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운기가 미국까지 온 까닭은...

오마이 <미국 사는 이야기> 29

등록 2000.12.05 15:30수정 2001.01.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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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아저씨(전익기. 60세)를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 여기도 분명히 경운기가 있을 텐데 왜 경운기까지 한국에서 가져 왔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거든.


전씨 아저씨가 누구냐 하면 여기 우리 집에서 바로 5분 거리 주택가 사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분인데 나는 이 분을 바로 두 주 전에야 알게 되었어. 배추나 무를 싼 가격에 직거래로 살 수 있다고 해서 그런 곳이 있느냐고 당장 따라 나섰다. 나도 김장을 하려고.

주택가에 있다고 해서 그냥 조그만 밭이려니 했는데 가서 보니까 꽤 넓더라구. 약 8천평 정도가 된다니까. 가서 5달러를 주고 배추 십여 포기를 샀는데 아저씨 후한 인심에다 마침 날이 추워 아직 자라지 않은 무가 얼었다고 막 뽑아 낸 길다랗고 씽씽한 무청까지 한 보따리 얻어다가 김치 여덟 통을 담갔다.

배추 값보다 더 비싼 양념 값을 들여 김치를 담갔지만 올 겨울에는 김치찌개를 맘대로 끓여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에 시큰거리는 손목도 참을 만했다. 김치 한 통에 13달러씩 하니 사다 먹으면 아까워서 찌개를 못 끓이겠더라구. 그날은 아저씨도 나도 한가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지난 열흘동안 오가는 길에 몇번 그 밭엘 들렀는데 갈 때마다 안 계시는 거야. 오늘, 일을 끝내고 짬을 내어 혹시나 하고 잠깐 들렀는데 입구에 잠긴 문이 열려 있었고 아저씨 트럭이 보였다.

‘아이 참, 운동화를 신고 올 걸’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철 지난 배추잎들이 여기 저기 뭉그러져 널려 있고 이리 저리 뒤엎어 놓은 진흙밭을 꾹꾹 밟고 한참을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벌써 지나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그때서야 점심을 드시려는지 경운기를 한 쪽으로 치우고 계셨고 옆에는 석탄 불 위에 닭과 빵이 올려져 있었다.

“저, 기억하시죠? 그 경운기에 대해서 뭐 좀 여쭤 보려구요. 미국에서 농사 지을 만하세요?”
그리고는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말을 붙였다.


“아- 이거 아주 괜찮다구. 웬만한 직장 갖고 사업하는 거보다도 나을 걸?"
검게 그을린 아저씨 얼굴이 오후 햇살처럼 펴지는 게 나까지 신이 났다.

“파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85년도에 아칸소 주로 취업이민을 왔는데... 응, 닭공장으로 왔지.”

파주 기지촌이 가까이 있어 영어 깨나 할 줄 알아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5학년, 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네 아이들을 데리고 겁없이 왔다는 아저씨는 닭공장 계약 기간이 끝나 아칸소 주에서 텍사스 주를 거쳐 87년도에 여기 조지아주 애틀란타로 오셨단다.

“여기 와서는 이승만 박사처럼 그릇도 닦으면서 낮에는 호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밭을 일궈 농사를 짓고 밤에는 빌딩 청소를 하면서 정말 두 잡(job), 세 잡을 뛰면서 돈을 모았어. 그때 땅을 사 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올림픽하고 나서 지금 땅 값이 몇 배가 올랐잖아. 마누라가 집을 사자고 하니 집을 먼저 샀지.”

아칸소 주에서도 텍사스 주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이 밭을 일궈 온 전씨 아저씨는 애틀란타에서도 가는 곳마다 밭을 일구다가 바로 이 땅을 빌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4년전 쯤이래.

미국 사람한테 4천평은 렌트비를 내고 빌리고 4천평은 거저 빌려 밭농사를 시작했는데 겨울에는 하루나와 호파, 봄에는 오이, 참외, 가지, 호박을 심고 여름에는 무, 배추, 열무, 상추, 쑥갓, 총각무, 부추, 깻잎, 고추 등을 심는다고 하시네.

일년 내내 밭을 놀리지 않고 심는데 돌 하나 없이 땅이 좋고 거기다 물도 좋고 비료도 좋고 사람 구하기 쉬우니(오이 딸 때만 멕시코인들을 시간당 8달러씩 주고 쓰신다) 미국에서 농사 짓기 정말 수월하다는데 얼마나 쉽게 말씀을 하시는지 얘기만 듣고 있자니 정말 하나도 안 힘들 것 같다.

“여기는 날씨까지 따뜻하잖아. 오이, 배추 철에는 그냥 돈을 긁어 모은다구. 참외도 아주 괜찮아요. 없어서 못 팔지. 거기다 한국처럼 작물이 일찍 나와야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사시사철 똑 같아서 좋아.”

