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와 언론종사자들은 왜 한글맞춤법도 모를까?

잘못된 말글을 쓰는 관공서와 언론들

등록 2000.11.30 22:08수정 2000.12.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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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3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운전 중 팻말(도로 표지판)을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광주군에서 이천시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세워진 팻말들은 내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안녕히 가십시요(어서 오십시요) 광주군", "어서 오십시오(안녕히 가십시오) 이천시"라고 쓰여진 글씨는 분명 이웃하는 두 지방자치단체가 세워 놓은 것인데 이렇게 서로 다른 표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만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환경농장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매주 한번씩 광주군 퇴촌면을 지나다니는데 이 퇴촌면의 들머리("입구"란 말도 일본식 한자말이며, 교통방송에서는 "들머리"라고 쓰고 있다)에 있는 면을 알리는 선돌에도 "어서 오십시요"라고 되어 있다.

한글맞춤법(문교부 고시 제88-1호 : 1988년 1월 19일 문교부가 제정, 고시함)의 4장 제2절 <어간과 어미>편에 보면 분명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관공서에서 만든 공공 시설물에 이런 표기가 있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요즘 이런 사례는 공공시설물이나 언론의 경우에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더구나 일본말 찌꺼기나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게다가 가장 모범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아나운서나 사회자(MC)들조차도 쉽게 잘못된 말들을 하고 있어 개탄할 지경이다.

방송에서 예를 들면 지난 10월 27일 MBC의 <아주 특별한 아침>에서 "공책"이란 말 대신에 "노트"란 외래어를 썼다. 11월 17일 SBS <결혼할까요>에서는 사회자(MC)가 "열어 주세요"가 아닌 "오픈해 주세요"라고 했고, 18일 SBS의 <토커넷 쇼>에서는 역시 사회자가 "위험한" 이 아닌 "데인저러스"란 말을 거침없이 쓰는 것을 보았다.

11월 11일 MBC 드라마 <아줌마>는 "아내" 대신에 "와이프"란 말이 등장했다. 이 "와이프"란 말은 방송에서 너무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또 11월 30일 MBC 드라마 <온달왕자들>에서는 "진짜"가 아닌 "오리지날"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방송가의 외래어 남용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10월 28일 MBC <뉴스데스크>는 아나운서가 "오지"란 말을 썼다. "오지(奧地)"는 일본식 한자로 우리는 원래 "두메" 또는 "산골"이라고 써왔다. 또 11월 18일 MBC <토요일 밤에>는 "가을축제(~祝祭)"라고 했다. 우리식 한자는 원래 잔치에 "제사 제(祭)"자를 쓰지 않았으니 "가을잔치"나 굳이 한자말로 쓰려한다면 "가을축전(~祝典)"이 옳을 것이다.

심지어 11월 21일 KBS의 <서세원쇼>는 출연자가 "가위 바위 보"가 아닌 "짱껨뽀"라는 일본말 찌꺼기를 쓰는데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신문의 경우도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조심스러울 뿐이다.
외래의 남용은 역시 신문에서도 경쟁에 뒤질 정도가 아니었다. 11월 27일 일간스포츠는 "황정민 청취율 퀸"이라고 표현했고, 역시 같은 신문 11월 28일자는 "러브콜 공세", "신세대 PC 파워풀한 무대"로 11월 29일 한겨레신문은 "기업명 대신 개별 브랜드로 시장 공략"으로 같은 날 한국일보는 "엽기장면 쇼킹" 등 얼마든지 쉽고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외래어를 쓰고 있었다.

더구나 11월 27일자 일간스포츠는 "오뎅이 딱이네"라는 일본말 찌꺼기를 쓰는가 하면, 본문도 아닌 큰 표제어에 "공산품 5회고장"이라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우리말을 쓰면 뜻이 더 명확해질 부분에서도 굳이 어색한 한자를 집어넣는 사례가 눈에 띄기도 한다. 한겨레신문 내용에서는 계속 "새 교통수단"이라고 썼으면서 표제어에서는 "신 교통수단"이라고 쓰는 우를 범했다. 다른 신문과 달리 미국 대통령선거 보도에 "수작업, 수검표" 대신 "손작업, 손검표"를 쓰는 모범을 보인 한겨레신문이었다.

광고에서도 이지북이란 회사는 '영어삼국지'를 "참다운 생의 길잡이"라고 써서 삶의 길잡이를 썼을 때에 비해 어색한 낱말을 선보였다.

지금 내가 예를 든 경우들은 짧은 날 동안 방송과 신문 그리고 공공시설물을 보고 쓴 것이기에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은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어서 관공서와 언론 등에서 광범위한 잘못된 말글살이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이는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나라 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또 자존심 있는 말글살이를 하지 못하면서 외국어의 습득에 열을 올리는 우리 민족을 보고 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의 얼굴일 수 있는 관공서나 언론을 감시하고, 채찍질하여 외국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동시에 자신들도 올바른 말글살이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 참고로 여기에 나온 언론사들은 계획적인 조사가 아니라 우연히 시청했던 방송이었고, 구독하고 있는 신문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특별히 그 언론사들이 잘못된 말글을 쓴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참고로 여기에 나온 언론사들은 계획적인 조사가 아니라 우연히 시청했던 방송이었고, 구독하고 있는 신문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특별히 그 언론사들이 잘못된 말글을 쓴다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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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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