허 시험 때 한 번뿐인데도 너네들 앞에서 부끄러워. 왜냐면 지금 너희들의 뛰는 모습보다(걸려 넘어진다 해도), 내 모습이 힘을 꽁꽁 쓰는 것이 아직도 많이 힘을 빼야 할 것 같아서.'

덧붙이는 글 | 작년 수능감독할 때의 기록입니다. 교사일기에 썼던 것인데 올해 수능을 하고 기사로 올려보면 괜찮겠다 여겨져서요. 너무 개인적인 기록이라 좀 그렇네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

덧붙이는 글 작년 수능감독할 때의 기록입니다. 교사일기에 썼던 것인데 올해 수능을 하고 기사로 올려보면 괜찮겠다 여겨져서요. 너무 개인적인 기록이라 좀 그렇네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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