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이 위한 방송하고 싶어요"

장애 딛고 인터넷에서 맹활약하는 CJ 김숙현 씨

등록 2000.11.20 13:03수정 2000.11.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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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중인 환자나 장애우들을 위한 방송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일요일인 19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에 위치한 분단의 현장 임진각에서 개인인터넷 라디오 생방송인 '40~50대 음악세상' 방송 100일 기념방송이 파주청년회의소(회장 노영만) 주최로 진행되고 있었다.

첫번째 사이버자키(CJ)로 나선 김숙현(24. 여. 인천시 서구 연희동 2지구 한국아파트) 씨. 그녀는 6세때부터 온몸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아 지금은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후천성 장애우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 초등학생을 연상케 하는 작은 체구, 버거워 보이는 휠체어,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해맑은 미소.

언뜻 보기에도 바깥 세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나약한 얼굴, 집 주위의 공원은 가끔 산책했지만 멀리까지 외출하기는 태어나 처음이다. 하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차분하면서도 힘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네티즌들을 컴퓨터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가 사이버 자키로 나선 것은 한달 전. 1년 전부터 통신을 통해 알게된 친구들과 윈 엠프, 윈 미디어 등 인터넷 방송을 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됐다. '40~50대 음악세상'의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정식 사이버자키로 진행을 맡게 된 그녀는 김숙현이란 이름 대신 '효조'라는 아이디명을 사용한다. 아직 초보에 불과한 그녀이지만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진행자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장애우라는 사실을 아는 네티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녀는 6세때부터 류마티스 관절염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8살때는 감기합병증으로 사망진단을 받는 등 사경을 헤매며 여러 차례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당시 관절염에 대한 의술이 미약해 수술도 하지 못한 채 실험대상이 되다시피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학업도 초교 2학년때 중도포기하고 검정고시로 고교를 졸업했다. 컴퓨터는 17살 때부터 만지기 시작했다. 그후 컴퓨터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 채팅을 통해 친구를 사귀었다. 그때 사귄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다. 이날도 7년전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송승민(여. 24. 서울시 신림동)이란 통신친구가 응원을 위해 임진각까지 동행을 해 주기도 했다.

그녀는 컴퓨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채팅을 통해 성격이 밝아지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함영숙(47) 씨는 "인터넷이 숙현이를 위해 탄생된 것 같다. 성격도 바뀌고 자기 스스로 세상도 열어갈 수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함씨는 또 "몸이 아파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있어 바랄 게 없다"며,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고 건강이 좋아져 하고 싶은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밝혔다. 지금도 그녀는 하루 하루를 약에 의존하며 고통을 잊고 있다.

"제 방송을 들은 네티즌이 다음날 다시 찾아오거나 친구까지 데려와 채팅을 배우고 인터넷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도 방송을 하고 싶다는 네티즌을 만나면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는 작은 꿈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불행을 인터넷을 통해 극복하고 자신보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방송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40~50대 음악세상 진행을 통해 방송을 배우고 불행을 겪고 있는 환자나 장애우들을 위한 방송을 하는 게 꿈"이라고 밝힌다.

온몸 관절의 고통을 약에 의존해 잊어가며 인터넷을 통해 오히려 정상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배달하고 있는 그녀는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방송에 조금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기도 전에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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