전씨 아저씨는 혼자 여기서 농사를 지어 애틀란타 대형 식품점 두 곳에 납품을 하고 있는데 그보다도 직거래 손님들이 많아 그게 더 짭짤하다고 귀띔을 해 주신다.

“내가 인심이 후하잖아. 입소문 돌아서 아줌마들이 김치거리 사러 들 오는데 줄을 잇는다구. 싱싱하잖아. 무공해구. 여기 벌레 없고 공기 좋으니 나는 농약 안 쳐요. 비료도 사다 뿌리긴 하지만 닭똥 거름을 많이 주고. 아마 동남부 지역에서 이 밭 채소 안 먹는 곳 없을 거야. 여기 조지아주 말고도 알라바마, 테네시, 플로리다, 노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주까지 한국 식당이고 식품점이고 다 들어가니까.”

한국 사람이 큰 농장을 갖고 있는 플로리다와 캐나다에서 대량으로 농작물이 들어오긴 하지만 지역 여건상 그야말로 틈새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철 걱정이 없대.

“플로리다는 너무 더우니 5월 지나면 채소가 없고 캐나다는 또 추우니 10월 이후엔 물량 공급이 힘들지. 여긴 겨울에 비닐하우스 이용하면 끄덕 없어.”

“그럼, 저도 농사 짓는 거 배울까봐요. 좀 가르쳐 주실래요?”
턱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묻는 내게 전씨 아저씨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아이구, 이게 그냥 되나. 다 기술이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게 다 기술이라구. 비닐 하우스 매는 거부터 오이 모종 내는 거까지. 그리고 여름에 뜨거운 날씨를 어떻게 견디려구 이 걸 한대? 나야 워낙이 농사꾼이니 괜찮지만...”

평일에는 하루 7시간씩, 주말에는 하루 종일 밭을 매고 저녁이면 밤 청소를 하러 나간다는 전씨 아저씨.

“그럼요. 그거 아저씨 평생이 들어간 기술인 거 알아요. 근데 아저씨 돈 많이 버시는데 이제 청소는 그만 하시지 그러세요. 몸 힘들 때도 되셨잖아요.”

“아직 안 돼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 나는 여태 일로 살아온 사람이야. 아직 자식 하나 더 남았어.”
대학 졸업 안한 자식이 아직 하나 더 있다는 소리다.

“우리 애들이 다 아주 괜찮다구. 큰딸은 뉴욕에서 미국사람들도 부자들만 보낸다는 몬테소리 사립학교 선생님이고, 둘째딸은 캘빈 클라인 옷 만드는 회사 디자이너고, 셋째 딸은 경제학과 졸업해서 회사 다니구 있고, 막내아들은 지금 컴퓨터 사이언스 공부하고 있어. 모두 한국말도 잘 하구 영어도 잘 하구 애들이 아주 괜찮아요. ”

“애들 자랑은 아니지만 ...”하시면서 애들 자랑을 정말 자랑스럽게 하시는 전씨 아저씨를 보며 그 괜찮은 아이들 보는 낙이 하루에 수천개의 배추 박스를 들어올리게 하고 버섯 농사 짓다 돈 잃은 일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게 하고 남의 땅에 한국 씨앗들을 심으며 내 땅처럼 그리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힘이시군요... 나 혼자 이렇게 속엣말을 하게 한다.

“아저씨. 제가 젤 궁금한 건 저 경운기요. 저거 한국에서 가져 오셨다면서요. 여기도 경운기는 있을 거 아니예요?”

“85년도에 이민 올 때 새로 사 가지고 온 거야. 닭 공장으로 취업이민 왔지만 언젠가는 농사지으려고. 그 동안 저것 때문에 마누라하고 많이 싸웠지. 그걸 버리지 노상 끌고 다닌다고. 근데 저것만큼 좋은 게 없어. 저 봐요. 내가 저기 고랑 내 놓은 거. 여기 트랙터 쓰면 고랑이 저렇게 좁게 안 난다구. 여기 건 크잖아. 한국 경운기를 쓰면 땅이 더 쓸모 있지. 그러니까 미국 사람하고 똑 같은 땅에 똑 같은 작물을 심어도 내가 더 수확을 많이 낼 수 있는 거라구.”

전씨 아저씨의 사는 법들과 땅 일구는 지혜를 배우며 마냥 앉아 얘길 하고 싶은데 벌써 애들 올 시간이다.
“김치 떨어지면 하루나 사러 올께요.”
“아이구, 이거(닭) 너무 익었네.”

이리 저리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 나오는데 나랑 얘기하느라고 이제껏 못 드셨던 닭을 권하면서 물으신다.

“아줌마. 고향은 어디야?”
“인천이요.”
“인천 토박이야?”
“예.”

애들 생각하면 여기 오길 잘했다는 전씨 아저씨 맘속에도 그게 다는 아닌가 보다. 자꾸 고향을 물으며 내 걸음을 잡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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