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쉬 하샤나" 이스라엘의 음력설

'행복한 새해'라는 "샤나 토바"를 외치는 이스라엘 사람들

등록 2000.12.30 12:26수정 2000.12.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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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우리는 1월 1일에 새해를 시작한다. 물론 음력으로 계산하면 매해의 첫날이 달라지지만 말이다. 우리가 음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도 유대달력을 사용한다.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1월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1월일뿐, 유대달력으로 1월은 보통 여름에서 가을사이에 찾아온다. 한국의 음력설인 설날에 해당하는 날을 히브리어로 '로쉬 하샤나'라고 한다. 로쉬 하샤나는 '해의 머리' 혹은 '해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로쉬 하샤나가 그들의 정월 초하루가 되었는지는 조금 복잡하다. 성경에 의하면 티쉬리월에 해당되는 7월의 하루를 설날로 지키도록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티쉬리월의 하루만을 설날로 지키지 않고 이틀(공식적으로는 이틀을 쉬나, 주말과 겹치면 쉬게되는 날은 3일도 되고 4일도 되어 우리나라의 명절연휴와 비슷해진다)동안을 설날로 지내게 된 유래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얼마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운좋게도 나는 키부츠에서의 로쉬 하샤나를 경험할 수 있었다. 98년도 로쉬 하샤나의 연휴는 20일부터 22일이었다. 키부츠는 축제 분위기가 되고, 키부츠에 가족을 두고 다른 도시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키부츠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때만큼은 키부츠가 정말 우리나라의 시골동네처럼 하나의 공동부락으로 비춰지는데, 키부츠를 떠나 있던 젊은이들은 다이닝룸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오랜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가족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그러면서 그들은 "샤나 토바"라는 축복의 말을 서로 전하는데, 샤나 토바라는 말은 영어로 해피 뉴 이어, 즉 행복한 새해라는 인사이다. 우리나라말로 바꾸자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도라고나 할까?

"샤나 토바"를 말할 때에는 '바'에 조심해야한다. /b/ 발음이 아니고, /v/발음이기 때문이다. 아무 거리낌없이 그냥 샤나 토바/b/라고 몇 번 말했더니, 이스라엘 친구 한 명이 샤나 토바/v/라고 고쳐주었다. 속으로는 '그럼 넌 한국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어?' 라는 우스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말 것이다. 껄껄걸...

로쉬 하샤나의 처음 저녁식사 때, 다이닝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과, 엄청난 음식들, 특히 전통적인 음식들과 가짓수에 꽤 놀랐다. 여자들도 평소에 입던 수수한 시골분위기의 옷을 벗고, 진한 화장과 예쁜 드레스, 남자들도 점잖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다이닝룸 곳곳에 촛불이 켜졌으며, 각 키부츠닉의 집에도 촛불로 가득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말 초를 좋아하는 것 같다.

키부츠가 아닌 보통의 가정에서는 로쉬 하샤나를 어떻게 맞이할까?

로쉬 하샤나의 저녁에 새해 축하의 촛불을 켬으로써 신성한 새해를 개시하는 것은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라고 한다. 아버지나 다른 가족들은 해가 질 무렵, 회당이나 시나고그에서 저녁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가정주부는 음식을 준비하는 등, 너무 바빠서 예배에 참여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변명인 것 같다.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이나, 랍비들의 사회는 엄연히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구분된, 어찌보면 남녀가 차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저녁식사에 맞추어 가족들이 돌아오면, 아내는 집의 문을 열어주고 가족들을 향해 "샤나 토바"라고 기쁘게 인사한다. 음식은 안식일보다 더 정성스럽고 다양하게 차려지고, 로쉬 하샤나의 특별음식으로 사과와 꿀이 등장하는데, 사과와 꿀의 의미는 '달콤한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에서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에서의 사과와 꿀이라.. 흠 이해가 쉽다.

아버지들은 기도서에 있는 대로 로쉬 하샤나를 위한 특별한 성결의식을 행한다. 사과 조각을 꿀에 찍으면서 그들의 관습대로 "주 우리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로쉬 하샤나에는 나팔을 불기도 해 '나팔절'이라고, 혹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는'재판의 날'로도 불려진다. 탈무드에는 로쉬 하샤나를 하나님께서 세 여인인 사라, 라헬, 한나의 간청을 들어 그들에게 아들을 선물한 특별한 날로도 쓰여져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로쉬 하샤나 덕분에 사과와 꿀을 잔뜩 먹고,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모처럼 홈식(homesick)을 잊을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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