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12년째 무의탁 노인과 보육원 어린이를 위해 무료이발

등록 2000.12.29 10:13수정 2000.12.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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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이 머리 많이 자랐구나, 아저씨가 예쁘게 깍아 줄게"라며 박문철 씨는 재원(가명·17)이의 머리를 싹둑싹둑 가위로 자르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지나자 전기바리깡의 '윙' 하는 소리와 '싹둑'하는 가위소리가 멈추자 재원이는 거울을 보며 '씩' 웃고 부끄러운 듯이 박 씨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과 불우이웃을 찾는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가운데 12년째 무료이발을 해온 사람들이 있어 이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이 바로 박문철(46), 손동관(44), 이정범(40) 씨 3형제(?)로 무의탁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말동무가 되고 정을 나누며 머리를 손질해 주는 남모르게 온정을 베풀어 온 숨은 봉사자들이다.이들은 경기침체로 어려워진 이 시대를 밝혀주는 작은 반딧불이 되고 있다.

이들을 10년이 넘도록 평택시 천혜보육원 보육원생들의 머리를 무료로 깍아 주고 열린선교원의 노인들과 장애인을 위해서 무료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무료이발을 하면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고 형님, 아우하며 지내온 것이 지금은 친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머리를 다 깍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고 밥맛도 최고죠. '이것이 살아가는 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라고 서로 입을 모아 말한다. 이들 3형제는 한 달에 한번씩 찾는 이날을 매일 기다린다고 한다. 일주일만 늦게 찾아가면 머리가 많이 자라 있기 때문에 한번도 지나칠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금전적으로는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내가 배운 기술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이정범 씨는 3형제중의 막내로 현재 평택시 현대 목욕탕 이발사로 일하고 있다.

이 씨는 하루 품팔아 하루 먹고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 후 무작정 동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 감는 것부터 배웠다고 한다. 당시 수도가 없어 추운 겨울에도 물지게로 물을 날라야 했고 선배에게 물바가지로 많이 맞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 씨는 '머리 깍는 기술 하나는 꼭 배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고 한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들의 머리를 깍을 때는 머리를 자주 움직이기 때문에 신경을 더 써서 머리를 깍아야 하고 어떤 때는 2시간 이상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소수의 퇴폐이발소가 다수의 선량한 이발사들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을 돕는 것 당연하죠. 저희보다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가 찾아가면 머리를 깍는 기쁨보다 저희를 보는것 더 즐겁다고 해요. 사람들이 많이 그리운 거죠"라고 말하는 손동관 씨는 현재 한광이발소를 하고 있다.

손 씨는 중학교 졸업 후 이발 기술을 배웠다. 머리 깍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3년 동안 손님들의 머리만 감기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배운 기술 때문인지 그는 어려웠던 시절 한광고 학생들의 머리를 무료로 깍아 주기도 했고 길가 노숙자들의 머리도 깍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의 일생을 그의 아들 철희(14)가 수기로 써 교내 백일장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마음보다는 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좋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래도 이발기술을 가지고 있어 남을 도울 수 있다는게 정말 즐거워요"라고 말하는 박문철 씨는 3형제의 큰형으로 평택시 동양목욕탕에서 이발사로 일하고 있다.

손 씨는 "무료이발 하는 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삶의 즐거움을 모를 것"이라고 말하고 무엇보다 박 씨의 딸 초롱(14)이와 유나(9)가 "우리 아빠가 이세상 최고야"하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가 기분이 가장 좋다고 한다. 앞으로 박 씨는 이런 두 딸과 함께 다니며 직접 눈으로 보게 함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싶다고 했다.

진정으로 어려움을 알고 자란 이들은 앞으로 이 일을 평생 할 것이라고 한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이세상에 이들의 봉사가 따뜻한 불씨가 되어 사회 전체로 퍼져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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